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2023)_

불복종의 권리와 내부고발의 의무

‘박근혜 게이트’에서 배우기
등록 2016.11.07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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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을 이제 대통령으로 부르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많아졌다. ‘최순실 게이트’라고 언론에서 제목을 뽑지만 사실은 ‘박근혜 게이트’다. 우리의 대통령이 사실은 꼭두각시, 괴뢰(傀儡)였다고 대놓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언론들은 1974년부터 지금까지 42년을 꼭두각시로 살았고, 꼭두각시의 줄을 조정한 사람이 최태민이었고, 최순실이었다는 증거와 증언을 날마다 쏟아낸다. 세상이 바뀐 것처럼, 그때는 틀렸지만 지금은 맞다는 것처럼. SNL과 ‘개그콘서트’에서도 풍자가 살아났다. 막혔던 보가 터진 것처럼. 광화문광장에 30만 명이 모였어도 경찰과 충돌하지 않고 물대포도 없었다. 이제 경찰도 집회참석자들과 같은 마음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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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은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김수영 시인의 말처럼 풀은 바람에 눕고 울지만,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국민 여러분’은 이제 꼭두각시 박근혜와 최순실의 권세가 끝났다는 걸 직감했다. 지난 4년 동안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최순실과 나눠 분탕질했다. 그러나 이제 국민들이 권력을 되찾으려 한다. 국민들이 그런 마음을 공유하는 순간 박근혜는 더 이상 권력자가 아니다. 애당초 권력은 박근혜 개인의 노력이나 능력으로 창출한 것이 아니었다.

 

배후조종자들

 

민주주의는 절차다. 이미 많은 국민들로부터 금치산선고를 받은 박근혜 대통령이지만 어떻게 연착륙시킬 것인지가 문제다. 탄핵에서부터 하야, 2선 후퇴와 책임내각 등 여러 의견들이 나온다. 음모론도 있다. 박근혜와 최태민, 최순실의 관계를 알면서도 대통령으로 만든 배후조종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재벌일 수도 보수언론일 수도 있는 그들이 이제 박근혜를 희생타로 내세워 또다시 보수정권을 이어가려 한다는 것이다. 청산되지 않은 친일의 잔재를 박근혜 게이트라는 소용돌이 속에 묻어버리고 기득권을 유지하려 한다는 의혹이다. 국민들은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아직도 있는’ ‘나쁜 사람’

 

최순실이 박근혜 대통령을 조종하며 반대급부를 기대하는 재벌의 돈을 긁어모으고 있을 때 언론은 뭣하고 있었느냐, 공무원들은 뭣하고 있었느냐는 꾸지람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당연한 지적이다. 그러나 국정농단의 사실을 알만한 자리에서 자신의 직분을 다한 사람들이 있었다. 최순실의 마음에 들지 않은 승마협회 감사보고를 했다 박 대통령으로부터 ‘나쁜 사람’으로 분류돼 좌천되고 “이 사람이 아직도 있어요?” 한마디에 옷을 벗은 노태강 전 문체부 체육국장이 있다. 촛불집회 현장에서 중계차가 쫓겨난 MBC에는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후 김재철, 안광한 사장이 해고하고 징계하고 아무 상관없는 부서로 발령받은 많은 기자와 PD가 있다. KBS와 YTN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마찬가지로 여러 일터에서 박근혜와 그 배후조종자들이 만든 시스템 안에서 밖으로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잘못된 지시에 불복종하는 ‘나쁜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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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권리

 

박근혜는 86민중항쟁으로 이룬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몇십 년 뒷걸음치게 했다. 국민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차마 입에 담기 꺼려지는 수준까지 대통령직과 나라의 격을 떨어뜨렸다. 잘못은 박근혜와 그 배후조종자들에게 있다. 그러나 감시하지 못한 언론과 거부하지 못한 공무원들도 질책 받아 마땅하다. 기득권 세력의 시스템의 압력에 맞설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상관의 부당한 명령은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인식을 확산시켜야 한다.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내부고발인’에 대한 시각을 바꿔야 한다. 삼성재벌의 비자금 의혹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 보안사 민간인 불법사찰을 외부에 알린 윤석양 씨가 배신자로 오해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 공익을 위해 자신이 일하는 직장의 비밀을 외부에 알리는 사람들을 존경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참여연대가 2010년부터 시작한 ‘공익제보자의 밤 및 의인상 시상식’과 같은 행사를 널리 알려야 한다. 나아가 내부의 비리를 알고도 신고하지 않는 사람을 처벌하는 법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의리나 정, 순수한 마음이 아니라 절차와 제도에 따라 작동하는 것이다. 

 

약간의 진보

 

박근혜 게이트는 현재진행형이다. 오늘 또 무슨 새로운 사실이 밝혀질지 모르겠다. 그러나 모든 권력의 원천인 국민들은 권력을 위임받은 정치인들에 대해 더욱 엄한 감시를 해야 한다는 학습을 이미 했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주어진 민주주의라고 한다. 이씨 왕조시대와 친일 식민지시대의 지배의식을 갖고 있는 정치꾼들이 무늬만 민주주의를 한다는 소리다. 그래서 이승만 독재는 4·19 혁명을 불렀고, 박정희, 전두환 정권은 86 민중항쟁으로 무너졌다. 박근혜 정권은 어떤 모습으로 물러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저열하고 천박한 인물들이 패악질을 했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이 박근혜 게이트도 바람처럼 지나갈 것이다. 다시 일어난 풀들이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박근혜와 같은 방식으로 대통령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안성일(MBC 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