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노무현 대통령 국회연설' 관련 신문 사설 및 기사」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4.6.11)
'정치적 경제관련보도'부터 반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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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경제위기 비판 발언'이 또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5월 15일 복귀연설에 이어, 7일 국회 연설에서도 "과장된 위기론이야말로 시장을 위축시키고 왜곡시킬 뿐 아니라 진짜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은 그 사례로 89년과 2000년 당시 재계와 언론이 '경제위기론'을 들고 나와 정부가 '증시 부양과 건설투자 확대책'을 내놓았다가 되레 땅값폭등, 물가급등, 경상수지적자를 맞았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을 두고 조선일보 등은 노 대통령이 '경제위기를 외면하는 것'으로 몰고갔으며, 심지어 조선일보는 '경제위기가 언제시작됐느냐'라는 문제를 부각해 대통령 발언의 진의를 호도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조선일보는 8일 사설에서 대통령의 '경제위기론' 관련 발언을 강력하게 비난했다. 8일 사설 <경제위기론에 음모설을 덮어씌우지 말라>에서 조선은 "대통령은 더 이상 변죽만 울릴 게 아니라 '누가' '무슨 개혁을 저지하기 위해' 위기론을 퍼뜨리는가도 공개해야 한다"며 "대통령이 경제위기론에 재갈을 물리려하면 할 수록 그것은 오히려 대통령을 둘러싼 경제각료와 수석비서관, 보좌관들이 대통령에게 경제에 대한 진실을 말할 수 없도록 막는 효과밖에 거두지 못한다"고 대통령이 경제위기의 진실을 은폐하는 것으로 몰았다. 그러면서도 조선은 사설 말미에 "지금 한국이 가장 두려우해야 할 시나리오는 '남미형 사회분위기'에 '일본식 장기불황'이 겹치는 일이라는 것만 말해두겠다"며 다시한번 '경제위기론'을 거론해 불안감을 조장했다. 심지어 조선일보는 2면 <"언론 지적전에 이미 경제이상 징후">에서 "정부정책과 경기악화의 선후 관계가 뒤바뀌었고 특히 실패한 정부 정책의 후유증까지 위기론의 책임으로 전가한게 아니냐"며 선후관계를 부각했다.
동아일보는 8일 사설 <"위기 아니다"에 매달리는 대통령>에서 "위기로 보느냐, 어려움 정도로 보느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면서도 "문제는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다급한 외침을 대하는 대통령의 자세에 독선의 기미가 짙다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동아는 "1989년 재계와 언론이 과장된 위기론으로 심각한 경제위기를 불렀다는 대통령의 지적도 설득력이 없기는 마찬가지"라며 "야당이나 언론은 경제위기론의 진원지가 아니라 전달자에 불과하다"며 "체감경기가 외환위기 때보다 어렵다는 서민, 한국에서는 기업할 의욕이 안 난다며 해외로 생산시설을 옮기는 기업인, 산업공동화(空洞化)가 미국이나 일본보다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고용 없는 성장이 현실화하고 있다고 경고한 한국은행, 5년 뒤에는 한국의 중국에 대한 기술력 우위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정부기관 등이 굳이 꼽자면 위기론의 진원지"라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는 8일 사설 <경제위기론을 잠재우는 길은>에서 "경제주체들의 심리가 어떤지에 따라 실제 경제가 좌우되는 만큼 경제상황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예측이 중요하다"며 "이런 점에서 과도한 경제위기론 때문에 경제가 나빠질 수 있다는 대통령의 우려는 일리가 있다고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중앙도 "노 대통령이 경제위기론을 의도적인 정부 공격용이라고 인식하는 대립.음모적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대통령과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경제위기론을 공박만 할 게 아니라 경제인들의 불안을 해소해주는 것"이라며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을 위축시키는 요인이 무엇인지 엄밀하게 진단하고, 처방을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경제위기론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겨레신문은 8일 사설 <노 대통령의 경제 인식>에서 "과장된 위기론이야말로 시장을 위축시키고 왜곡시킬 뿐 아니라 진짜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노 대통령의 경제 인식에 대체로 공감한다"면서도 "현재의 경제난에 대한 구체적인 원인 분석과 처방 없이 낙관론에 치우친 점은 동의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지표상으로는 5~6%의 성장세를 이어가면서도 경제적 약자들의 삶은 오히려 더 악화하는 현실-이른 바 양극화의 심화가 우리 경제의 가장 큰 구조적인 문제"라며 "노 대통령은 소모적인 '위기론 공방'에 힘을 쏟기보다, 우리 경제구조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 위기론이 발붙일 토양을 없애는 게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지금 한국 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경제위기'만을 부각하며 정작 치밀한 원인분석과 대안 제시는 등한시하는 조선일보 등의 '경제위기론' 조장에 대해서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우리는 IMF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조선일보가 경제문제를 어떻게 정치적으로 이용해왔는지를 여러 차례 목격해왔다. 조선일보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외환위기를 예측한 각종 보고서와 외신보도를 무시하거나 축소왜곡했으며, 반면 '외환위기로 보기 어렵다'는 주장을 대대적으로 부각했다. 조선일보는 단독으로 여론조사까지 실시해 외환위기 가능성을 부정하는 여론을 주도하기까지 했다. 또 조선일보는 97년 외환위기 직후 'IMF재협상'을 주장했다가, 김대중 후보가 '재협상'을 주장하고 나서자 '외국투자자들을 불안하게 한다'며 이를 공격하는 등 말을 바꾸기까지 했다. 심지어 <미디어오늘> 98년 7월 1일자에 따르면 조선일보 당시 송희영 경제과학부장이 외환위기의 주범으로 몰린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와 수차례 만나 경제청문회에 대비한 대응논리를 개발하는데 조언하기까지 했다는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또한 '제2의 IMF위기' 운운했던 2000년에도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신문은 '경제위기'를 부각하면서도 정작 그에 대한 제대로 된 대안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받아왔다. 본회의 2000년 12월 경제위기 관련 모니터 보고서에 따르면 신문들은 경제위기를 부각하면서도 정작 근본적인 원인 분석 보다는 그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기기에 바빴다. 언론재단이 2001년 발간한 <보도비평-신문의 경기동향 보도>에 따르면 2000년 하반기 경기동향에 대한 보도에서도 보도량은 수적으로 많지만 깊이있는 분석이나 진단으로까지 나아간 기사는 거의 없다고 평가했다. 또 일부 기사에서는 구체적 사실을 적시하지 않은 채 '끝없는 추락' '최대 고비' 등의 표현을 사용해 독자들의 불안감을 조장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우리는 조선일보 등에 대한 과거의 지적이 지금까지 반복되고 심지어 확대재생산 되고 있는 현실에 자괴감마저 느낀다. 지난 해부터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은 경제위기를 지속적으로 강조해왔으나, 정작 그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이나 대안은 전혀 제시하지 않고 있다. 조선일보 등이 유일하게 내세우고 있는 대안이 '탈규제를 통한 투자활성화', '분배없는 성장우선주의' 아니었는가. 현재 우리 경제위기의 가장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가 카드빚과 소득양극화에 따른 소비위축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조선일보식 경제위기 처방은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뿐만아니라 요 몇 년 사이 우리경제위기를 불러왔던 재벌식 경제경영의 문제점에 대해 언제 한번 조선일보 등이 제대로 비판한 적이 있었던가. 여러 가지 정황을 고려할 때 우리는 조선일보의 경제위기론 확대재생산 의도는 우리 경제 활성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조선일보와 일정한 커넥션을 가지고 있는 재벌들을 보호하기 위해 재벌개혁을 물타기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언론이 경제의 어려움에 대해 제대로 보도해주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만보 양보하더라도 조선일보는 경제위기 운운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이렇게 저렇게 흔들 자격이 없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조선일보는 무엇인가 경제에 관해 말하기 전에 그동안의 정치적 경제위기 관련 보도부터 반성해야 한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외환위기는 없다'고 주장하며 외환위기를 예측한 모든 보고서와 외신보도를 짓밟았던 IMF관련 보도부터 반성해야 한다.
언론 본연의 기능인 정확한 사실보도 다시말해 정확한 경제관련 사실보도는 뒤로하고 오직 경제위기 운운하며 누군가를 비난하고 책임을 돌리려는 조선일보 등의 보도에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끝]
2004년 6월 11일
(사)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