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고용노동부, 드라마 제작환경 실태조사 결과 속히 내놔라
등록 2018.07.12 16:58
조회 259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7월 1일부터 직원 300명 이상 규모의 방송사는 주당 최장 68시간 근무제를 적용받게 됐다. 유예기간이 끝나는 내년 7월부터는 주 52시간 근로시간제를 적용해야 한다. 오랫동안 살인적 장시간 노동을 당연시해왔고, 그들의 착취를 바탕으로 지탱해온 방송 제작관행이 변화해야 하는 상황을 맞은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인한 효과가 실제 방송 제작현장에서 일하는 당사자들의 삶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방송사와 외주제작사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프리랜서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노동자들은 그들의 ‘노동자성’조차 인정받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고용노동부가 ‘드라마 제작현장 특별근로감독’이라는 의미 있는 결과 발표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어서 문제가 되고 있다. 특별근로감독을 요청한 당사자는 전국언론노동조합,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다산인권센터, 청년유니온,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가 참여한 ‘드라마 제작환경 개선 TF’(이하 TF)이다. 이들은 지난 2월 28일 드라마 제작 종사자를 대상으로 노동실태 제보센터를 운영한 결과를 공개했고, 이를 바탕으로 고용노동부에 특별근로감독을 요청했다. TF가 선정한 특별근로감독 대상 사업자는 JTBC <미스티> 제작사 글앤그림미디어, KBS 2TV <라디오로맨스> 제작사 얼반웍스, OCN <그남자 오수> 제작사 IMTV, tvN <크로스>의 제작사 로고스필름와 스튜디오드래곤 4곳이다. 모두 다수의 제보가 공통적으로 접수된 제작 현장이다. 고용노동부는 이 요청에 따라 해당 드라마 제작사를 대상으로 근로감독을 진행해왔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에 따르면 당초 고용노동부는 5월 초까지 근로감독 결과를 발표할 것이라 예고했다고 한다. 그러나 7월, 현 시점까지도 고용노동부는 특별근로감독 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에 TF는 ‘신속하고 제대로 된’ 근로감독 결과 발표를 촉구하며 7월 4일부터 매주 수요일 서울고용노동청 앞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이번 특별근로감독 결과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방송 제작 현장에서 초장시간 노동을 떠받쳐 온 수많은 비정규직‧프리랜서 스태프들을 ‘노동자’로 인정하느냐이다. 제작 현장에서 방송사·제작사에 직접 고용된 인력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며, 대다수 스태프는 도급이나 업무 위탁계약을 맺고 일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이러한 계약 조건을 근거로 방송 스태프들을 모두 ‘개인사업자’로 취급해왔다. 실질적으로 방송사의 통제 아래 있음에도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던 것이다. 이번 특별조사는 정말 모든 스태프가 ‘개인사업자’로 분류될 수 있는 것인지,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을 필요가 없는 존재인지 확인하라는 현장 노동자들의 요구에 따라 시작된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특별조사 결과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스태프들의 ‘노동자성’을 일체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들은 근로시간 단축대책 논의의 장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다. 그럴 경우, 비정규직‧프리랜서 스태프들은 정규직 인력의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부담까지 짊어지고 오히려 기존보다 더 참담한 현실을 맞이할 수도 있다. 고용노동부는 방송업계에서 장시간 노동의 피해를 가장 많이 받고 있는 현장 비정규직‧프리랜서 노동자들의 현실을 분명하게 직시하고 제대로 된 결과를 내놓아야 할 것이다. 법리적 검토와 추가조사가 필요하다는 명분을 앞세워 조사 결과를 너무 늦게 발표하는 것도 하루하루를 버티는 노동자들의 피를 말리는 일이다. 


나아가 실질적인 드라마 현장 스태프 처우 개선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고용노동부가 제작현장의 근로기준법 준수 문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실제 지난해 12월 tvN 드라마 ‘화유기’ 촬영 현장에서 스태프 추락 사고가 발생한 이후에, 고용노동부가 강하게 행정력을 발휘하면서 제작 현장에 산업안전기사가 배치되는 등 실질적 변화가 시작됐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방송 노동자의 인간적인 삶을 보장할 계기가 마련됐다. ‘잠 좀 자자’는 방송 현장 비정규직·프리랜서 노동자들의 요구를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특히 ‘항공사 갑질’ 등 다른 분야의 노동문제에 대해서는 그나마 관심을 보이고 보도하는 방송사들이 자신들의 치부인 방송계 노동현장의 문제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는 것은 치졸한 일이다. 방송사들은 지난해 상품권 페이 논란을 비롯한 방송계 갑질 문제에 대해 담합이라도 한 것처럼 보도하지 않았다. 이들 방송사들은 희망연대 노동조합방송스태프지부 설립 소식이나 드라마 제작환경 개선 TF의 1인 시위 도 보도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정상화를 공언한 공영방송조차 ‘자사에 불편하고 불리한 현안’이여서인지 미보도로 일관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드라마를 통해서 꿈과 희망과 즐거움과 위로를 받아왔다. 그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이 처참한 제작환경에서 노동자로 인정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일해 왔다. 이제 고용노동부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두가 그들의 인권문제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특히 ‘제작비 절감’이라는 이유를 앞세워 스태프들을 직접 고용하지 않고, 외주제작사, 협력업체와 다단계 하청 계약을 맺어온 방송사의 책임이 크다. 방송사가 사안의 핵심 이해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하청업체의 일’이라며 모르쇠로 일관한다면 그런 방송사는 국민의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방송의 공적․사회적 책임을 감안할 때 공영방송부터 상생의 문화를 실천해야 한다. ‘업계 종사자의 카르텔’을 유지하며 ‘국민의 방송’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끝>
 

2018년 7월 12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commemt_20180712_36.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