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과거사 청산' 관련 17일자 신문사설」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4.8.18)
'과거청산'은 제대로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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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진상이라도 명확히 밝혀서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며 '진상규명특별위원회'를 국회 안에 만들자고 제안했다. 또 대통령은 그간 진상조사를 등한시하고 오히려 사실을 은폐해 온 국가기관을 향해 "고백할 일이 있으면 기관이 먼저 용기있게 밝히고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대통령의 제안이 있은 후 16일 국정원은 외부전문가들까지 참여시키는 가칭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를 구성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국방부와 검찰 등 다른 국가기관들도 진상규명을 위해 필요하다면 특별기구 구성을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간 시민사회에서는 반민족적인 친일행위에 대한 진상 규명과 군부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행해진 각종 '국가폭력'의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는 요구가 계속되어 왔다. 그런 측면에서 군부권위주의 정권 시절 국가권력을 남용해 온 일부 기관들이 앞장서서 스스로 진실을 밝히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그간 의혹으로 남아왔던 사건에 대해 명명백백하게 진실을 밝힌다면 민주주의를 공고히 하고 국민통합을 이뤄내는데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은 과거청산을 '과거로의 퇴행'으로 왜곡하고, 시민사회를 향해서는 '홍위병', '완장문화' 운운하며 악의적인 '색깔'을 덧칠했으며, 심지어 진실이 밝혀지면 마치 국가기관의 권위가 추락할 것처럼 사실을 호도하기까지 했다.
조선일보는 사설 <대한민국의 시계는 지금 몇 시를 가리키는가>에서 잘못된 과거의 문제에 대해 "개개 사안별로 처리하면 될 일"이라며 '국가기관들을 무슨 범죄단체로 보는 발상', '홍위병', '60년대 중국을 재현하려는 의도' 운운하며 불쾌한 심기를 드러냈다.
조선은 진상조사에 나서겠다는 국가기관들을 향해 '벌떼처럼 일어선 꼴', '스스로의 권위를 짓밟는 굿거리'라고 폄하하고 나섰다.
또 시민단체들을 향해 "아마 시민단체 행세를 하고 있는 정권의 외곽단체, 관변단체, 어용단체들도 곧 성명서를 쏟아낼 것"이라고 독설을 쏟아 냈으며, 조사의 공정성 확보 차원에서 거론된 외부인사 참여 문제에 대해서도 "빨치산과 간첩 출신을 민주화 운동 기여자로 판정하고 간첩혐의로 조사받았던 사람이 조사관이 되어 군장성을 이리 오라 저리 오리 하며 조사하던 그 꼴을 다시 되풀이 할 것"이라고 악의적으로 왜곡했다.
조선은 "우리 국민의 시계가 몇 시를 가리키고 있는데, 이 나라 집권자들은 국민 무서운 줄 모르고 역사의 묘를 파헤치는 푸닥거리로 세계의 웃음거리와 구경거리가 되겠다는 것인가"라며 과거청산을 '역사의 묘를 파헤치는 푸닥거리'로 매도하기까지 했다.
중앙일보는 사설 <상생을 위한 과거사 정리여야 한다>에서 "과거의 발못을 밝혀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자는데 반대가 있을 수 없다"면서도 "그러나 옳다고 무작정 밀어붙인다면 아마추어 수준에 불과하다"며 사실상 진상조사에 반대했다.
중앙은 "지금이 과거사 규명에 국력을 쏟아부어야 할 때냐"며 과거청산으로 인해 국론이 분열되고 '홍위병'과 '완장부대'가 출현하며, 정부의 정통성 시비의 빌미가 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더해 중앙은 "이를 적극 지지한다는 여권과 일부 시민단체의 목소리에선 벌써 적의가 묻어나고 있다"는 '해석'까지 덧붙였다. 중앙은 "현재의 고단한 상황을 외면하고 은폐하기 위한 과거 캐기가 되어선 국민적 호응을 얻을 수 없다"며 "상생을 위한 과거사 정리"를 주장한 김우전 광복회장의 발언을 부각했다.
동아일보도 사설 <국정원 군 검찰에 '과거사' 바람 불면>에서 "독재시대에 벌어진 의혹사건의 진상을 가리고 억울한 죽음을 신원하기 위한 재조사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면서도 "과거사 규명이 수사정보기관의 과거를 무한정 뒤엎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국가안보 기능이 위축되는 사태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시민단체의 참여에 대해 '국가기밀이 흘러들어갈 가능성'이 있다며, 국가기관의 자존심과 사기 문제까지 거론했다.
반면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은 '역사바로세우기'의 필요성을 평가하며, 국가기관이 먼저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겨레신문은 사설 <국정원 '과거사 고백' 제대로 하라>에서 그동안 인권을 침해하고 그 진실을 은폐하기까지 했던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기관들이 '국가적 대의에 적극적으로 호응할 것'을 촉구했다. 특히 한겨레는 수구언론과 한나라당 등이 '민생', '경제' 등을 들먹이며 역사바로세우기에 반대하는 행태를 두고 "자신들 선대의 친일과 독재 찬양 전력을 감추기 위한 비겁한 짓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사설 <권력기관 과거청산 제대로 해야>에서 "소모적인 논쟁을 피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가 권력기관이 저지른 인권침해와 불법행위부터 조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경향은 권력기관이 수사협조에 거부해 각종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으며 공권력을 오·남용해 온 스스로의 명예회복 정치권 차원의 과거사 청산작업을 재촉하는 부수적인 효과 등이 있을 것이라고 그 필요성을 지적했다. 경향은 "권력기관 자체조사의 공정성과 신뢰성 확보"가 문제라며 "대통령의 코드에 맞추는데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먼저 과거 청산작업을 공명정대하고 혼란없이 추진할 방안부터 내놓기 바란다"고 주장했다.
최근 과거청산과 관련해 조선일보 등 일부 신문의 보도태도를 보면 참으로 한심하다. 과거청산이 어떻게 '과거로의 퇴행'인가? 친일의 잔재로 인한 폐해와 국가폭력의 피해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이런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고 어떻게 우리사회의 민주주의가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는가.
'민생'과 '경제' 문제를 빌미로 과거청산의 발목을 잡는 것 역시 온당치 못하다. 국가기관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은 큰 틀에서 우리 사회의 발전과 진보를 앞당기는 일이다. 조선일보 등 일부 신문은 이런 주장을 하려면 과거청산이 경제나 민생에 어떤 피해를 주는지부터 명확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국가기관의 권위가 훼손될 것처럼 몰고가는 것 역시 사실을 호도하는 것이다. 국정원 등 국가기관이 인권을 탄압해 왔고, 이를 은폐하는데 앞장서 왔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국민들은 아직도 이들 기관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과거 잘못에 대한 진상규명 작업은 이들 기관이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시민단체를 향해 '홍위병'으로 매도하는 것도 소가 웃을 일이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신문들이 시민단체들을 '홍위병'으로 몰아 개혁에 딴지를 걸어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과거청산 문제와 관련해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또 다시 '홍위병 운운하고 나선 저의는 뻔하다. 노무현 정부가 과거청산에 적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그로 인해 정부와 시민단체 함께 나섬으로써 과거청산이 '대세'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를 정권의 '홍위병'으로 몰아 과거청산의 힘을 빼겠다는 저의임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과거청산에 나섰던 시민사회단체들 가운데 단 한 곳도 수구신문들의 '홍위병' 낙인이 두려워 과거청산에 대의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임을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신문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거듭 주장하지만 과거청산은 우리 사회가 꼭 해결하고 가야 할 과제이며 이에 대해 한나라당이 '야당공격' 운운하는 것은 치졸한 대응이다.
다만 우리는 국정원, 국방부, 검찰 등 권부가 과거 잘못에 대한 진상규명에 앞장서겠다는 의사를 밝힌 데 대해 이를 전적으로 신뢰하기 어렵다는 점을 밝히고자 한다. 국가기관이 얼마나 철저하게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밝힐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일 뿐 아니라 지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활동 기간동안 이들 국가기관이 의문사 진상규명에 비협조로 일관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기관이 진상규명 작업에 외부 인사들을 참여시키겠다고 한 부분도 외부 인사를 적당히 '들러리' 세워 '면죄부'를 얻으려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따라서 우리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같이 독립성과 권한이 보장된 기구가 과거의 인권침해를 철저히 조사하는 것이 과거청산의 가장 합당한 방안이며 이 과정에서 국정원, 국방부, 기무사, 경찰, 등 모든 관련 국가기구들이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조사에 응하는 것이 진정한 과거청산을 위한 가장 시급하고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끝>
2004년 8월 18일
(사)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