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노 대통령 특검 거부권 행사 및 한나라당 강경 대응 관련 주요 신문 사설에 대한 논평(2003.11.26)
등록 2013.08.07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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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야당 한나라당에 휘둘리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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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신문들은 한나라당에 재의절차를 밟으라고 요구하지 않나.
25일 노 대통령이 특검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뒤 정국이 극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한나라당은 재의절차조차 거부한 채, 최병렬 대표 단식 투쟁-소속 의원 사퇴서 제출 등 ‘강경투쟁’으로 대응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예산안 처리를 포함해 주요 국회 의사일정이 차질을 빚게 됐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언론은 한나라당의 행태는 크게 문제삼지 않으면서 정국 파행의 책임을 주로 ‘거부권 행사’에 돌리는 등 편파적인 보도태도를 보이고 있다.
26일 주요 일간지들은 일제히 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한나라당의 강경 대응을 사설로 다뤘다. 이들 사설은 크게 두 경향으로 나뉜다.
첫째는 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아쉬움’이 남는다 해도 국회를 파행으로 몰고가는 한나라당의 행태가 더욱 문제라는 시각이다. 한겨레의 사설이 여기에 해당한다.
둘째는 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비판하면서, 국회 파행과 대치 정국의 책임을 노 대통령에게 묻는 시각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의 사설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들 조선, 동아, 중앙, 경향 네 신문의 주장은 일관성이나 논리적 타당성 또는 기본적인 균형성 측면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점들이 있다.


조선일보는 국회를 파행으로 몰고가는 한나라당에 대해서는 일체의 언급 없이 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만을 문제삼았다.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한나라당이 반발할 것을 알면서도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잘못’이라는 논리를 펴면서 정국 혼란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탓으로만 돌렸다.
조선일보는 사설 <측근 비리에 재신임 걸겠다던 대통령이>에서 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집중적으로 질타했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주장은 ‘검찰 조사 후 특검 가능’이라는 노 대통령의 기본 입장을 쏙 빼버림으로써 상황에 대한 독자들의 정확한 판단을 흐릴 우려가 컸다.
조선일보는 노 대통령이 측근 비리 문제로 재신임까지 묻겠다고 해놓고선 “SK의 대선자금 문제가 터져 나오면서 정국은 선후를 가리기 힘든 뒤죽박죽이 돼 버렸고 그 상황에서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라며 노 대통령이 특검을 원천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것처럼 썼다. 반면 ‘검찰 조사 후 특검’ 제안을 거부하고 재의 절차조차 외면한 채 강경 대응으로 일관하는 한나라당과 이로 인한 국회 파행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을 하지 않았다.


한편, ‘거부권이 법에 어긋나는 일은 아니지만 한나라당의 반발로 초래될 국정 혼란을 먼저 생각했어야 했다’는 식의 동아일보와 중앙일보의 논리는 편파적인 사태 해석일 뿐 아니라 사실상 ‘궤변’이다.
동아일보는 자신들이 특검법안의 수용을 요구한 것은 “거부권 행사에 따르는 여야 극한 대치와 국정혼란을 크게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노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비판했다.
“한나라당은 원내 과반의석을 가진 제1당이다. 등원을 거부하면 의결정족수 미달로 새해예산안은 물론 어떤 의안도 심의조차 못한다. 국정도 민생도 정지되는 것이다. 이런 현실을 알면서도 대통령이 ‘어디 해 볼 테면 해 봐라’는 식으로 맞서는 것은 ‘오기 정치’로 비칠 수 있다”는 게 동아일보의 주장이다.
중앙일보도 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비판하면서 “당장 한나라당 의원들이 국회 의사일정에 불참하고 전면 투쟁을 외치고 있으니 정국의 극한 대립은 피할 수 없게 됐다.…따라서 앞으로 발생할 국정 혼란과 정국파행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1차적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동아와 중앙은 거대 야당인 한나라당의 반발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문제 있다고 판단되는’ 특검법안도 수용해야 한다는 것인가. 이는 “구더기 무서워 장 못담는” 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조선일보의 사설에서도 이와 비슷한 논리가 나왔다. 그 또한 궤변의 수준이 동아, 중앙을 능가하는 것이었다. 조선일보는 거부권 행사를 두고 “법이 허용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아니”라며 “그런 식이라면 매사에 ‘법대로’를 내세웠던 군사정권과 뭐가 다르냐”고 질타했다. 우리는 조선일보에 묻지 않을 수 없다. 어느 군사정권이 매사에 ‘법대로’를 내세워 국정을 운영했는지 근거를 제시해 보라. 조선일보의 대단한 착각이거나 악의적인 사실 왜곡이다.
조선일보는 “한 나라의 대통령은 법이 허용하느냐를 넘어서서 그 권한 행사가 나라의 정상적 운영에 보탬이 되느냐를 포괄적으로 판단할 더 중대한 책임이 있다. 그런 면에서 이번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법을 이용한 통치일지는 몰라도 법의 정신을 살린 법치적 판단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조선일보에 묻고 싶다. 대통령에게는 ‘법대로’를 넘어 ‘법의 정신’을 살린 판단까지 요구하면서 왜 원내1당 한나라당에 대해서는 ‘법대로’ 재의절차를 밟으라는 요구조차 하지 않는가? 한나라당의 강경투쟁을 ‘법의 정신’을 살린 고차원적 판단이라고 보는 것인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의 타당성 여부와 국회 파행을 초래한 야당의 대응은 별개로 비판하는 것이 공정한 태도이다. 한나라당의 반발로 인한 문제까지 ‘거부권 행사’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국회 파행의 직접 당사자인 한나라당을 옹호하기 위한 편파적인 태도가 아닐 수 없다.


한편, 논리의 일관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도 동아와 중앙, 경향의 사설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이들 신문은 한나라당이 대선자금 전반에 대한 특검안을 들고 나왔을 때 일제히 ‘검찰 수사가 먼저’라고 반대하고 나섰다. 이들 신문은 한나라당이 SK 비자금으로 궁지에 몰리자 ‘국면 돌파용’으로 특검을 이용한다는 비난을 받을 것이라며 ‘일단 검찰 수사를 지켜보자’는 주장을 폈다.
그러다 한나라당이 ‘측근 비리’로 특검법안을 수정하면서 ‘측근 비리 특검이라면 할 만하다’로, 다시 ‘측근비리 특점 수용해야 한다’는 식으로 논조를 바꾸었다. 중앙일보의 경우는 한나라당이 ‘측근비리’ 특검으로 가닥을 잡고 있을 때조차 “검찰이 수사하고 있는 만큼 일단 검찰 수사를 지켜보는 것이 정도”라는 주장을 폈다.
노 대통령이 특검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후 오늘 사설에서 이들 신문은 ‘국정 혼란 예방 차원에서 수용했어야 된다’, ‘국회의 압도적 다수가 찬성했으니 국민의 뜻으로 알고 수용해야 옳다’, ‘검찰 수사로는 부족하니 특검으로 측근 비리를 털고 가야 한다’는 등의 논리를 동원해 거부권 행사를 비판했다.
그러나 초기 이들 신문이 스스로 지적했던 한나라당의 ‘정략적 특검’ 의도를 고려한다면 ‘국회의 압도적 다수 찬성’을 특검 수용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은 무리가 있다. 또 신문들이 ‘검찰이 수사 중이면 지켜보자’고 주장한 지 이제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다.
신문들이 자신의 주장을 뒤집으려면 그동안 검찰 수사가 편파적이라거나 독립성에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에 더 이상 검찰에 맡겨둘 수 없다는 구체적 근거를 제시해야 옳다. 그저 ‘그동안 무엇을 발견했나’ ‘이 수준이면 벌써 수사가 끝나야 했다’는 막연한 주장만으로는 특검을 반드시 수용해야 할 근거가 되지 못한다. 경향신문은 “‘검찰이 수사중이라 안된다’는 등 권위주의 정권 시절 검찰의 특검 반대 논리만 되풀이 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지난 10월 28일 경향이 “검찰의 SK 비자금 수사 결과가 미흡하거나 불공평하다는 평가가 나온 뒤 특검을 추진해도 늦지 않다”고 주장한 것도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특검 반대 논리를 끌어다 쓴 것이란 말인가.
우리는 이들 신문의 편파적 보도 태도 또는 궁색한 입장 변화가 혹여 ‘다수당의 힘’에 끌려 사태에 대한 정확한 판단력조차 상실한 결과는 아닌지 걱정스럽다.
노동자, 농민 등 사회적 약자들의 투쟁에 대해 수구 신문들은 항상 ‘목소리 큰 집단들의 주장만을 들어주어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들이야 말로 목소리 큰 원내 제1야당, 기득권을 쥔 한나라당의 주장에 휘둘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2003년 11월 26일


(사)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