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언론은 ‘공군 성폭력 은폐사건’으로 제대로 명명하라!
아직도 피해자 강조한 사건명, 가해자 감추는 보도 바꾸자
등록 2021.06.1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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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공군 성폭력 은폐사건’으로 제대로 명명하라!

아직도 피해자 강조한 사건명, 가해자 감추는 보도 바꾸자

 

공군 부사관이 성폭력 피해를 겪은 후 수 개월에 걸친 군 조직의 조직적 은폐, 2차 가해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으로 죽음을 당한 사건이 5월 31일 세상에 알려졌다. 혼인신고 당일 피해자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사실도 충격적이지만 언론보도를 통해 드러난 군 조직의 성폭력 은폐, 피해자 회유, 2차 가해 실상은 더 참담하다.

국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킨 이번 사건에 대한 후속보도가 이어지고 있는데, 가해자의 부적절한 발언이나 2차 가해 발언을 그대로 인용해 2차 피해를 유발하는 보도가 남발되고 있는 문제도 심각하다. 특히 성범죄 사건의 경우 피해자 보호 원칙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되어왔는데, 피해자를 사건 이름에 앞세우거나 일부는 “여중사 사건” 또는 “이 중사 사건”처럼 아예 피해자를 특정해 보도하는 관행은 되풀이되고 있다.

 

아직도 ‘여중사 사건’…가해자는 어디로

우리 사회는 과거 성범죄를 비롯해 아동학대 등 흉악범죄 사건에 피해자 이름을 붙여왔다. 최초 성희롱 소송 사건인 ‘신정휴 사건’만 해도 오랫동안 ‘우조교 사건’으로 불렸다. 결국 가해자인 신정휴 교수는 사람들에게 잊혔고 오히려 피해자는 일자리를 잃었다. 2009년 ‘조두순 사건’의 경우 처음엔 피해자 가명을 붙여서 불렸는데 피해자뿐 아니라 해당 이름을 쓰는 제3자들의 2차 피해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피해자를 전면에 내세운 이런 방식은 자극적인 보도를 양산할 뿐 아니라 가해자 책임을 감추면서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입힌다는 지적을 받았다. 최근엔 ‘조재범 사건’, ‘조주빈 사건’, ‘김태현 스토킹 실인사건’ 등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이름으로 사건을 명명해 범죄 본질을 부각해야 한다는 인식도 높아지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언론의 인식전환과 역할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부 언론사는 공식적으로 피해자 이름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밝히며 자성도 나왔다.

이번 ‘공군 성폭력 은폐사건’에서 언론은 ‘공군 성추행 사건’이나 ‘공군 성추행 사망사건’을 가장 많이 쓰고 있다. ‘이 중사 사건’, ‘여중사 사건’, ‘공군 부사관 사건’보다 좀 더 중립적인 표현처럼 보이지만 모두 적절하지 않다. 피해자 직업과 직급 등 피해자 특성을 부각한 사건 명칭부터 가해자나 2차 가해의 주체를 명확히 드러내지 않는 사건 명칭은 범죄 심각성과 사건 본질을 왜곡할 우려가 크다.

우리 사회가 이번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피해자가 여성 중사, 여성 부사관, 공군 부사관이라는 게 아니다. 군인의 생존조차 위협하는 남성 중심 군대문화와 성폭력 사건에 대한 군 조직의 조직적 은폐 시도다. 이런 측면에서 사건 본질을 드러낸 명칭은 ‘공군 성추행 은폐사건,’ 또는 ‘공군 성폭력 은폐사건’으로 보이지만, 극히 일부 보도에서 쓰였을 뿐이다.

 

범죄 본질에 충실한 ‘사건명’으로 보도하라

한국기자협회와 국가인권위원회가 2012년 제정한 ‘성폭력범죄 보도 세부 권고기준’은 “취재와 보도과정에서 성범죄 피해자와 그 가족의 2차 피해를 유발하지 않도록 피해자의 신상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성범죄 사건의 본질과 무관한 피해자의 사생활 등을 보도함으로써 피해자에게 범죄 유발의 책임이 있는 것처럼 인식되도록 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한국기자협회와 여성가족부가 2018년 마련한 ‘성폭력·성희롱 사건보도 공감기준 및 실천요강’ 역시 기사 작성과 보도에서 “피해자를 중심으로 사건을 부르는 것은 피해자를 주목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2차 피해를 입힐 소지가 있으므로 피해자를 전면에 내세워 사건에 이름을 붙이는 등 피해자 중심으로 사건을 보도하지 말아야 한다”고 권고했다.

하지만 언론의 현실은 이런 기준과 요강이 제시한 수준에 한참 미치지 못하고 있다. 권고기준이 있다고 하더라도 언론이 스스로 정한 원칙조차 지키지 않는다면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성범죄에 대한 사회 인식이 개선되면서 성범죄 보도도 분명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성폭력 피해자가 성범죄 피해사실을 두려움 없이 고발할 수 있는 사회, 더 나아가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데 언론부터 나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더 이상 관행을 이유로 변명하지 말고, 성폭력 사건의 본질적인 문제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실질적인 대책을 강구할 수 있도록 사건 명명부터 똑바로 해라.

 

2021년 6월 11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직인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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