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RTV의 「조선 갈아만든 뉴스」방송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5.4.9)
등록 2013.08.19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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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TV가 '신문연합방송'이 되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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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부터 시민방송 RTV에서 <조선 갈아만든 이슈>라는 프로그램이 방송을 시작했다. 조선일보 컨텐츠를 '시민참여'로 포장한 이 프로그램의 방송을 앞두고 RTV 측은 적극적인 홍보에 나서기도 했다. RTV는 이 프로그램에 조선일보와 조선일보 '독자'들로 구성되었다는 '광화문영상제작단', 그리고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가 공동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하지만 조선일보가 스튜디오와 방송기자재는 물론 필요경비까지 모두 제공하고, 광화문영상제작단은 각종 컨텐츠를 활용하며, 프로그램 출연진이 모두 조선일보 기자들로 구성되어 있어 사실상 조선일보가 제작 주체이다.
RTV는 '퍼블릭액세스' 방송이다. 퍼블릭액세스는 '공중'의 방송접근권, 다시 말해 일반 시민이나 방송으로부터 소외된 계층이 방송에 직접 참여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한다는 취지에서 제기된 개념이다.
RTV가 창립선언문에서 밝힌 "권력과 금력에 막히지 않은 시민의 목소리를 들려주며, 특권과 불의가 숨기려는 현실을 시민의 눈과 귀에 생생히 전해줄 뿐 아니라, 시민이 직접 방송사업에 참여함으로써 새 세상의 주권자로서 시민의 자기훈련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이라는 시민방송의 목적이 퍼블릭액세스 개념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그러므로 본질적으로 조선일보는 시민방송에 엑세스권을 요구할 자격이 없다. 권력과 유착되어 특혜를 누리고 '언론권력'으로까지 변질된 조선일보를 비롯한 거대언론들의 컨텐츠는 RTV가 방송을 고려할 대상이 아니다.
우리 방송법은 거대신문사들의 방송진출을 여론독과점 폐해 등을 이유로 허용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조선일보 등의 거대신문사들은 틈만 나면 규제완화를 내세우며 방송 부문으로의 진출을 노리고 있으며, 그런 점에서 <조선 갈아만든 이슈>는 조선일보가 RTV을 통해서라도 자신들의 컨텐츠로 방송프로그램 제작 경험을 쌓으며 방송 진출을 대비하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다고 본다. 한마디로 '방송으로의 편법적인 진출'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RTV가 이 같은 배경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섣불리 조선일보의 RTV 참여를 결정한 데 대해 참으로 유감스럽다.
아울러 <조선 갈아만든 이슈>의 방송이 결정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감출 수 없다.


첫째, RTV 측은 그 동안 한겨레신문의 뉴스를 브리핑하는 <한겨레 인사이드 현장>이 방송된만큼 조선일보의 참여도 거부할 명분이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앞뒤가 바뀐 주장이다. 사실 RTV는 <한겨레 인사이드 현장>을 편성하기 전에 일간지를 비롯해 기존 매체들의 RTV 참여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해 '원칙'을 마련하는 것이 옳았다. 기존 매체들의 참여를 원천적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인지, 아니면 참여의 기준을 마련해 일부에 대해서는 허용할 것인지 결정했어야 한다. 또 이같은 원칙을 마련하지 못해 뒤늦게 매체들 사이의 '형평성' 논란이 불거졌다면 그 때라도 '원칙'에 대한 논의부터 시작했어야 마땅하다. 그저 한겨레신문은 참여했는데, 조선일보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눈 앞의 문제로 처리할 사안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신중한 절차없이 RTV가 사실상 모든 일간지들의 참여를 열어놓았고, 조선일보에 이어 중앙일보까지 RTV에 참여할 계획이라고 하니 이제 우리는 조선일보의 참여 논란을 떠나 RTV가 '퍼블릭액세스 채널'로서 의미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 사회적 논의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둘째, RTV가 <조선 갈아만든 이슈>의 편성을 결정하기까지의 과정이 애매해 과연 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따른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RTV측이 낸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 문제는 3월초 편성기획위원회와 이사회를 거쳐 논의되었으며 이사회는 "진성 PA물일 경우 그 내용에 대해 이사회나 편성기획위원회가 심의하는 것은 시민참여방송의 원칙에 어긋나며, 다만 진성 PA물 여부에 대한 판정은 집행부에서, PA물일 경우 그 편성시간에 대한 결정은 편성국에서 할 일"이라고 정리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사회의 이와 같은 결정 후 RTV는 다시 이 문제를 운영위원회에 넘겼고, 운영위원회가 "이사회가 의결한 원칙을 받아들이되 집행부가 좀 더 널리 의견을 수렴하자"고 의견을 모음에 따라 편성기획위원 및 운영위원과의 간담회를 통해 편성을 결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와 같은 RTV의 의사 결정과정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RTV의 주장에 따르면 이미 이사회는 사실상 조선일보의 참여를 열어놓은 셈이고, 남아있는 PA물 여부의 판정과 편성시간 문제에 대해서는 집행부와 편성국에 맡겼다. 그렇다면 RTV가 운영위원회에 이 문제를 다시 상정한 것은 무슨 이유인가? RTV에서 이와 같은 문제를 결정하는 최고 의사결정기구는 이사회인가 운영위원회인가?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참여하고 있는 운영위원회의 결정 사항도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 RTV의 주장에 따르면 운영위원회는 이사회의 결정을 번복하지 못했으나 프로그램의 편성을 찬성하지도 않은 채 '의견수렴'하라는 어정쩡한 결론을 내렸다. 게다가 일부 운영위원은 운영위원회가 조선일보의 참여를 분명히 반대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RTV 집행부와 편성팀은 '반대명분이 없다'는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도 운영위원회에 이 문제를 상정해 방송 허용 결정 이후의 예견되는 반발을 최소화하려 한 것은 아닌가?


셋째, 우리는 RTV가 시민사회의 반발이 예견되는 민감한 사안을 이토록 서둘러 결정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기존 매체의 참여와 관련한 원칙도 없고, 어디에서 이와 같은 문제를 최종 결정해야 하는 것인지도 불분명한 상황이라면 '결정의 과정'에 대한 합의부터 하고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옳지 않았냐는 것이다. 이사회와 운영위원회를 원칙없이 오가다가 결국 실무단위가 서둘러 편성을 결정하는 것은 민주적인 의사 결정 구조가 아닐 뿐만 아니라 상식적으로도 이해가 안된다.
조선일보의 참여를 이렇게 서둘러 결정해야 할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던 것인가? 좀 더 충분히 시민사회의 의견을 듣고 수렴해볼 시간적 여유는 없었던 것인가? 만의 하나 RTV가 조선일보의 컨텐츠를 통해 시청률을 높여보겠다거나 '한겨레-조선'이라는 선정적인 대립구도를 활용해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어보겠다는 생각에 결정을 서둘렀던 것이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우리는 RTV에 이번 논의의 핵심이 '조선일보 문제'가 아님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이번 논의의 핵심은 퍼블릭액세스와 RTV 정체성 및 편성 원칙이다. 우리는 '신문사들이 만드는 프로그램'이 PA 물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퍼블릭액세스 채널이 기존 일간신문들의 컨텐츠를 원칙없이 수용하기 시작한다면 이는 퍼블릭액세스 채널의 정체성을 흔들고, 나아가 존재 의의 자체를 무너뜨릴 것이라고 우리는 판단한다.
지금이라도 <한겨레 인사이드 현장>과 <조선 갈아만든 뉴스>의 방송을 일시 중단한 후, 퍼블릭액세스의 개념과 기존 매체들의 참여 문제에 대한 논의를 시민사회와 함께 시작하자.
RTV는 첫 퍼블릭액세스 채널이다. RTV의 사회적 책임은 일개 케이블 방송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이 막중하다. 시청률에 대한 유혹, 사회적 영향력 확보에 대한 유혹으로부터 벗어나 장기적인 안목으로 퍼블릭액세스 채널의 발전을 모색하는 것이 지금 RTV가 해야 할 일이다. <끝>

 

 
2005년 4월 9일


(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