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사법부 인사 관련 신문보도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4.7.29)
등록 2013.08.14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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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과 군부에 이어 사법부까지 부추기려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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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강병섭 서울중앙지법원장이 공개적으로 사의를 표명했다. 지난 23일 임기 만료를 앞둔 조무제 대법관 후임으로 사시 20회 합격자인 김영란 대구고법 부장판사가 제청된 것과 관련하여 거취를 표명한 것이다. 이는 강병섭 지법원장이 김 부장판사보다 기수상 선배였다는 사실과 기간 법조계의 연공서열제 관행에 비추어 볼 때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따라서 김영란 판사의 대법관 임명과 강병섭 판사의 공개 사의 표명을 다룰 때 언론은 '사법개혁이 서열에 관계없이 적재적소에 인재를 등용할 수 있도록 인사관행을 바꾸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인식하면서, 연공서열 문화가 조금씩 변화하는 과정에서의 진통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관련 사건을 보도해야 한다.
그러나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언론은 강병섭원장의 발언을 비판없이 그대로 베끼거나 심지어 확대재생산해 사법부를 선동하고 나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사법부 선동하는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28일 1면 기사 <"개혁만 좇으면 사법부 위기 올것" 서울법원장 공개비판 辭意>와 <강병섭 이영애 지법원장 辭意 파문;"외부세력이 법원에 영향미치는 심각한 상황">에서 관련사건을 다루었다. 제목부터 "개혁만 좇으면 사법부 위기 올 것", "외부세력이 법원에 영향미치는 심각한 상황"이라 뽑아 사태의 본질을 왜곡했다. 조선일보는 강원장의 발언을 여과없이 그대로 인용하며 마치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의 압력 하에 대법관 제청자문위원회가 적법하지 않은 절차로 신임 대법관을 제청한 것처럼 부각시킨 것이다.
조선은 "강병섭 서울중앙지법원장(사시 12회)과 이영애 춘천지법원장(사시 13회)의 잇단 사의(辭意) 표명은 현재 진행되는 사법부 개혁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법원 내부의 불만이 집약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라고 전제하고 "일각에서는 두 사람의 사의 표명이 개인적인 이유가 아니라 서열 기수 파괴인사 등 '사법부 개혁'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에 다른 법원장의 거취 표명이 잇따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라고 보도, 사건의 파장을 증폭시키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뿐만 아니라 조선은 29일 사설 <司法府의 독립은 사법부가 지킬 수밖에 없다>를 통해 "강 법원장의 이같은 발언은 그동안 신임 대법관을 제청하는 과정에서 이 정권과 정치적 성향을 같이 하는 민변 같은 변호사단체나 친 정부적 시민단체들의 입김이 노골적으로 작용하는 것을 보면서 혹시 이런 흐름 때문에 재판과 법원의 독립에 이상(異常)이 빚어지는 것 아닌가 하고 걱정해왔던 외부의 우려가 단순한 기우가 아니었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라며 강 원장 개인의 의견을 기정사실화했다. 뿐만 아니라 조선은 "지금 시점에서 재판의 독립에 사회적 관심이 모아지는 것은 현재 행정부와 입법부가 집권세력의 수중에 있고 이 집권세력의 국정운영의 특징이 대중과 여론의 힘에 의지하는 직접민주정치수법에 있기 때문에 사법부마저 그 영향력에 휩쓸릴 것을 염려하기 때문"이라고 전제하고 "...법원에 보내는 국민의 성원은...최종적으로 사법부의 독립과 재판의 독립을 수호하는 보루는 사법부 자신의 의지와 용기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이라며 사법부를 선동하기까지 했다.


조선에 코드맞춘 '동아'
동아일보 역시 조선일보와 다를 바 없는 보도 행태를 보였다. 동아일보는 28일 5면 기사 <[강병섭 법원장 사의]잇단 '진보적 판결'에 문제제기>에서 "강병섭(姜秉燮 사시 12회)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이 27일 판결의 공정성 위기 문제를 제기한 것은 최근 법원의 판결 경향과 무관치 않다. 법관은 '중도(中道)'를 걸어야 하는데 일부 판결은 이와 거리가 먼 것 같다는 게 강 법원장의 지적이다. 그가 최근 판결이 일부 진보적 시민단체의 '입맛대로' 내려진다면 공정성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라고 리드를 뽑으며 조선일보에 코드를 맞추고 나섰다.
동아일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서울고법은 21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7년이 선고된 재독학자 송두율(宋斗律)씨에게 원심과 달리 주요 혐의를 무죄로 인정하며 집행유예를 선고했다"면서 "강 법원장의 문제 제기는 이 같은 판결 경향에 대한 불만으로 풀이된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군사정권 시절 사소한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에도 가차 없이 실형을 선고하던 법원이 이제 와서 시류(時流)에 영합하고 있다는 판단"이라면서 송두율 교수 석방 판결을 폄하하고 군부권위주의 정권시절에 사법부가 정권에 예속되어 국가보안법을 전가의 보도로 휘두르는 정권을 견제하지 못했던 사실까지 어거지로 갖다 붙이고 있다.
동아일보는 29일에도 사설 <사법부까지 사회분위기에 영합한다면>을 통해 "시류(時流)에 영합하거나 권력을 의식하는 이른바 '진보적 판결'이 줄을 잇고 있다"면서 "사법부는 새 대법관 제청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과 여론을 수렴해 보다 합리적이고 타당성 있는 대법관 제청 방식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언급, 사태의 본질을 왜곡했다.
특히 이 사설에서 동아일보는 "시민단체 등에서 임의로 대법관 후보를 공개 추천하는 것을 의식한 소장 판사들의 '매명(賣名) 판결'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고 '악의적인 가정'을 한뒤 "최근 법원 주변에서 '소송에 이기기 위해서는 특정 변호사단체 소속 변호사를 선임해야한다'거나 '변호사 출신 현 정부 실세들과 관련 또는 친분이 있는 법무법인들이 사건을 독식하다시피 한다'는 얘기가 오가는 것도 결코 사소하게 넘길 일이 아니다" 운운하며 가십과 루머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상상력을 발휘하고 '상상'을 그대로 기사화하는 반언론인적 태도를 보이기 까지했다.


강병섭판사말 그대로 베끼기?
중앙일보도 28일 강병섭 판사의 사임과 관련 7면에 <"개혁성 내세운 시민단체 영향력 사법부 심각한 위기">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이 기사에서 중앙일보는 "강 법원장은 사의를 표명하면서 후배인 김영란(사시 20회, 78년 합격) 대전고법 부장판사를 신임 대법관에 제청하는 과정에서 시민단체 등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고 비판했다"면서 "이는 헌법상 대법원장에게 부여된 대법관 제청권이 시민단체 등 외부의 입김에 흔들렸다는 법원 내외의 비판을 대변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주장했다. 중앙은 또 "그는 최근의 판결 경향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명했다"면서 "'법관은 진보도, 보수도 안 되며 백지상태에서 판단해야 한다'며 '판사 개인의 진보 혹은 보수적 소신이 재판에 영향을 미쳐 승소할 사람이 패소하고 징역 갈 사람이 풀려나는 게 잘못'이라고 지적했다"는 강판사의 말을 전했다.
또한 중앙은 29일에는 사설 <"외부세력 영향력에 사법부가 위기">를 통해 "법원이 외부의 특정 세력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라고 전제하고 "우리는 강 법원장의 지적이 사법부 개혁 방식이나 목표를 둘러싼 법원 안팎의 우려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면서 "대법원 구성 등과 관련해 벌써 사법부 수뇌부가 특정 성향의 인물들로 채워질 것이란 소문이 나돌고 있기 때문"이라며 불확실한 가십과 루머를 '사실'로 단정하며 논의를 전개하는 속칭 '라면'사설을 쓰기까지 했다. 이 '라면' 사설 역시 "'법관의 꽃'이라고 불리는 대법관 인선에서 특정이념 성향이 절대적인 평가 기준이 된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 법관들은 묵묵히 일하기보다는 적당한 때 변호사로 개업해 경제적 안정을 누리면서 시민단체 등과 보조를 맞춰 진보적이란 평판을 얻은 뒤 법원으로 복귀하려 할 것이다. 법원에 남아 있다 해도 시류에 영합하는 판결을 내릴 수도 있다. 강 법원장의 지적대로 진보 혹은 보수적 소신이 재판에 영향을 미쳐 승소할 사람이 패소하고 징역 살 사람이 풀려난다면 그 사법부를 누가 믿겠는가"라며 퇴임한 강법원장의 말을 그대로 옮기다시피하고 있다.


우리는 묻고 싶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은 사법부개혁의 필요성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 것인가. 인재를 적재적소에 기용하지 않고서는 공정한 판결은 물론, 사법부의 독립성도 보장할 수 없다. 사회 여타분야, 특히 경제계가 능력중심으로 인사를 단행하고,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은 그러한 실질적 인사행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았는가. 왜 유독 사법부만 연공서열식 인사관행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우선 우리는 물러나면서 '쓸데없는 말'로 자신은 물론 국민과 사법부 전체를 모독한 강병섭판사의 행태를 대단히 유감으로 생각한다. 자신이 아닌 다른 법관이 '소신에 따라' 내린 판결을 '외부입김' 운운하며 폄하할 때 해당 법관은 어떤 처지에 빠지는지 강판사는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게다가 강병섭판사의 '강변'과는 달리 송두율교수관련 판결은 민주국가에서는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의 판결이었다. 우리는 관련재판부가 외부단체에 휘둘려 그런 판결을 내린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민주적 양심과 소신에 입각해 관련 판결을 내린 것으로 보고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자기 맘에 들지 않는 판결들이 내려졌다고 해서 이를 매도하고, 자기맘에 들지 않는 인사가 이루어졌다고 해서 '궤변'을 늘어놓는다면 누가 그를 양심적인 '법관'이라고 생각하겠는가. 법관들의 불법행위가 벌어질 때마다 관행적으로 사법부 주변이 보여주었던 '최소한의 감싸기식 동료의식'까지 내팽개칠만큼 지금 강병섭판사는 급한 것인가. 혹시 누군가 강병섭 판사를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의 이번 사건 관련 보도행태는 '한풀이'에 불과한 '졸작'이라고 본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이 흔들어도 대한민국은 전진한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언론이 아무리 갈망해도 수구냉전시대로 돌아갈수가 없다. 국민들이 이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군부권위주의시절 소수가 '카르텔'을 형성해 권력과 금력을 행사하던 관행의 잔재를 털고 진정한 민주주의사회적 관행을 재정립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당연히 사회 각 영역에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세력들의 '저항' 또한 거세다. 그리고 그 '저항'의 중심 혹은 주변에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이 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이 흔들어도 사법부는 개혁의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며 '제2, 제3의 송두율교수 관련판결'이 나올 것이다. 역사의 도도한 흐름에 자신을 맞출 것인지, 아니면 그 흐름에 역행하다 '자멸'할 것인지는 각자가 선택할 몫이다.

 


2004년 7월 29일


(사)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