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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연된 무분별한 외신 받아쓰기, 북한군이 좀비처럼 되살아났다
등록 2024.11.15 21:50
조회 312

11월 12일 미국 국무부 베단트 파텔 부대변인은 러시아 쿠르스크로 파견된 1만 여명의 북한군이 우크라이나군 상대 전투에 참전하기 시작했다고 밝혔습니다. 11월 4일 북한군이 쿠르스크로 이동했다고 언급한 것에서 더 나아간 내용입니다. 이어 다음날인 11월 13일 한국 국가정보원은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이 전투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국내 언론은 이보다 한참 앞서 북한군과 우크라이나군의 교전 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북한군 사망소식까지 전했습니다. 직접 취재가 어려운 상황에서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외신보도를 무분별하게 인용한 ‘받아쓰기’가 원인으로 보이는데요. 확인할 수 없는 SNS나 외신보도를 근거로 한 언론보도는 앞뒤가 맞지 않아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북한군 첫 교전으로 상당수 사망했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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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상당수가 사망했다고 보도한 11/6 방송 저녁종합뉴스(왼쪽 위부터 SBS, TV조선, 채널A, MBN)

 

11월 6일 SBS, TV조선, 채널A, MBN은 저녁종합뉴스에서 북한군이 우크라이나군과 교전을 벌였으며 상당수가 사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북한군과 첫 교전을 벌였다’고 공식 확인했으며, 미국 뉴욕타임스가 미국 정부 고위당국자의 발언을 인용해 “상당수의 북한군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는 내용인데요. MBN에서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북한군 영상”으로 표현한 ‘무장한 동양인들이 러시아어 발음을 따라하는 영상’까지 포함해 4개 방송사 모두 비슷한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이날 해당 보도에 앞서 ‘북한군이 전선으로 이동한 것은 맞지만, 전투는 시작되지는 않았다’는 입장을 밝혔는데요. 보도내용과 상반된 우리 정부 입장을 포함해 보도한 곳은 TV조선과 MBN뿐입니다.

 

해당 보도는 뉴욕타임스(NYT) <North Korea Enters Ukraine Fight for First Time, Officials Say>(11월 5일 By Michael Schwirtz and Julian E. Barnes)를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민감한 군 정보 공유를 이유로 익명을 요청한 우크라이나와 미국의 고위당국자에 따르면 북한군이 우크라이나군과 처음 교전을 벌였으며, 교점 시점은 불명확하다고 합니다. 우크라이나 고위 당국자는 피해 정도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미국 고위당국자는 상당수 북한군이 사망했다고 발언했는데요. 연합뉴스 <미 당국자 "북한군, 우크라군과 교전서 상당수 사망"<NYT>>(11월 6일 김용래 기자)가 처음 인용 보도한 이후 많은 국내 언론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서울신문 <“北병사들, 우크라와 전투” 확인…“북한군, 교전서 상당수 사망”>(윤예림 기자), 매일경제 <미정부 “북한군, 우크라군과 싸우다 상당수 사망”...총알받이 현실화되나>(11월 6일 이가람 기자) 등도 고위 당국자 발언을 미국 정부 입장인 듯 단정적으로 기사 제목(부제 포함)으로 뽑았는데요. 미국 정부가 북한군의 전선 이동을 확인했을 뿐 교전 사실은 공개적으로 확인을 보류한 상황에서 고위 당국자 발언을 정부 입장인 듯 확대해 보도했습니다.

 

10월에도 “북한군 첫 교전 1명 빼고 전멸” 보도

그런데 북한군이 우크라이나군과 교전을 벌이고, 많은 수가 사망했다는 보도는 처음이 아닌데요. 10월 30일에도 북한군 대다수가 전사했다는 보도가 쏟아졌습니다. JTBC <“북한군, 교전해 1명 빼고 모두 전사”…“소수 이미 우크라 침투”>(10월 30일 송혜수 기자)에 따르면 ‘리투아니아 비영리기구 블루-옐로 요나스 오만 대표’는 리투아니아 공영방송 LRT에 “쿠르스크에서 북한군의 첫 육안 접촉이 이뤄졌으며” “북한군은 1명 빼고 전부 사망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소식도 연합뉴스 첫 보도 후 비슷한 보도가 잇따랐는데요. SBS, YTN, 뉴시스, KBS, 매일경제, 디지털타임스, 노컷뉴스, 국민일보, 이데일리, MBN, 헤럴드경제 등 관련 보도가 100여 건이 넘습니다.

 

10월 30일 LRT를 인용해 북한군이 1명을 제외하고 모두 전사했다고 보도했던 언론은 11월 6일에도 NYT를 인용해 북한군이 첫 교전으로 상당수 사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전사한 북한군이 좀비처럼 되살아난 것도 아닐 텐데, 11월 6일에는 어떤 북한군이 상당수 사망했는지에 대한 설명조차 없습니다. 외신인용이란 편리한 변명을 앞세운 무책임하고도 무분별한 보도입니다. 

 

매체

10월 30일 보도

11월 6일 보도

채널A

“북한군 첫 교전…1명 빼고 모두 전사”

미 언론 “상당수 북한군 사망했다”

뉴시스

"북한군, 25일 쿠르스크서 첫 교전…1명 빼고 모두 전사"

"러 파병 온 북한군, 첫 우크라와 교전서 '상당수' 사망"

세계일보

“북한군, 25일 쿠르스크서 첫 교전…1명 빼고 모두 사망”

“러 파병 북한군, 우크라 교전서 상당수 사망”…미당국자 확인

서울신문

“북한군, 이미 우크라와 교전 벌여…1명 빼고 전부 사망했다”

“北병사들, 우크라와 전투” 확인…“북한군, 교전서 상당수 사망”

국민일보

우크라 지원단체 “북한군, 25일 첫 교전…1명 빼고 전사”

미 당국자 “북한군, 우크라와 첫 전투서 상당수 사망”

MBN

"북한군, 이미 우크라와 교전…1명 빼고 전부 사망"

'북한군과 교전' 첫 공식 확인…"북한군 상당수 사망"

동아일보

인공기 빼앗은 우크라군…“북한군 첫 교전서 1명 빼고 모두 전사”

“북한군 러서 상당수 숨져”… 미당국, ‘교전 사망’ 첫 인정

 △북한군 사망소식을 전한 언론보도 중 일부 사례

 

이뿐만이 아닙니다. 10월 5일에는 우크라이나 매체 키이우포스트와 러시아 애국조직 ‘크렘린 시크릿’ 텔레그램을 인용해 ‘북한군 장교 6명이 우크라이나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사망했다’, 10월 15일에는 우크라이나 인터넷신문 우크라인스카 프라우다를 인용해 ‘북한군 18명이 부대를 탈영했다’, 10월 21일에는우크라인스카 프라우다와 우크라이나 영문매체 키이우 인디펜던트 등이 전한 “이탈한 것으로 알려진 북한군 장병 18명이 붙잡혀 구금됐다”를 인용한 보도까지 나왔습니다. 대부분 우크라이나 매체 보도를 인용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뉴스1 <정보 격차냐 '선전'이냐…우크라와 한미 '전황 판단' 다른 이유>(11월 6일 허고운 기자)은 현지 보도와 관련해 “우크라이나가 전쟁 당사자인 만큼 가장 많고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지만”, “서방 국가의 지원을 더욱 많이 받기 위한 ‘선전’ 차원의 행동”이란 분석이 나온다고 지적했습니다. “국제사회의 지원을 끌어내기 위해 북한군의 ‘공격적 행동’이 필요한 우크라이나 입장을 염두에 두면 다소 과장됐을 수 있다”는 해석입니다.

 

‘음란물’에 ‘개고기 통조림’까지, 받아쓰고 퍼나르고

한국 언론은 사실여부 확인이 어려운 외신보도에 대해 “진위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다”면서도 퍼나르는 데 열중입니다. 조선일보 <우크라에 잡힌 러군 “북한군이 총 잘못 쏴 러군 사망”>(11월 7일 이혜진 기자)은 “영상의 진위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면서 미국 뉴스위크에서 보도한 “러시아 군인이 우크라이나 전선에 투입된 북한군이 오인 사격으로 러시아군을 위험에 빠뜨렸다고 주장하는 영상”에 관해 상세히 보도했습니다. 조선일보는 “뉴스위크가 이 영상의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는 내용까지 적시했습니다. 결국 처음 보도한 미국 언론이나 이를 받아쓴 조선일보 모두 ‘확인할 수 없는 영상’이라면서도 제목은 단정적으로 쓴 것입니다.

 

동아일보 <러 장갑차, 북한군 두고 줄행랑?…손발 안 맞아 ‘우왕좌왕’>(11월 4일 조은아 기자)은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이 격전지 쿠르스크주에서 러시아군 장갑차 한 대가 북한군을 버려두고 가는 것으로 추정되는 영상을 공개했다고 보도했습니다. RFA는 원활하지 않은 의사소통으로 북한군은 우왕좌왕했으며, 장갑차는 병사들을 내려주고 떠났다고 주장했는데요. “보병들이 실제로 북한군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면서도 RFA와 동아일보는 이들을 ‘북한군’이라 보도했습니다.

 

SNS를 그대로 받아쓴 황당한 보도도 있습니다. 뉴스1 <“러 파병 북한군, 인터넷 되자 음란물에 중독됐다”…미 “확인불가”>(11월 7일 정지윤 기자)는 러시아에 파병 온 북한군이 완화된 인터넷 통제 환경에서 음란물에 빠져 있다는 주장을 전했는데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수석외교칼럼니스트 기디언 래크먼이 SNS에 쓴 내용으로, 찰리 디츠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아무리 재밌게 들리더라도 러시아에 있는 북한 사람들의 인터넷 활용 습관이나 가욋일에 대해 확인할 수 없다”고 일축했습니다.

 

서울신문 <“북한군, 개고기 통조림 전투식량”…‘폄하 각본’ 인지전?>(11월 2일 권윤희 기자)은 친우크라이나 SNS가 “북한군이 ‘개고기 통조림’을 전투식량으로 준비했다”고 주장하는 영상을 인용했습니다. “두 건의 시각자료 모두 진위는 확인되지 않았다”며 통조림 자체가 가짜라는 주장과 반대 근거도 거론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어 또 다른 친우크라이나 텔레그램 채널이 “북한군 쿠르스크 투입 결과”라며 생존 북한 추정인물의 육성 동영상을 공개했다고 보도한 뒤 “이 영상도 확인되지 않았으나 전문가들은 북한군의 사기 저하를 유도하기 위한 심리전 일환으로 우크라이나 측이 유포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전했습니다. “북한군을 깎아내리려는 폄하 각본에 따른 것”이란 풀이를 덧붙이면서도 확인되지 않은 현지 SNS 내용을 지속적으로 인용한 것입니다.

 

무분별한 SNS 영상 가짜로 드러나기도, 교차검증 필요

북한군 영상으로 소개된 일부는 가짜로 판명되고 있습니다. 서울경제 <러 파병 북한군 요리영상…중국인이 만든 가짜로 추정>(11월 5일 최성욱 기자)은 “러시아에 파병한 북한군에 대한 다양한 소식이 전해지는 가운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전해지는 사진과 영상 상당수가 가짜”임이 확인됐다고 보도했습니다. “북한군 장교 8명이 우크라이나 전선 배치 첫날 모조리 전사했다는 중국 출신 러시아 용병의 주장” 역시 뒷받침할 증거는 제시되지 못했다고 짚었는데요. 우크라이나의 과장된 선전전은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지적했습니다.

 

뉴스타파 <‘생존 북한군 영상’ 조작 의혹...공론장 침투한 우크라전 허위 정보>(11월 8일 강혜인 기자)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양국 진영은 존재한 적이 없는 사실을 만들어 SNS 등을 통해 확산시키고” 있으며 “10월부터 국내외 정보기관 등을 통해 흘러나오기 시작한, 이른바 북한 파병설은 한국 역시 허위 조작 정보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일갈했습니다. 이어 국민일보·세계일보·서울신문·조선일보·중앙일보·한국경제·매일경제 등 국내 언론이 11월 1일 일제히 보도한 ‘부상 입은 북한군 장병으로 추정되는 영상’을 검증해 AI로 조작한 영상일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국내 다수 언론들은 ‘진위 파악은 되지 않았다’는 설명을 덧붙이며 별도의 검증 없이 그대로 인용했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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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 생존’ 북한군 추정 영상을 검증 없이 보도한 언론(왼쪽)과 팩트체크한 뉴스타파 보도(오른쪽)


전장을 직접 취재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북한군의 참전 소식을 전해야 하는 언론의 고충도 있지만 외신보도와 SNS에서 나온 주장을 무분별하게 받아쓰는 보도관행은 개선돼야 합니다. 사실과 다른 정보를 국민에게 전달해 혼란을 초래하고, 한반도 전쟁위기를 부추기는 세력에 자칫 빌미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인데요. 윤석열 대통령이 “북한군 활동에 따라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 지원을 검토할 것”이라며 강경 발언까지 내놓는 상황에서 언론의 정확한 보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 ‘진위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쉽게 쓰기 전에 확인할 수 없는 주장이나 외신보도는 사실관계를 더욱 철저히 확인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인용보도라 할지라도 허위로 드러난다면 이를 받아쓴 언론의 책임 역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 모니터 대상 : 2024년 10월 1일~11월 14일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북한군’으로 검색한 관련 보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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