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2023)_

-반 헌법적이고 무책임한 사실왜곡 중단해야

ILO협약을 대하는 보수언론의 민낯
김영훈 (정의당 ‘노동이 당당한 나라’ 본부장)
등록 2019.05.27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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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2일 이재갑 노동부장관은 “정부는 금년 정기국회에서 국제노동기구(ILO) 3개 협약 비준동의안과 관련 법안이 함께 논의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논란이 됐던 ILO협약 비준 관련 입법과의 선후관계에 대해 ‘동시 추진’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이다. 

 

진보성향 언론에서는 환영하는 사설과 해설기사를 실은 반면 보수언론에서는 비판 기사를 쏟아냈다. 5월23일 서울경제신문은 「“ILO협약 先비준”...대놓고 勞 편든 정부」 라는 기사를, 한국경제신문 역시 「정부, 끝내 ILO핵심협약 비준 강행...勞에 굴복」을 주요기사로 실었다. 비판논거는 선 입법 후 비준이던 기존 입장을 현 정부에서 동시추진으로 변경한 것(서울경제신문이 주장하는 선 비준은 사실이 아니다)과 ILO협약이 지나치게 노동계 편향이라는 것.

 

곡학아세의 진수는 같은 날 조선일보 1면 「전교조 합법화시킬 ILO협약...정부, 기어코 “국회에 비준안”」 기사였다. 보수언론 주장처럼 정부가 국회에 ILO협약 비준안을 제출하는 것이 노동계 압박에 굴복하여 ‘기어코’ 강행하는 것인지? 우리나라가 ILO협약을 비준해서는 안 되는 나라인지를 살펴본다.     

 

ILO기본협약 비준은 국제사회와의 약속이자 의무

우선 용어부터 정리하면, 일부 언론에서 정부가 비준 의사를 밝힌 제87호, 98호 등을 핵심협약으로 번역하고 있지만 본고에서는 ILO 설립목적인 ‘사회정의와 양질의 일자리(ILO Standard for Social Justice & Decent Work)’를 실현할 기초가 되는 국제 약속임으로 기본협약(Fundamental Convention)으로 명명한다.

 

1919년 공장노동에서 1일8시간 주48시간 노동제를 명시한 제1호 협약을 시작으로 2011년 가사노동에 관한 협약 등 총 189개 협약이 의결되었는바 1998년 총회에서 이중 기본이 되는 4개 분야 8개 협약을 모든 회원국이 준수하고 실현 할 의무를 가진다는 ‘노동의 기본원칙과 권리에 관한 선언(Declaration on Fundamental Principles & Rights at Work)’을 채택했다. ILO기본협약 실현은 각국 경제발전 수준이나 정치상황과 무관하게 모든 나라 모든 사람에게 적용돼야 할 보편적 인권임을 천명한 것이다. 

 

정부의 ILO기본협약 비준은 노동계에 굴복한 것이 아니라 국제사회와 약속이자 ILO회원국으로서 의무를 ‘뒤늦게(1991년부터 비준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이행하는 과정에 있을 뿐이다.
 

ILO핵심협약, 노동계 편향 아닌 기본 원칙
둘째, 기본협약 제87호「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 협약(1948년)」 제98호「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협약(1949년)」은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는 우리 헌법 33조 규정에 비해 특별하거나 새로울 것 없는 노동3권 보호에 관한 기본원칙이다. 

 

제헌헌법 제정시기와 ILO 기본협약 의결시기가 비슷한 것은 2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 국제사회가 전쟁 원인이 노동권을 부정한 파시즘과 군국주의에 있으며 ‘항구적인 세계평화를 위해서는 각국의 노동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ILO기본협약을 비준해야 전교조 ‘합법화’ 길이 열리는 것도 아니다. 합법화라는 표현 자체가 노동조합 설립을 신고제로 운영하는 노조법 취지와 헌법 정신에 반할 뿐 아니라 박근혜정부가 행한 ‘노조 아님’통보를 철회하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ILO핵심협약이 노동계 편향이라는 주장은 공공연하게 헌법을 부정하는 발상이자 자신들의 인권수준을 국제사회에 보여주는 누워서 침 뱉기다.

 

한-EU FTA에도 ILO기본협약 비준이 의무

마지막으로 미비준으로 인해 현실화되고 있는 EU와의 통상 분쟁 관련 문제이다. 2011년 7월 발효된 한-EU FTA에는 ILO기본협약 비준을 체약국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보수언론에서는 선언적 규정일 뿐 무역 분쟁 전례가 없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한-EU FTA는 노동의무가 포함된 최초의 무역협정 즉 ‘새로운 세대의 무역협정’이며 상대의 일관되고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협정의무를 위반한 일이야 말로 전례가 없다.

 

EU 입장에서 한국이 기본협약을 비준하지 않는 것은 낮은 임금과 노동조건으로 무역상 이득을 얻기 위한 불공정경쟁, 사회적 덤핑으로 간주한다. 무역보복이 없을 것이란 주장 역시 무지하거나 무책임할 뿐이다.    

 

스스로 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 굴복인가. 이는 마치 새해 초 결심한 금연 약속을 ‘나는 기어코 지키기로 했다’는 표현에 다름 아니다.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기어코’가 아니라 ‘비로소’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시시비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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