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2023)_
진화하는 언론에 대한 공작, 그리고 언론의 당면 과제고승우(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상임대표•민주언론시민연합 고문)
오늘날 한국 언론이 처한 어려움은 첩첩산중이다. 정치권력의 언론 공작이 시대에 따라 진화하는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박정희, 전두환 시절 보도지침 등을 통한 직접적인 언론탄압 통제가 자행됐고, 이후에는 정치가 자본력을 동원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노태우는 신문을, 이명박은 방송을 대거 등장시켜 출혈경쟁이 이뤄지도록 만들면서 언론의 제4부 역할을 약화시켰다. 이후 언론은 정치권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거대자본 또는 포털의 통제를 받고 있고 박근혜는 인터넷 신문 통제를 시도하려다 미수에 그쳤다.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AI 등장 등으로 지각변동이 일어나면서 기존 언론은 전방위적 위기에 처해 있다. 일부 TV가 유아나 어린이를 성인 프로그램에서 소비하면서 이들의 인권, 초상권을 짓밟는 것도 광고수입에 목맨 결과의 하나로 보인다. 방송심의에서 이런 것을 방치하는 것은 더욱 심각하다. 대중매체 시장이 총체적으로 뒤얽힌 상황에서도 정치권력이 언론을 정략적 수단으로 삼기 위한 공작 성격의 작업을 계속하는 가운데 최근 방송통신위원장 해임 등을 통해 공영 성격의 언론 영역을 파괴하려 하고 있다. 윤 정부는 한술 더 떠서 예민한 언론보도에 대해 고소·고발을 남발하거나 공영방송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갖가지 조치를 취하고 있다.
오늘날 가짜뉴스가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면서 유럽연합 등은 공영언론 지원과 육성을 위해 노력하는데 한국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서울신문을 거대기업이 인수토록 만든 데 이어 윤석열 정부 들어 YTN 민영화 움직임에 대한 뉴스가 그치지 않고 있다. 언론에 대한 부당한 외부 행태에 대해서는 현직 언론인들이 발 벗고 나서야 할 터인데 그런 치열한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다. 과거 정권 때 언론의 대정부 투쟁 이후 언론인들이 개인적으로 당한 불이익 때문일까. 오늘날 정권이 정조준한 언론사의 최고 결정권자가 자기 직을 걸고 정부에 항의하거나 국회에서 울먹이는 식의 모습만을 보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 5월 12일 한국언론정보학회 ‘언론과 권력’ 세미나에서 YTN 민영화 과정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YTN
한반도 핵 문제 보도, 100년 후 후손들이 어떻게 볼까
최근 국내외 언론 최대 이슈 중 하나는 한반도 핵전쟁 가능성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언론은 제4부의 역할을 통해 전쟁방지, 평화정착 등의 아젠다 제시 노력은 하지 않는다. 수십 년간 국가보안법 통제에 짓눌린 또는 익숙해진 탓일까. 막말로 전쟁 나면 언론사도 무사치 못할 것인데도 한반도 사태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태평하고 한가롭다.
한미 군사동맹은 미국에 슈퍼 갑의 특권을 부여하고 있고, 한국은 예속상태라는 손가락질을 피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한미동맹을 정상화하면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도 그에 걸맞은 쪽으로 견인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런저런 점에 대해 국민적 집단지성의 결실을 보기 위해서라도 언론이 나서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과 같이 언론이 실질적인 직무유기를 할 경우 50년, 100년 후 후손들이 무어라고 할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미국이 자국 이기주의를 챙기는데 국제 깡패와 같은 짓을 하고, 한반도 군사개입도 그런 연장선상에서 벗어나지 않는데도 ‘70년 혈맹’이라는 깃발 아래 국내 주류언론은 통일된 모습을 보인다. 윤 정부가 미국과 일본에 ‘올인’하면서 민족의 운명을 외세의 손에 쥐어 주는 짓을 하는데도 박정희, 김대중, 노무현 등이 앞장선 평화 정착을 위한 노력에 대해 크게 주목하지 않는다. 보수, 진보 언론 엇비슷하다.
진보든 보수든 한반도 평화정책 보도에 소홀
전쟁은 피할 수 있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전쟁이 벌어지는 것은 엄청난 참극이기 때문이다. 전선으로 징집된 군인의 입장에서는 적을 죽이고 살아남는 ‘정의’, ‘애국’을 실천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고 이는 때때로 대량학살 등이 자행되는 광기로 연결된다. 언론이 전쟁 저널리즘에 매몰되어 신무기 개발 또는 군 훈련 현장을 집중적으로 소개할 뿐, 전쟁하지 않고 승리하거나 평화를 쟁취할 방법에 고민하지 않는다면 이는 비극 중의 비극이다.
오늘날 미국은 신냉전을 추진하면서 한미일 군사협력 체제를 몰고 가려 집중하는데, 국내 거대 여·야당은 이에 대한 구체적인 문제 제기나 대국민 설명은 하지 않는다. 이른바 진보정당조차 젠더 문제를 주로 내세울 뿐 한반도 전쟁, 한민족 전멸 우려 등에 대해 대단히 소극적이다.
미국은 세계 최빈국인 북한을 빌미로 중국, 러시아를 견제하는데 한미동맹을 수단으로 삼고 있다. 한미일과 북한의 국력 차이는 몇 천분의 1이 될지 모르겠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핵을 사용하면 정권을 궤멸시키겠다’는 구호만 요란하다. 남북한의 군사적 대치 상태로 볼 때 북한이 궤멸하면 남한은 온전히 남아 통일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인가? 초등학생도 궁금해 할 질문을 모든 언론은 하지 않는다. 이 또한 공작의 결과라 하더라도 제4부의 정체성을 회복, 강화하는 자율적 노력과 자기 의식화가 요구된다. 더 이상 미뤄선 안 된다.
<언론포커스>는 언론계 이슈에 대한 현실진단과 언론 정책의 방향성을 모색해보는 글입니다. 언론 관련 이슈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고 토론할 목적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기명 칼럼으로,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편집자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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