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서울대 '누가 서울대에 들어오는가' 논문관련 신문보도」에 대한 민언련, 전교조, 함께하는 교육시민모임 논평(2004.1.29)
'아전인수식 보도'가 '교육'을 망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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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김광억 교수 연구팀이 발표한 '입시제도의 변화-누가 서울대에 들어가는가'라는 제목의 연구 논문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 연구논문에서 서울대는 지난 30여년 간 서울대에 입학한 학생들의 거주지 및 부모의 재산정도 등을 분석한 결과, 서울 8학군에 살며, 부모가 고소득·고학력자이고, 어머니가 전업주부인 학생일수록 서울대 입학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서울대는 이 같은 학력대물림 현상의 원인이 '평준화 제도'에 있다고 주장해 논란이 되고 있다.
서울대 연구팀은 보고서에서 고소득·전문직 부모를 둔 학생들이 서울대에 많이 입학하는 이유로 '사교육을 통해 쉬운 수능에 대한 대응력을 길렀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평준화 및 쉬운 수능이 '교육불평등 심화'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 같은 문제의 귀결이 '평준화 폐지'로 이어지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는 지적이다. 우선 이 연구결과에서는 평준화와 입시제도, 전체적 학력 수준 등등 유의미한 기준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나 평가가 함께 이루어지지 않았다. 서울대 입학생들과 그 부모의 재력 및 교육수준과의 상환관계만을 놓고 평준화를 '교육불평등'의 '주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오히려 사교육을 받지 않고는 일류대에 들어갈 수 없는 현행 입시제도부터 바로잡는 것이 순리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교육계 내의 반론도 만만찮다. 교육부는 27일 "입학생과 고교평준화에 대한 상관관계에 관한 내용이 없으며, 단지 서울 강남 8학군을 비교집단으로 사용하여 평준화와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고 문제를 지적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도 27일 논평에서 이번 조사결과가 "우리 사회에서 계층에 따른 학력격차와 그로 인한 부의 세습체제가 얼마나 강하게 뿌리내리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라며 "교육을 통한 사회계층의 고착화 현상은 평준화로 인한 것이 아니라, 과외금지 위헌결정 이후 '고삐 풀린 사교육'과 사교육을 조장하는 '어려운 수능시험'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은 서울대 측의 연구결과와 평준화 문제를 거론한 부분만을 부각시키며 여론을 왜곡해 '평준화 제도'를 흔드는 '호재'로 삼고 있다.
서울대의 연구결과를 가장 적극적으로 보도하며 '평준화 폐지'를 주장한 신문은 조선일보다. 조선일보는 학력세습의 근본적인 원인이 '평준화'에 있으며, 평준화가 오히려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더 불리하다는 점을 부각했다. 더 나아가 평준화를 유지하려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색깔론'까지 씌웠다.
조선일보는 제목에서부터 '평준화후 저소득층 더 불리' '가난한 집 자녀만 멍들게 한 평준화' 등으로 달아 교육기회 불평등의 근본 원인이 마치 '평준화'에 있는 것처럼 보도했으며, 현재의 평준화 교육으로 교육의 질이 낮아졌다고 주장했다. 또한 26일과 27일 양일에 걸쳐 이례적으로 사설란의 60%를 할애해 평준화 폐지를 강하게 주장하기까지 했다.
조선일보는 현재의 평준화 제도가 "이 나라에선 어려운 집안 출신의 학생이 각고면려를 통해 이 나라 각계의 지도자로서 활약하고자 하는 의욕을 아예 앗아가 버렸다", "가난한 집 아이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사실을 보여줬다"고 주장했다. 이어 평준화 교육이 "특출한 학생은 평범한 학생으로 주저앉히고, 뒤처진 학생은 아예 교육의 울타리에서 낙오하게 만듦으로써 교육의 근본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라며, 현재의 평준화 제도를 "폐기처분할 때가 됐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조선일보는 일관되게 '엘리트교육의 중요성'을 제기해 왔으며 '자립형 사립고 도입'을 앞장서 주장해 왔다. 그런 조선일보가 '저소득층 운운' 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며 심지어 교활하기까지 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더 나아가 조선일보는 평준화 제도에 대한 '색깔론 씌우기'까지 서슴지 않았다. 조선은 평준화 제도에 대해 '철지난 맹목적 사회주의 이념'이라고 왜곡했으며, "차이와 차별을 구분 못하는 운동권적 구태에 학부모와 학생들까지 오염된 것"이라 주장하기까지 했다.
동아일보도 사실상 평준화 폐지를 주장했다.
동아는 27일 사설 <가난하면 명문대 못 가는 평준화>에서 평준화를 도입한 가장 큰 '명분'이었던 "과외 추방 목표는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고 평가했다. 이어 동아는 "평준화체제에서 저소득층 자녀가 서울대에 진학할 가능성은 날로 희박해지고 있는 것"이라며 "근본대책은 저소득층의 우수학생들이 다른 우수학생들과 같은 교실에서 수업하면서 경쟁을 통해 명문대로 진학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라고 주장해 사실상 평준화 폐지에 무게를 실었다.
중앙일보는 사설을 실지 않았으며, 이번 연구결과를 근거로 노골적으로 '평준화 폐지'를 거론하지 않아 조선·동아와 차이를 보였다.
26일 2면 <"평준화가 학력 세습 불러">에서 중앙은 이번 연구 결과에 대해 "고교 평준화 정책, 쉬운 입시 문제 등이 사교육을 부추겨 저소득층 학생의 일류대 진학을 오히려 방해했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28일에는 이번 연구에 참여했던 서이종 교수의 기고글을 실었다. 서 교수는 칼럼에서 "이번 연구는 평준화를 포함한 교육정책이 사회적 불평등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며 "평준화의 논의도 존폐에 대한 것이 아니라 사회의 다양한 교육욕구에 상응한 다양한 특성화 학교나 저소득층도 들어갈 수 있는 값싼 우수학교를 어떻게 많이 만들어 갈 것인가로 모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향신문은 서울대 연구결과를 1면 머릿기사로 보도하는 등 높은 관심을 보였다.
경향은 1면 <서울대 입학률 16배 높다>에서 이번 서울대의 연구 결과로 "입시제도 개선을 둘러싼 논란이 한층 가열된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2면 <'사교육 힘'으로 학력세습>에서 연구결과를 분석하며 서울대 연구팀의 의견과 함께 전교조 측의 의견을 함께 실어 차이를 보였다. 이어 <평준화 30년 뜨거운 존폐논쟁 예고>에서는 그간 서울대 정운찬 총장이 "(평준화) 폐지론을 두둔하는 발언을 자주 해왔다"며 서울대가 "교육의 시장논리에 힘을 실어준 것"이라고 평했다. 경향은 평준화에 대한 교육계 내의 입장차이를 보도하며 평준화 논란이 쉽게 판가름나기는 어려울 것 이라면서도, 그간 평행선을 달려온 평준화 논쟁이 지금까지와는 사뭇 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설 <학력대물림 해소책 시급하다>에서 경향은 "이번 연구결과는 교육불평등 해소를 위한 논의의 단초가 돼야 한다"며 "공교육 정상화 종합대책을 마련중인 교육부는 이 자료를 심층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겨레신문은 <고소득 전문직 자녀 서울대 입학률 16배>에서 이번 연구결과를 두고 "고교 평준화에 책임을 돌려 논란이 일고 있다"며 김광억 교수의 주장과 이에 대한 전교조 측의 반론을 보도했다. 또한 <취재파일/'학벌대물림' 평준화탓인가>에서 "1990년대에 전북·강원 등 전국 40% 지역이 비평준화로 돌아섰지만, 이 지역에서 서울대 진학률은 오히려 더 떨어지고 사교육 문제는 더욱 악화했다"며 "지금 필요한 것은 고교 평준화에 대한 괜한 시비가 아니라, 사교육을 받지 않고서는 '일류대'에 들어가기 힘든 현행 대입제도에 대한 대안을 찾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간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은 툭하면 '평준화 제도'를 모든 교육문제의 핵심문제인 듯 보도해 왔다. 이번 서울대 연구결과 이전에도 공공연히 평준화 폐지를 주장해 왔으며, 심지어 작년에는 강남지역의 부동산 가격 급등현상도 '평준화 제도' 탓으로 돌리고 있다.
이들 신문은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의 조사결과를 두고 평준화 폐지 부분을 부각하며 '폐지론'에 다시 불을 지피고 있다. 서울대의 조사결과는 현재 우리 교육의 문제를 진단할 수 있는 하나의 연구자료로써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평준화 문제로 연결시켜 여론화하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보도태도는 그 저의를 의심스럽게 한다. 오죽하면 안병영 교육부총리가 이 같은 언론들의 보도에 대해 "언론이 지나쳤다"며 "평준화가 완벽한 제도인 양 집착하는 것도 문제지만 평준화를 모든 교육문제의 원인으로 몰고 가는 일부 언론들의 시각은 하나의 이데올로기" "평준화를 흔들지 말고 작지만 성공한 학교에 관심을 가져달라"라고까지 말했겠는가.
서울대에도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한해 동안 정운찬 총장은 수시로 학력저하와 사교육 문제의 원인이 평준화 제도에 있다고 평준화 폐지를 주장해왔다. 우리 교육계에서 서울대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하다. 서울대의 입시제도가 우리나라 대학 전체의 입시제도 변화에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라고 한다. 이 같은 영향력 때문에 일각에서는 서울대 총장이 교육부 장관이라는 웃지 못할 농담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 서울대 총장이 수시로 '사견'이라는 단어 뒤에 숨어 평준화를 흔들고, 이번에는 연구결과마저 이용해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려는 정황에 우리는 큰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우리는 서울대가 '학력세습'의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진지하고 심도 깊은 연구 결과를 내놓기를 기대한다.
2004년 1월 29일
(사)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함께하는 교육시민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