논평_
KBS <미디어포커스> '세지마 류조로 본 한일 극우 커넥션과 언론'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5.4.20)
'극우커넥션' 파헤친 <미디어포커스> 돋보였다
4월 16일 KBS <미디어포커스> '세지마 류조로 본 한일 극우 커넥션과 언론'편은 '세지마 류조'라는 인물을 통해 한일 정·재계의 뿌리 깊은 '극우커넥션'과 여기에 편승해 왜곡보도를 일삼은 우리 언론의 실상을 파헤쳤다.
일본의 역사왜곡과 '독도 도발'로 반일 감정이 높아지고 있는 시점에서 <미디어포커스>의 이 같은 보도는 '우리 안의 친일'을 차분하게 성찰하고 진정한 의미의 과거청산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이면서 우리 내부에 광범위하게 뿌리내린 친일 인맥과 그들의 친일 행각에는 눈감고, 나아가 일본 극우파를 '친한파'라며 합리적이고 양심적인 인사로 소개해온 우리 언론의 한심한 실태를 고발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미디어포커스>가 보여준 세지마 류조의 실체, 한국의 역대 정권이 그와 맺어온 관계는 '충격적'이다.
세지마 류조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의 패망 직전 관동군 참모로서 박정희의 직속상관에 해당하는 사람이었다. 이 인연을 계기로 세지마는 박정희 등 육사 출사의 한국 군인들을 등에 업고 지난 3공화국에서 6공화국까지 한일 외교를 막후에서 조정했다. <미디어포커스>에 따르면 "박정희에게 비공식적인 통로로 얘기할 수 있는 게 세지마 류조"였고 "박정희 시대 때부터 한국의 유수한 인사가 일본에 갈 때는 세지마 류조를 거치게 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 같은 세지마의 역할은 80년대 이후에도 한국 내 일본육사출신 인맥을 통해 한일외교의 막후 실력자로 영향력을 이어 갔다. 83년 전두환 정권이 일본으로부터 40억달러의 안보경협차관을 제공받고 나카소네 전 일본총리와 첫 한일정상회담을 갖게 된 이면과 90년 즉위한 아키히토 일본왕이 이른바 '통석의 념'으로 식민통치 등에 대한 '사과'를 대신한 배후에 바로 세지마 류조가 있었다는 것이다.
세지마 류조는 단순한 일본 우익의 배후인물이 아니라 인식마저도 일본 극우세력과 같아 '정신적 지주'라고도 볼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이 직접 쓴 자서전 <기산하(幾山河, 이쿠산카)>에서 '대동아전쟁'을 정당화해 "이 전쟁은 '침략전쟁', '계획전쟁'이 아니"며 "완전히 '자존자위의 수동전쟁'이라고 규정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고 주장했고, 또 다른 책 <조국재생>에서는 '한일합병'에 대해 "당시 국제적 관계의 압력하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며 "루즈벨트 미 대통령도 조선은 일본의 것이었다고 분명하게 말했다"고 주장하는 등 조선침략을 정당화했다. 또 일본 우익의 각종 행사에서 이른바 '가미가제 특공대'에 대해 "국가비상시의 젊은이들의 행동은 전례없는 장렬한 거사"라거나, 일제의 중국 침략이 시작된 '산둥 출병'에 대해 "산둥출병은 일본 역사상 최초의 평화유지 활동이었다"고 발언하는 등 '군국주의자'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최근에는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의 후원자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런데도 한국언론은 이런 세지마 류조를 "한일 외교의 막후 해결사, 지략이 뛰어난 군인, 성공한 기업가"로 왜곡되게 묘사했다는 사실을 <미디어포커스>는 지적했다. 실제 과거 우리 언론의 보도에서 세지마는 '한일간 현안타결이 막바지에 이를때마다 해결사 역할로 나섰던 일본 정재계의 막후실력자', '전략전술이 워낙 특출해 관동군내에서는 거의 신격화', '사생활이 깨끗해 일본에서는 폭넓은 지지와 존경을 받고 있다'는 식으로 다뤄져 왔다.
세지마는 이런 긍정적인 평가를 바탕으로 99년 전경련의 '국제자문단 위원'으로 위촉받았을 정도였지만 전경련의 결정에 대해 비판을 가한 신문은 당시 대한매일신보(현 서울신문)뿐이었다고 한다.
특히 중앙일보는 세지마의 '망언'과 비슷한 시기에 세지마의 '자서전(기산하)'이 출간되자 이를 4번에 걸쳐 기획기사로 다루면서 "한일관계를 주물러온 거물 밀사", " 돈과 지위를 탐하지 않아", "한국에 도움된 것이 많았다"는 등 세지마를 '미화'하기만 할 뿐 망언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는 이해하기 힘든 보도태도를 보였다.
지난 3월 15일 중앙일보 안성규 정치부 차장은 기명칼럼 '두 일본인'에서 세지마 류조에 대해 "전쟁을 반성하는 양심적 군인으로 꼽히는 인물"로 소개하고 일본에서 '양심적'이라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며 그를 추켜세웠다. 심지어 "새역모같은 극우파들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일본에 무슨 기대를 할 수 있는지 암담할 뿐"이라며 한탄하기까지 했지만 세지마 류조가 새역모의 배후인물이라는 사실은 언급조차 하지 않는 한심한 행태를 보였다.
<미디어포커스>는 세지마 류조 외에도 우리 언론이 흔히 친한파, 지한파로 소개하는 일본 인사들의 면면이 세지마 류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도 지적했다. 한일협정의 '막후 조정자' 역할을 한 기시 노부스케 전 일본총리는 A급 전범이었고, 나카소네 전 일본 총리는 일본 우경화의 열망인 '교과서 수정', '재무장을 위한 헌법 개정',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을 전면에 드러낸 인사였다. 또 한국과 일본의 국회의원들이 우호와 협력을 다진다며 결성한 '한일의원연맹' 소속 일본 의원들 대다수가 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의 시절 '과거반성 및 부전결의'를 반대했었다. 결국 우리 언론이 "한일관계의 표면적 현상만 보도하고 계속되는 망언의 본질과 일본의 우경화 현상과 그 중심인물, 그리고 역사에 대한 심층적인 접근이 없었다는 것이 큰 문제"라는 것이 <미디어포커스>의 지적이다.
우리는 <미디어포커스>의 이와 같은 지적에 공감하며, 앞으로도 <미디어포커스>가 우리 언론의 대일관련 보도, 과거청산 관련 보도를 성찰하는 역할을 해주기 기대한다. 아울러 일본의 군국주의화와 역사왜곡에 대해 겉으로만 '우려'하면서 친일파를 비호하고 극우인사를 미화하며 우리 내부의 과거청산을 가로막아온 일부 신문들의 맹성을 촉구한다.
2005년 4월 20일
(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