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노 대통령 10일 재신임 관련 신문보도」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3.10.12)
등록 2013.08.07 16:04
조회 299

 

 

 

평가부터 하려는 교만한 태도를 버리고
심층보도로 진실부터 가려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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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노무현 대통령은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최도술씨 SK 비자금 연루와 관련해 "입이 열 개라도 그에게 잘못이 있으면 제가 책임을 져야 한다"며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수사가 끝나면 결과가 무엇이든 그동안 축적된 여러 가지 불신에 대해 국민들에게 재신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재신임' 결정의 배경에 대해 "국회환경과 언론환경이 나쁘다"고 언급한뒤 "도덕적 신뢰만이 유일한 밑천이었는데, 거기에 적신호가 왔다…달라진 새시대의 요구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심층보도보다 평가 먼저 하는 언론


'국민들에게 재신임을 묻겠다'는 노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대다수의 언론은 대통령의 발언이 '적절했느냐' '아니냐'는 평가를 내리는 데 급급했다. 일부신문들은 이번 발언이 노 대통령의 정치적 '노림수'라든가 개인적인 '스타일'로 몰아붙이며 사태를 왜곡했다.
가장 대표적인 신문은 조선일보다. 조선일보는 기사에서 노 대통령의 긴급기자회견을 '벼랑끝 승부수' '대책 없는 즉흥발상'이라고 폄하했다. 조선은 사설 <국정 공백 없도록 재신임 방법·시기 명백히 해야>에서 "문제의 발단은 노 대통령의 '대통령 관'에 있다"며 조선일보가 조장해 온 '코드인사'와 최근의 정치자금 연루설 문제 등을 거론하며 모든 책임을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돌렸다. 특히 조선은 "이 문제에 대한 분명한 결론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대통령의 정상적 리더십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 됐다"며 국정 혼란을 줄이기 위해서 "노 대통령이 재신임 시기와 방법, 앞으로의 정치일정 등에 관한 분명한 입장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 역시 조선일보와 '코드'를 맞추며 노 대통령을 공격하는데 앞장섰다. 사설 <국정 볼모로 한 '재신임' 승부수인가>에서 동아는 "만에 하나 대통령이 어떤 '충동'에 못 이겨 이처럼 엄청난 결정을 내렸다면 이는 더욱 무책임한 일"이라며 이번 결정을 대통령 개인의 '성격' 문제로까지 몰았으며, "'정치적 승부수'를 던진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고 추정했다.
중앙일보는 '국정혼란'에 초점을 맞춰 이번 사태를 평가하고 있어 다른 두 신문과 차이를 보였다. 중앙은 사설 <왜 재신임인가>에서 "정치가 극도로 불안한 나라에 외국 투자자들이 투자하려고 하겠으며, 국내 기업인들 투자할 마음이 생기겠는가"라며 경제에 미칠 파장을 우려했다. 중앙은 "그는 위기 때마다 정면돌파 또는 정치생명을 건 벼랑끝 전술을 구사해 왔다"며 "만약 이번 재신임 문제도 유사한 맥락에서 제안한 것이라면 대통령이란 자리가 갖는 무게를 간과한 것"이라면서도 "고뇌에 찬 결단일 수도 있다…그렇다면 방법을 잘못 택한 것"이라고 했다. 중앙은 "재신임을 묻는 결연한 자세로, 사즉생의 각오로 국정을 주도하고 중심을 잡는다면 전화위복의 전기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고 주장해 조, 동과는 차이를 보였다.
경향신문은 사설 <대통령 재신임 제안 경솔했다>에서 노 대통령의 결정을 비판하며 "단지 국정운영을 제대로 하려면 도덕적 신뢰를 회복해야 하고, 이를 위해 재신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며 조급한 발상"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경향은 재신임의 방법상의 문제를 거론하며 "만에 하나 재신임 문제가 난국을 모면하기 위한 정치적 승부수이거나, 내년 총선을 겨냥해 국면전환을 염두에 둔 것이라면 더 큰 문제"라고 보도했다.
한겨레신문도 사설 <'재신임' 발언 부적절하다>에서 "재신임은 법에도 규정이 없으며 법치에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한겨레는 미흡하나마 "이참에 한국 정치가 깨끗하고 투명한 시대를 여는 계기를 붙들어야 한다"며 "부패비리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정치권과 공직사회에 경종이 돼야 한다"고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선정적 보도태도로 본질 흐려


신문들의 선정적인 접근태도도 문제다. 11일 대부분의 신문들은 '폭탄선언''혼란''파문''충격'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
선정적 접근 역시 조선일보가 가장 두드러졌다. 조선일보는 노 대통령의 '재신임' 발언을 '폭탄선언'이라고 규정했으며, <국민 불신 위기감…벼랑끝 승부수>(2면) <"대책없는 즉흥발상…나라혼란 걱정">(5면)이라며 노 대통령의 개인적인 '성향'을 부각하고 이번 발언을 '정치적 책략'이라고 단정지었다. 또한 정부 반응에서도 <고건 총리 "홍두깨로 맞은 기분"> <"워낙 황망해 정리가 안된다"장관들 당혹감>(4면) 등 혼란스럽고 당황하고 있다는 것을 부각했다.
동아일보도 <"지지율 만회 겨냥 위험한 승부수"> <노무현식 승부수 "밑져야 본전" 모든 것 버려>(2면) <'집권초 레임덕'…정권걸고 도박>(3면)이라며 노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정치적 노림수'로 몰며 '불안감'을 강조하는 등 조선일보와 보조를 맞췄다.
중앙일보는 '재신임 파문'이라고 표현하며, <"너무 놀랐다…국정 혼란 우려">(2면) <국민투표 한다해도 산넘어 산>(4면) <불신임땐 후임 선출 놓고 격랑><"이제 겨우 안정 찾아가는데…"당황>(5면) <경제·민생 더 급한데…>(8면)라며 '국정 공백'과 '혼란'에 대한 우려를 강하게 드러냈다.
한겨레신문 역시 <국정운영 타개 벼랑끝 승부수>(2면) <'재신임' 정면돌파 통할까>(6면)에서 노 대통령의 '정치적 의도'를 부각했다. 또한 한겨레는 <"말 그대로 하라" 뒷문 잠그며 압박>(5면) <검찰총장도 중수부장도 "할말없다" 깊은 충격> <"무슨말 하겠나" 무거운 침묵>(7면) 등 정치권과 각계의 혼란스러운 반응을 전하는데 할애했다.
경향신문은 노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재신임 충격'이라고 표현하는 등 다소 차분한 대응을 보였으며, <"축적된 불신 국민의 심판 받겠다">(3면) <메가톤급 '폭탄선언' 정국 대격랑>(4면) <4당 당황속 '총선 손익계산' 분주>(5면) 등 노 대통령의 기자회견과 이후 정국의 변화에 초점을 맞췄다.

 


다른 것 있을 수도… 의혹 부풀리기 앞서가는 언론


심지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최도술 씨와 노 대통령의 연루 의혹을 부각하며 아직 밝혀지지도 않은 혐의를 기정사실화 하는 '왜곡'을 통해 대통령을 공격했다.
조선일보는 <노대통령 '최도술 11억' 연관있나><"최씨 수사 어떻게 하나 결과 나와도 믿어줄지…">(5면)에서 아직 사실관계가 정확하게 밝혀지지도 않은 최도술 씨의 비자금 사건을 두고 노 대통령과의 연루를 기정사실화하고 나섰다. 조선일보는 최씨에게 '집사'라는 꼬리표를 달아 노 대통령과 연결시키며, "최씨 건과 전혀 무관하다면 수사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이렇게 서둘러 극약 처방식 대응을 할 이유가 없다…"며 악의적인 추측보도를 계속 내보냈다. 또한 '서울지검 한 검사'의 말을 빌어 "최도술씨가 받은 돈과 대통령 사이에 아무 관련이 없다고 해도 이런 상황에서 그런 수사 결과가 나온다면 국민들이 선뜻 받아들일지 걱정"이라고 쓰기까지 했다.
동아일보는 <"도덕성 훼손돼 국가운영 어렵다"> <'최도술 10억' 대부분 파악한 듯>(4면)에서 조선일보와 마찬가지로 노 대통령을 공격했다. 특히 동아는 <일부선 "다른 것 있을 수도…이광재실장 의혹도 무관치 않아">라고 작은 제목을 달아 노 대통령과 청와대가 대단한 '비리사건'에 연루된 듯 서술했으나, 실제 기사내용은 "이광재 대통령 국정상황실장의 금품수수 의혹 등도 사실 여부를 떠나 노 대통령의 결심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는 일반적인 것이었다.
경향은 <노 '최도술 덫' 치명타 인식>(6면)에서 '자신감을 갖고 국정을 추진하기 힘들 정도로 최 전비서관의 혐의가 심각했다'며 최씨의 비리사실을 추정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날선 검'에 측근 5인 상처>(7면)에서 경향은 검찰 수사를 받게 된 5명의 청와대 출신들을 거론하며 "검찰개혁과 검찰 독립 의지의 실천이 부메랑이 돼 자신에게 되돌아온 꼴"이라고 검찰과의 '악연'을 부각했다.

 


여론조사를 통한 흔들기


'재신임' 관련 여론조사 보도에서도 문제가 드러났다. 중앙과 한겨레는 국민투표를 통해 재신임을 물을 경우 재신임이냐 불신임이냐를 초점으로 삼았으나, 조선일보는 다른 두 신문과 달리 '재신임을 묻는 것'이 적절하냐 아니냐를 부각했으며 질문에서도 '의도성'을 엿보였다.
조선일보는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비리 의혹 등과 관련해 노 대통령의 재신임을 국민에게 묻는 것'에 대해 적절하다 50.2%, 적절하지 않다 38.8%"라고 보도했으며, 재신임 방식에 대해서는 '국민투표'가 52.9%로 조사됐다고 보도했다. 조선은 여론조사 질문에서도 최도술 씨를 거론하는 '집요함'을 엿보였다.
중앙일보는 재신임 하겠다가 47.7% 불신임이 44.4%로 나왔으며, 재신임을 묻는 방식에 대해서는 58.1%가 국민투표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신임 시기는 총선 전후가 53.5%, 올해 안 44.3% 였다.
한겨레신문의 여론조사 결과도 "재신임" 49.8% "불신임" 44.5%로 나와 중앙과 비슷한 결과를 보였다. 한겨레는 조선일보와 같이 노 대통령의 결정을 평가했으나 "국민에게 재심임을 묻겠다는 노 대통령의 결정에 대해서는 52.9%가 '잘한 결정'…'잘못한 결정'이라는 반응은 37.6%"라고 보도해 접근방식에서 차이를 보였다.
그러나 한겨레는 국민투표 결과를 '예측'해 '투표전망은 불신임 55%'라고 작은 제목으로 달았다. 또한 이어진 기사에서도 "노 대통령을 재신임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갈렸으나, 실제 재신임이 안될 것으로 보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고 보도했다. 결과를 예측하는 '전망치 조사'는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도 계속 문제로 지적되어 왔으나 한겨레가 또다시 이 같은 조사방식을 택해 문제로 지적되었다.

 


불신임사례가 더 많다고?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은 재신임 투표와 관련한 '사례 보도'에서도 사실을 왜곡했다. <佛드골 '정책 연계한 신임투표' 패배하자 사임>(조선) <69년 결국 패배해 사임>(중앙) 동아일보는 <재신임 방식 아직 안개속>이라는 기사 중 작은 제목으로 '드골, 69년 국민투표서 불신임 받고 사임'이라고 다는 등 국민투표를 통해 실패한 사례를 부각시켰다. 반면 한겨레신문은 <불신임 유례 거의 없어>라고 보도해 차이를 보였다.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의 경우 대통령이 재임 기간 중 총 4번의 국민투표를 했으며 그 중 3번은 성공했으며, 69년 마지막 국민투표에서 실패해 스스로 물러났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우도 두 번의 국민투표에서 성공했다. 그러나 조선, 중앙, 동아는 드골의 실패사례 만을 부각했다.


국가전체와 관련된 주요사안에 대한 우리 신문의 접근수준의 일천함은 우리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가늠하게 해준다. 조선·동아 등 일부언론은 어떤 사건이 터질 때마다 대통령 흔들기와 연관시켜 악용해왔다는 의혹을 이번 재신임 관련보도에서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기도 했다.
정녕 우리 일부언론은 세상사를 마음대로 예단할 만큼 전지전능한 경지에 올라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가. 국가적 대사가 터질 때마다 심층보도를 통해 독자들과 함께 진실을 확인한 뒤, 길을 찾으려 하기는커녕, 먼저 평가하고 사태전개를 예단하는 교만한 일부 신문의 보도태도야말로 우리 사회 위기를 부추기는 근본 원인이 아닌가. 일부언론은 '세치 혀'로 세상사를 왜곡하고 농단 하는 교만한 보도태도, 암흑의 동굴에 언제까지 갇혀있을 것인가. 그들이 사실보도를 통해 정론지로 거듭나길 기대하는 것은 정녕 연목구어인 것인가.

 


2003년 10월 12일


(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