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윤영관 외교부장관 경질’ 관련 신문보도」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4.1.17)
문책 이유는 ‘갈등’이 아니라 ‘항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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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15일 윤영관 외교부장관이 낸 사표를 전격 수리했다. 청와대는 “외교노선에 있어서 혼선과 잡음이 있었고 최근 외교부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에 대해 지휘?감독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데 대한 사의를 표시해 이를 수리했다”고 밝혔다. 또 노무현 대통령도 이날 오전 언론사 경제부장들과의 오찬에서 “이번 사태는 외교부와 국가 안전보장회의 간 갈등이 아니라 결론이 난 이후 딴소리하고 브레이크를 거는, 대통령에 대한 항명”이라고 말해, 윤 장관이 물러나게 된 발단이 최근 물의를 일으킨 외교부 직원들의 발언 파문에서 비롯됐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16일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은 이번 사건을 참여정부의 외교노선을 둘러싼 외교부와 NSC의 ‘파워게임’으로 몰아가면서, 마치 참여정부가 자기와 다른 외교노선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반대파를 제거한 듯이 보도했다. 또한 그들은 윤 장관의 경질로 인해 대미 외교에 심각한 차질이라도 빚어질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다.
이 같은 보도행태를 보이는 대표적인 신문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다. 조선?동아와 다른 신문들의 차별성은 1면 제목에서부터 드러난다.
조선과 동아는 16일 1면 머리기사를 각각 <“자주적 외교 못했다”> <청와대 ‘자주외교’ 파장>으로 달아 윤 장관의 경질을 이른바 ‘자주파’ 대 ‘동맹파’의 갈등 탓으로 몰고 갔다.
반면 다른 신문들은 이를 1면 머리기사로 취급하지 않았으며, 제목에서도 <노“항명에 대한 인사조치”>(중앙일보), <노 “이번사태는 항명” 윤외교 문책성 경질>(경향신문), <윤영관 외교 전격경질>(한겨레신문)로 달아 ‘항명에 대한 문책’에 초점을 맞췄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문제는 기사내용에서 보다 분명히 드러난다.
조선일보는 1면에서 “이번 사태의 직격탄은 한국 외교, 무엇보다도 한?미동맹을 향하고 있다”, “윤 장관 경질을 통해 50년 한국 외교의 틀을 바꾸겠다고 선언한 것”이라며 윤 장관의 경질로 ‘한?미동맹’에 문제라도 생긴 양 확대 해석했다. 사설에서도 조선은 윤 장관의 경질이 “노무현 정권의 외교 노선은 ‘자주’이며 이 ‘자주의 기준’에 벗어난 외교관은 교체하겠다고 대내외적으로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기존의 대미 외교라인을 ‘의존적’이라는 이유로 통째로 문책하는 것은 건국이래 최초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라고 사실을 왜곡했다.
이어 조선일보는 3면에서 <“한?미관계 더 어려울 것”>이라며 LA타임즈의 주장을 제목으로 인용했으며, “한국 정부에 대한 불신감이 커질 수 있다”(한 외교소식통), “미국은 ‘그 사람마저도 버텨내지 못하다니…’라는 인식을 하게 될 것”(김영진 조지워싱턴대 명예교수) 등의 발언을 인용해 당장 한미관계에 문제가 생길 것처럼 보도했다. 그러나 이 기사에서 주요 취재원들은 대부분 ‘익명’이었다.
조선일보는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번 사태의 발단을 이라크 추가파병 논란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조선은 <파병안 대통령에 퇴짜맞자 평소 술안먹던 윤장관 폭음>에서 이 같이 보도했으며, 심지어 노 대통령의 ‘최측근 참모’였던 윤 장관과 노 대통령의 사이가 벌어지게 된 원인으로 ‘이종석 NSC 사무차장’을 지목하고 ‘이 차장이 (윤장관에게) 완승한 것’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조선은 이날 사설란을 통 틀어 <노무현 대통령의 ‘자주’에 대해 묻는다>라는 사설 하나를 실었다. 이 사설에서 조선은 “노 정권은 현 사태에 대해서 그 동맹국가들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며 윤 장관의 교체가 동맹국들의 이해를 구해야 될 사안이라도 되는 양 호들갑을 떨었다. 심지어 조선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대외정책에까지 침투한 위험천만한 ‘운동권적’이고 ‘문화혁명식’ 발상만이 너울거리고 있다”며 ‘색깔공세’까지 폈다.
동아도 조선일보와 유사한 보도행태를 보였다.
동아는 1면 기사에서 “외교노선을 둘러싼 이른바 ‘자주파’와 ‘한미동맹파’간의 파워 게임에서 자주파가 승리했음을 의미한다”며 “이에 따라 앞으로 정부의 외교노선은 자주적 색채를 보다 분명히 하는 쪽으로 전환할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이어 <자주파 승리…한미관계 타격 우려>에서도 “외교 노선의 비자주성을 문제삼아 외교부 수장을 문책 경질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자주적 외교노선’으로 한미관계가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를 부각했다.
사설 <외교장관 경질 ‘최악의 선택’이다>는 “윤 장관의 외교가 잘못됐으니 버리고 코드를 바꾸겠다는 선언이 아닌가”라며 ‘공직사회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했다. 동아는 또 “외교장관 경질은 주요 외교 파트너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청와대가 언급한 의존적 외교와 자주 외교의 대상으로 보이는 미국과의 관계가 특히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동아일보 역시 이번 사태가 이라크 파병 문제로 심화된 ‘외교통상부와 국가안전보장회의간의 갈등’ 때문이라며 ‘386참모와 자주파’들이 윤 장관의 외교정책에 대해 ‘배신감’을 느꼈고 이것이 갈등의 원인이 된 것이라고 추정하기까지 했다.
반면 중앙일보와 경향신문, 한겨레신문은 이번 사태의 배경에 대외정책에 대한 갈등이 깔려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윤 장관 경질의 직접적인 원인이 외교부를 제대로 통솔하지 못한 ‘문책’이라는 데에 중심을 두어 보도했다.
중앙일보의 경우 일반 기사에서는 윤 장관의 경질이 외교부 간부의 부적절한 발언에 대한 문책이라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중앙은 사설에서 ‘외교노선을 둘러싼 갈등’에 좀더 무게를 실었다.
사설 <동맹파는 반민족, 자주파는 애국이냐>에서 중앙은 윤 장관에 대한 경질이 “외교부와 청와대 간의 외교노선을 둘러싼 갈등의 결과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이런 문제로 장관까지 경질했으니 이제는 자주외교를 실천할 사람을 내세우겠다는 말인가”“한국 외교의 장래가 우려된다”며 이른바 ‘자주파’가 외교에서 주도권을 쥐는 것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반면 조선일보 등이 주장한 대외정책의 방향 전환 문제에 대해 중앙은 1면에서 ‘큰 틀의 변화라고 보기 어렵다’는 반기문 보좌관의 말을 보도했으며, 3면 <불편한 11개월 자주에 밀린 동맹외교>에서도 “외교노선의 변화 여부는 후임 장관의 성향과 노선을 봐야 판단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향신문은 참여정부 내에 대외정책에 대한 이견이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도, 윤 장관의 경질이 “조직 장악의 실패 책임을 물은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 경향은 문제의 발언을 한 외교부 대미라인의 일부 간부들이 ‘자주파들을 갈아마셔야 된다’는 폭언을 하고, 이른바 ‘자주파’로 지목한 4,5급 직원들의 인사에 불이익을 주었으며, 파병과 용산기지 이전 등에 관련된 주요 정보를 외부에 누설하는 등 공무원으로서 있을 수 없는 행태를 보였다고 보도했다. 아울러 경향은 “의존적 대외정책에 연연해온 기존의 외교부 북미라인은 대대적 수술이 필요하다”면서 “파문을 신속하게 수습하되 외교력의 공백이 일어나지 않도록 신축적이고 유연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겨레신문도 윤 장관이 물러난 이유가 외교부 일부 간부의 ‘대통령 폄하 발언’ 파문에 대한 책임을 진 것이라고 보도했다. 또 3면 <혼선 ‘솎음질’ 외교라인 정비>에서 “윤 장관 경질이 외교노선의 변화라기보다는 걸림돌을 제기하는 ‘가지치기’의 성격인만큼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중심으로 한 기존의 외교라인이 크게 흔들릴 가능성은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사설 <자주적 외교 펴는 계기 돼야>에서 한겨레는 “외교부 조직을 장악하지 못한 윤 장관에 대한 불신의 정도를 볼 때 퇴진은 불가피해 보”이며 일부 외교관의 부적절한 언행이 예사롭게 넘어가는 “외교부의 전반적 분위기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한겨레는 문제발언을 한 외교부 직원들이 △노 대통령과 이종석 차장 등의 학력을 문제삼고 △홍사덕 의원의 색깔론 옹호 등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냈으며 △참여정부의 외교정책을 따라야 한다는 부하직원들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준 사실을 보도했다.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된 외교부 일부 간부들의 언행은 공직자로서 용납될 수 없는 수준이다. 이와 같은 심각한 사태를 윤 장관이 제대로 통제하거나 수습하지 못했다면 그에 따르는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조선동아는 ‘외교부와 NSC의 갈등론’을 끌어와 참여정부가 대외정책의 이견에 대해 반대파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아무 잘못이 없음에도 이른바 ‘동맹파’를 옹호하던 윤 전 장관이 부당하게 물러나는 것처럼 사태를 왜곡했다.
우리는 조선?동아가 중요 대외정책에 대해 자신들과 조금이라도 다른 방향으로 결정이 나면 대통령의 결정에 승복하지 않고 사석과 공석에서 입에 담을 수 없는 항명행위를 한 이른바 ‘동맹파’들을 지속적으로 감싸고도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이 같은 태도야말로 공무원의 본분에서 벗어난 사람이라도 자신들과 이념적 성향이 같으면 왜곡보도를 해서라도 보호하겠다는 진정한 ‘코드맞추기’가 아닌가. 이번 사태의 배경에는 물론 조선?동아가 지적한 대로 외교라인 내의 대외정책에 대한 근원적 갈등이 자리하고 있다. 이것은 민주화 과정에서 드러날 수밖에 없는 외교라인 내의 어쩔 수 없는 갈등이다. 그러나 이번 윤 장관 경질의 직접적인 이유는 ‘갈등’이 아니다. 대통령의 대외정책결정에 대한 부적절한 항명, 그리고 이를 통솔하지 못하고 모호한 태도를 취한 부처 장관에 대한 문책이다. 배경과 직접적인 원인을 혼재해 보도함으로써 독자들을 혼란시키는 행태를 조선?동아는 중단하라. 혹시 조선?동아는 배경과 원인의 차이를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2004년 1월 17일
(사)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