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방송3사 '탄핵가결' 보도」에 대한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 논평(2004.3.15)
언론자유의 이름으로 맞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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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관련 방송보도에 대해 한나라당과 민주당, 그리고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신문이 편파성 시비를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방송보도가 편파적이기는커녕 중립주의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다고 본다.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관련 일부 방송보도들이 구태의연한 '중립적 양비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또 SBS의 경우 대통령 탄핵에 대한 전국민적 분노를 '사회적 불안'으로 치부해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는 국민들의 열기를 물타기하려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이번 대통령에 대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탄핵소추안 가결'은 의회 다수를 점한 거대야당의 폭거이자 민주주의를 전면부정한 '의회쿠데타'로 비난받고 있으며 국민 70%가 탄핵안 가결에 반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나서 거대야당의 횡포를 규탄하고, 국민적 힘으로 이들을 심판하기 위해 촛불집회를 통해 적극적으로 의사를 개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방송이 '탄핵반대' 주장과 '탄핵찬성' 주장을 같은 선상에 놓고 '대결'이나 '갈등'으로 보도하는 것 또한 천부당만부당한 '중간주의'이다.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12일의 경우 MBC는 "국회 앞은 아침부터 탄핵반대와 찬성 시위 등으로 하루 종일 고함과 울음,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탄핵찬반 격렬시위>)며 마치 찬반시위로 인해 큰 혼란이 발생한 것처럼 보도했다. SBS도 "여의도에서는 하루종일 대통령 탄핵안 가결을 둘러싼 찬성과 반대 집회가 이어졌다"(<마주 선 '탄핵 집회'>)며 반대와 찬성의 목소리를 같은 비중으로 전달했고 KBS는 "국회 앞은 찬반집회로 긴장감이 감돌았다"며 "그야말로 국론 분열의 현장"(<대규모 찬반집회>)으로까지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 보도에서도 확인시켰듯이 이날 찬반시위 사이에는 아무런 충돌이 발생하지 않았다. 더구나 비슷한 시간, 비슷한 장소에서 찬반시위가 열렸을 뿐, 참가 인원에 있어 '탄핵찬성'을 주장하는 측은 '탄핵반대'에 비해 '10분의 1'도 되지 않아 이를 두고 '전쟁터'라느니, '국론분열의 현장'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어정쩡한 '중간적 태도'이자 선정적 언어로 상황을 호도하는 보도태도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날 SBS는 점입가경이었다. 한발 더 나아가 일반 시민들과 네티즌들의 여론을 전하는 보도에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자마자 인터넷은 금세 격론으로 들끓어 터질 것 같았다"며 "탄핵안 통과는 민심의 결정이라는 탄핵 찬성 의견"(<'탄핵' 불붙은 네티즌>)과 "탄핵 찬성이냐 반대냐, 엇갈린 시민들의 반응"(<엇갈린 시민반응>)식으로 소개해, 결과적으로 탄핵을 찬성하는 소수(20%대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SBS의 이 같은 태도는 13일에도 이어져, 시민사회단체들의 탄핵에 반대하는 시국선언을 소개하는 보도에서 "이에 맞서 대통령 스스로 사임을 결단하라고 주장"하는 탄핵 찬성 단체의 목소리를 소개하고 각 지역의 반대집회 소식을 전하는 보도에서도 "대구 등 일부지역 보수단체에서는 탄핵결의에 찬성하는 집회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실행여부가 불투명한 찬성집회를 언급하는 등 지극히 계량적인 보도태도를 보였다.
이처럼 탄핵과 관련한 국민적 여론을 억지스럽게 '갈등'의 틀에 끼워 맞춰 불안을 '조장'한 SBS는 현상황 해법제시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국민들에게 '냉정'과 '안정'을 주문하며 "법 절차를 지키자"고 주장하고 나섰다. 논평 성격의 SBS 13일 보도 <데스크 리포트-법 절차 지켜보자>는 "찬성하는 쪽, 반대하는 쪽 모두 연일 기자회견과 집회를 열고 있고 돌발사태도 걱정"이라는 우려와 함께 "'분열된 한국인'들이란 일부 외신의 표현에 반박할 말을 찾기 어려울 정도"라며 작금의 상황을 '분열'로 낙인찍었다. <법 절차 지켜보자>를 보도한 SBS 김인기 사회부장은 이번 탄핵사태로 말미암아 우리 사회의 갈등에 "'친노'와 '반노'라는 새로운 갈등요인이 추가"되었다고 분석하며 "집회와 시위를 통해 자기 주장을 표출하는 것은 기본적인 권리"이지만 "그 전제는 타인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나만 옳고 너는 무조건 그르다는 주장은 사회를 혼란에 빠뜨릴 뿐"이라며 "모두가 냉정하게 사태를 직시하면서 법적인 절차를 존중한다면 이번 탄핵사태는 우리 사회를 한 단계 더 성숙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국민들의 안정을 '호소'했다. 이 보도는 겉으로야 '탄핵찬반' 양측을 겨냥했지만 '탄핵반대'의 목소리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탄핵반대 집회를 자제하라'는 요구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보도가 '탄핵반대' 요구를 단순히 '친노' 혹은 '갈등의 한 축'으로 폄하하고 있다는데 있다.
광화문 촛불집회 소식을 전한 SBS의 다른 보도가 "(촛불집회)참석자들은 탄핵안 가결이 민주주의에 대한 낡은 정치세력의 정면도전이라고 규정"했다고 소개하듯 지난 12일부터 여의도와 광화문에서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거대야당의 횡포로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탄핵무효'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이는 4·19혁명과 87년 6월항쟁 당시 독재권력의 부당함에 맞서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 수많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거리에 나선 것과 결코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BS가 다른 꼭지에서 "나만 옳고 너는 무조건 그르다는 주장은 사회를 혼란에 빠뜨릴 뿐"이라는 식의 주장을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런 보도태도는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국민들의 저항을 잠재우려는 다른 의도로 인한 것은 아닌 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반면 12일 이후 KBS와 MBC의 보도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특히 MBC의 경우 이번 촛불집회에 "3∼40대 젊은 직장인들이 대거 몰렸다"(<3-40대 나섰다>, 3/13)며 "평소에는 먹고살기 바빠서 정치에 무관심했던 세대가 행동에 나섰다는 점에서 파장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 있는 분석을 했다. MBC는 이 보도에서 "87년 6·10항쟁 당시에도 3, 40대 직장인이 주축이 된 이른바 넥타이부대는 직선제를 이끌어낸 주역"이었다며 이번 촛불집회가 6월항쟁의 민주화정신과 무관하지 않음을 간접적으로 전달하기도 했다. KBS도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이어지고 있는 탄핵 반대 집회에는 예상보다 많은 시민들이 모이고 있다"(<예상보다 많아>)며 집회의 특징을 분석했다. KBS는 이 보도에서 "촛불집회 규모가 예상보다 커지고 있는 것은 시민, 사회단체의 급속한 결집과 일반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상승작용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퇴근길의 직장인과 가족단위 나들이객, 청소년들까지 참가자들의 나이도 직업도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총련과 비운동권 학생에도 탄핵 반대의 한목소리를 내고 있어 대학가의 움직임이 폭풍으로 떠올랐다"며 촛불집회에 참가하는 다양한 시민들의 모습을 가감없이 전달했다. 다만 보도말미에 "촛불집회가 장기화되면서 탄핵지지 집회를 촉발할 가능성도 적지않다"며 "헌법재판소의 심판이 계속되는 동안 우리 사회의 심각한 갈등양상이 계속될 것"이라고 예측한 부분은 이 보도의 전반적 경향에 비춰볼 때 뜬금 없는 멘트로 받아 들여졌다.
당리당략적 이해관계를 내세워 '대통령 탄핵'이라는 전대미문의 국가적 혼란을 초래해 여론의 매서운 질타를 자초한 거대야당들은 '여론조작설'까지 제기하며 그 책임을 언론, 특히 방송들에게 전가시키고 있다. 본회는 이러한 야당들의 횡포를 '언론자유에 대한 심대한 침해'로 규정한다. 하지만 SBS처럼,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전국민적 열기를 '친노', '사회혼란' 따위로 폄하하는 것은 심각한 '왜곡'으로, 거대야당의 압력으로부터 지켜 줄 가치를 상실한 보도라 아니할 수 없다. SBS는 14일, 금융시장 전망을 분석한 보도에서조차 "문제는 정치불안의 장기화와 국민들의 분열 양상"이라며 "탄핵이 국민분열 형국으로 빠져들 경우는 외국인 투자자들도 한국경제를 비관적으로 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을 내세워, '분열'을 재차 강조했다. 만약 SBS가 계속해서 이러한 보도태도를 보인다면 한, 민 양당이 탄핵안을 가결시킨 이후 국민적 저항에 봉착했듯 SBS 역시 국민들과 시청자들의 심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지지율이 끝없는 바닥으로 추락해 '공황사태' 속에 흔들리고 있는 거대야당이 앞으로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 언론은 이들의 다수를 앞세운 비민주적 폭거에 언론자유의 이름으로 맞서야 한다. 우리는 방송이 거대야당의 압박에 굴하지 말고 사실보도에 힘쓰길 기대한다.
2004년 3월 15일
(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방송모니터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