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_
KBS「인물현대사」·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인혁당 사건' 방송 관련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 성명(2005.4.7)
'인혁당' 완전한 진상규명, 이제 시작이다
- K <인물현대사>·M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인혁당 관련 방송에 부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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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일과 3일 KBS <인물현대사>와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이른바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후 인혁당 사건)과 관련된 내용을 방송했다.
KBS <인물현대사>는 '내가 죽는 이유는 민족민주운동을 한 것뿐이다-이수병'편에서 인혁당 사건과 관련해 사형당한 8명 중 이수병 선생의 행로를 통해 광복 이후부터 70년대까지 혁신계 세력의 성과와 한계를 재조명했다. <인물현대사>는 특히 그 동안 독재정권에 의한 희생자였다는 점만 강조되었던 인혁당 관련자들의 민족민주운동 활동을 재평가함으로써 인혁당 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되살렸다.
이수병 선생은 고교시절부터 '암장'이라는 서클을 조직해 반독재운동에 나섰으며 4·19 혁명을 민족통일운동으로 전환시키는데 힘썼다. 5·16 쿠데타 직후 '혁명 검찰부'에 의해 검거되어 학생으로서는 최고형인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7년 간의 옥고를 치르고 석방된 이수병 선생은 엄중한 감시 속에서도 변혁운동에 뜻을 둔 동지들을 규합하기 위한 노력을 전개하다가 유신정권하에서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다시 잡혀 들어가 1년 간의 혹독한 고문 끝에 사형을 당했다. <인물현대사>가 독재정권 시기 척박한 환경 속에서 혁신운동의 명맥을 이어간 이수병 선생의 이런 민족통일운동 과정을 살펴본 것은 묻혀있던 '민족통일운동사'의 한 시기를 시청자들에게 새롭게 인식시켰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 하다.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8인의 사형수와 푸른 눈의 투사들'에서 인혁당 관련자 구명운동에 앞장섰던 외국인들의 시각에서 인혁당 사건을 재조명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70년대 한국에 거주하고 있던 50여 명의 외국인으로 구성된 '월요모임'(Monday Night Group)이 벌인 인혁당 관련자 구명활동을 통해 당시 박정희 정권이 국내언론의 침묵과 독재정권에 대한 미국의 묵인 속에 인혁당 사건을 권력유지에 이용했음을 증언했다.
방송은 또 당시 인혁당 사건 조작의혹을 최초로 외부에 알린 조지 오글 목사와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앞장섰던 제임스 시노트 신부는 박정희 정권의 추방으로 강제로 한국땅을 떠난 이후 지금까지 국내외에서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을 진행하고 있음도 보여줬다. 이들의 끈질긴 진상규명 노력은 30년이 지나도록 이 사건의 진실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인혁당 사건은 고문에 의한 대표적인 용공조작 사건으로 인혁당 관련 8명의 사형수들은 무자비한 고문 끝에 처형되었다. 조사과정에서 행해진 고문으로 인해 온몸이 시커멓게 타거나 탈장으로 걷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다. 재판 도중 혐의를 부인하는 발언을 하면 즉시 옆방으로 끌고 가 고문을 가하는 비상식적인 재판과정은 이 사건의 본질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박정희 정권은 고문의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사체를 탈취해 화장해버리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특히 인혁당 관련 8인에 대한 '사형'은 독재정권 하에서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사법부가 상고를 기각하고 '사형 확정' 판결을 내린 뒤 채 20시간도 지나지 않은 다음날 새벽, 형을 집행해 국내외에서 '치욕의 사법살인',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규정되었다.
지난 2003년 9월, 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인혁당 사건을 중앙정보부의 고문과 증거조작, 공판조서 허위 작성, 진술조서 변조, 위법한 재판 등에 의해 '조작된 사건'으로 결정한 바 있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유가족들에 대한 피해보상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법부는 지난 30년 간 유지되어 온 사법적 판단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으며 '조작'이 사실로 드러났음에도 인혁당 사건에 대한 재심 결정도 내리지 않고 있다.
돌아오는 4월 9일은 인혁당 관련자들이 억울한 죽음을 맞은 지 30주기가 되는 날이다. 우리는 인혁당 사건의 진상을 알리고 재조명한 <인물현대사>와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시도를 높게 평가한다. 아울러 이를 계기로 인혁당 관련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촉발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이번 방송만으로는 부족하다. 인혁당 관련자들이 고문에서 사형에 이르기까지 당했던 피해사실을 정확히 진상규명하는 것은 물론, '누가' '왜' 고문조작을 했는지 가해자를 철저하게 밝히는 일도 이뤄져야 한다. 아직 우리 방송이 이 부분의 진실규명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인물현대사>와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계기로 우리 방송이 '인혁당 사건'의 실체를 완전하게 규명하기 위한 노력을 더해주길 바란다.
또 지난 2월 인혁당 사건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철저한 조사를 통해 사건의 모든 진상을 밝혀줄 것과 법원이 하루 빨리 재심 요청을 받아들여 이들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줄 것을 촉구한다. <끝>
2005년 4월 7일
(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