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방송 모니터_
손정민 사건과 언론① ‘클릭 되면 뭔들’ 무책임한 과잉보도가 시작이었다
속보경쟁, 의대생 부각, 의혹 부풀리기, 미스터리화, 음모론 확산
등록 2021.06.16 12:10
조회 523

서울 반포한강공원에서 실종된 뒤 숨진 채 발견된 고 손정민 씨 사망사건은 언론의 큰 관심 사안이었습니다. 현장상황을 기록한 폐쇄회로영상 등 객관적 증거가 나오지 않았고, 사건 당일 손 씨와 술을 마신 친구 A씨도 정확한 기억이 없어 실체적 진실이 쉽게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경찰 수사에 이목이 집중됐고, 일부 언론과 유튜브 채널은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여과 없이 중계하며 논란을 키웠습니다. 경찰 수사를 신뢰하지 않는 여론이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두 편의 보고서를 통해 손정민 씨 사망사건 보도 문제점을 분석하고, 언론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 편에서는 사건이 알려지기 시작한 초기 언론보도는 어떠했는지, 많은 보도량을 나타낸 유가족 입장 보도는 적절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언론의 선택적 관심, 경쟁적 과잉보도

손정민 씨 사망사건은 초기부터 많은 보도가 나왔습니다. 그보다 앞선 4월 22일 평택항 부두에서 대학생 이선호 씨가 산업재해로 사망한 사건이 일어났지만 사고 후 15일간 이를 다룬 언론은 중부일보, 기호일보뿐이었습니다. 반면 손정민 씨 실종신고가 접수된 4월 25일부터 5월 9일까지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에서 ‘손정민’을 검색한 결과, 15일간 796건의 기사가 나왔습니다. 기자협회보가 손정민 씨에 대한 첫 보도가 나온 4월 28일부터 5월 10일까지 네이버에서 관련 뉴스를 확인한 결과 13일간 나온 기사는 모두 2,458건입니다. 같은 시기 두 대학생의 사망사고가 있었지만, 언론의 관심은 손정민 씨 사망에 쏠렸습니다. 처음부터 언론은 손정민 씨 사망을 주요 사건으로 선택하고, 사회의제로 설정하는데 적극적이었습니다.

 

‘의대생·장학퀴즈 준우승·엄친아’ 신상보도 급증

특히 일부 언론은 실체와 관련 없는 정보를 부각하며 사망사건을 ‘미스터리’로 만드는데 일조했습니다. 실종신고일인 4월 25일부터 4월 28일까지 손정민 씨는 ‘서울의 한 대학생’ 정도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4월 29일 인터넷매체 데일리메디가 손정민 씨가 재학 중인 학교와 의과대학 소속을 보도하자 ‘의대생’을 강조하는 기사가 잇따랐습니다. 중앙일보 <단독/“정민아 살아만 있어줘” 한강실종 의대생 마지막 영상>(4월 29일 정진호 기자)는 제목부터 ‘의대생’을 강조하고, 작은 제목에 ‘의대 본과 1학년의 실종 5일째’라고 적었습니다. MBC <엠빅뉴스/한강공원서 실종된 의대생…아버지의 애끓는 호소>(4월 29일)는 ‘#실종’, ‘#의대생’이란 해시태그를 달기도 했습니다.

 

MBC 엠빅.JPG

△ 해시태그에 ‘의대생’을 넣은 MBC(4/29)

 

이어 손정민 씨 아버지 손현 씨가 블로그를 통해 손 씨 학력정보 등을 올리자 이를 다룬 보도가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머니투데이 <‘한강 사망’ 고 손정민 부 “전부였던 외아들, 주고 싶은 게 많은데…”>(5월 4일 김자아 기자)는 “의대 진학 전 카이스트를 다녔던 수재였다. 이른바 현실판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였다”고 전했습니다. 손현 씨 블로그 글에서 사진을 가져와 “고교 시절에는 EBS ‘장학퀴즈’에 나가 왕중왕전 준우승”을 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노골적으로 ‘명문대생 죽음’을 부각한 기사도 나옵니다. 국민일보 <‘고 손정민 사건’ 이례적 반응 왜?…경찰 불신·동일시 효과>(5월 18일 박민지‧이형민 기자)는 손정민 씨 사망사건이 주목받는 이유의 하나로 “손씨가 명문대 의대생이었다는 점도 안타까움을 더했다”며 관련한 취재원 발언을 전했습니다. 여성조선 <익사vs여전한 의혹들 국민적 관심사 된 ‘한강 대학생 사망 사건’>(5월 21일 이근하 기자)도 “명문대에 가고, 의사 될 일만 남은 아이가 죽었다니” 등 손정민 씨 학력이 사건 공론화에 영향을 끼쳤다는 취재원 발언을 실었습니다.

 

손정민 씨 죽음과 연관성이 드러나지 않은 학력 등 신상이 부각된 보도는 대중의 안타까움과 분노를 자극할 뿐 사망의 진실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학력주의에 기반한 ‘명문대 의대생의 안타까운 죽음’이란 프레임을 만드는데 영향을 미쳤습니다.

 

언론의 ‘범인 찾기 게임’, 의혹 부풀리기

이번 사건은 이른바 ‘친구 A씨 타살설 음모론’이 퍼지며 타살을 가정한 범인 찾기가 큰 논란이 됐습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친구 A씨 이전부터 존재했습니다. 일부 언론이 검증도 없이 특정 인물을 범인으로 몰아가는 보도를 초기부터 내놨기 때문입니다. 사건 초기 목격자를 찾는 과정에서 서울신문 <한강 실종 대학생 관련 인근 CCTV 영상>(4월 30일)은 세 명의 남성이 한강변 도로를 뛰어가고 있는 영상을 유튜브에 실었습니다. 서울신문은 “실종된 대학생 A씨 주변에 있던 남성들로 추정된다”며 목격자 제보를 기다린다는 설명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애초 취지와 달리 해당 영상은 또 다른 음모론을 만드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서울신문 유튜브.JPG

△ 서울신문 유튜브에 실린 <한강 실종 대학생 관련 인근 CCTV 영상> 이미지(4/30)

 

이후 채널A <뉴스A라이브>는 <‘한강 실종 대학생’ 쫒기고 있었나?…CCTV 영상 공개>(5월 2일)에서 영상 속에 등장하는 인물을 손정민 씨로 추측했습니다. 이후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목격자를 자처하는 인물을 통해 ‘다툼이 있었다’, ‘그 사람들이 맞다면 실종이 아니다’ 등 확인되지 않은 발언이 나왔습니다. 곧이어 세계일보 <의대생 한강서 실종된 날 새벽 4시30분 CCTV에 잡힌 ‘전력질주’ 3인은?>(5월 2일 강소영 온라인 뉴스 기자), 서울경제 <‘한강 실종 대학생’ 주변 CCTV 속 뛰어가는 남성들···“그 사람들 맞다면 실종 아냐”>(5월 3일 김경훈 기자), 이데일리 <“그 사람들 맞다면”…한강 실종 대학생 CCTV에 목격자 댓글>(5월 3일 박지혜 기자) 등 다수 보도가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그대로 기사화했습니다.

 

05월02일_130107_2_채널AHD_6.ts_20210610_162024.949.jpg

△ 확인되지 않은 추측을 그대로 자막에 실은 채널A <뉴스A라이브>(5/2)

 

‘음모론’ 단초가 된 언론보도

서울신문이 게재한 CCTV 영상으로 촉발된 근거 없는 추측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뉴시스 <‘의대생 한강 사망’ 추측만 무성…“뛰던 3명은 중·고생”(종합)>(5월 3일)은 “경찰이 실종현장 인근에서 CCTV에 포착된 남성 3명의 신원을 특정해 이미 조사”를 마쳤다고 보도했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3명은 모두 10대”였고 “자기들끼리 장난치고 뛰어 노는 장면이 찍힌 것이지 A씨 죽음과는 무관한 것으로 결론이 났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해당 영상뿐 아니라 영상 속 인물에 대한 근거 없는 추측은 이미 많은 대중에게 확산된 뒤였습니다. 5월 2일 네이버 랭킹뉴스를 보면, 세계일보 <의대생 한강서 실종된 날 새벽 4시30분 CCTV에 잡힌 ‘전력질주’ 3인은?>는 당일 세계일보 기사 중 많이 본 뉴스 1위를 기록했습니다. 이런 결과는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등장한 불확실한 정보에 일차적 책임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언론이 책임을 면할 순 없습니다. 아무런 확인과 검증 없이 보도해 의제화한 언론 책임이 더 클 수 있습니다. 범죄영화에나 나올 법한 선정적 음악을 배경으로 깔아 유튜브에 올린 서울신문 영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사건사고 보도는 사실 확인이 필수입니다. 사실검증을 외면하고 자극적인 소재에 몰두하는 보도관행은 이후 ‘친구 A씨 타살설 음모론’ 단초가 됩니다.

 

손정민 씨 아버지 출처 보도, 바람직했는가

어느 사건보다 유가족 목소리가 적극 반영된 점도 손정민 씨 사망사건 보도의 특징입니다. 아버지 손현 씨가 사건에 적극 의견게재를 한 영향이기도 합니다. 언론이 유가족 입장을 충실히 다룬 것은 긍정이지만, 손현 씨를 출처로 한 보도가 모두 바람직했는지는 돌아봐야 합니다. 손현 씨를 출처로 한 보도는 대부분 인터뷰를 통해 발언을 전하거나 블로그 글을 다뤘습니다. 손현 씨 발언과 글은 아들 죽음에 대한 다양한 의혹을 제기하며, 경찰 수사로 의혹을 밝혀달라는 요구가 주를 이뤘습니다. 일부 글은 아들과의 추억을 회상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손현 씨 발언과 글은 아들이 죽음에 이르게 된 과정을 간절하게 알고 싶은 유가족의 당연한 입장일 것입니다.

 

화제가 된다면…‘아버지 발언’ 몰두한 언론

문제는 손현 씨 발언과 글을 인용한 보도가 언론으로서 역할을 충분히 하지 않거나 부정적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때입니다. 보도가치, 보도가 끼칠 악영향을 등을 감안하지 않고 관심이 집중되는 특정인 언행을 곧바로 기사화하는 경우인데요. 손현 씨가 블로그에 아들과의 추억을 회상하거나 주변인 응원에 관해 쓴 글을 다룬 보도가 대표적입니다.

 

손현 씨는 5월 22일 <친구들의 인사>라는 글을 블로그에 실었습니다. 손정민 씨 친구들이 보내온 메시지였습니다. 하지만 해당 글은 개인정보 침해를 이유로 공개가 중단됐고, 손현 씨는 게시중단 사실을 다시 알렸습니다. <친구들의 인사> 게시글의 내용은 손정민 씨의 죽음에 대한 친구들 관심에 감사를 표하는 내용으로 사건 진실을 찾기 위한 정보가치는 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해당 게시글은 뉴스1 <손정민 부친 “아들 친구가 보낸 안부‧댓글, SNS 게시 차단당했다”>(5월 26일 박태훈 선임기자) 등 다수 언론을 통해 그대로 기사화됐습니다. 손정민 씨와 사건 당일 함께 있던 친구 A씨 행적에 대한 의혹이 제기된 시기이자 A씨 행적을 밝혀달라는 손현 씨 주장이 여러 차례 기사화된 때이기도 합니다. 언론이 진실 추구를 목적으로 정보를 판단하는 게 아니라 화제 사건 혹은 특정인과 연결된 것이라면 ‘일단 쓰고 보자’는 식으로 보도한 사례입니다.

 

선정적 제목, 의혹 검증은 나몰라라

손현 씨 블로그 글에서 일부만 부각한 선정적 보도도 나왔습니다. 5월 27일 경찰이 손정민 씨 사망사건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자 손현 씨는 이튿날 게시글을 올렸습니다. 경찰 발표에서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의혹이 있으며, 본인이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썼습니다. 손정민 씨 친구 A씨에 대한 의혹 해소와 함께 사고사가 아닐 가능성도 수사대상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중앙일보 <손정민 부 “서울경찰청, 우리 미워하고 친구 변호인만 사랑한다”>(5월 28일 홍수민 기자) 등 많은 언론이 해당 글을 기사화했습니다. 특히 “서초서는 수사만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브리핑을 하는 서울지방경찰청은 정민이와 저를 미워하고 A의 변호인만 사랑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네요”라는 대목을 제목에 인용했습니다. 손현 씨가 해결을 요구한 의혹에 관해선 그대로 옮겨 전할 뿐 진실추구 원칙에서 필요한 의혹 제기인지 여부 등은 아예 다루지 않았습니다.

 

중앙일보.JPG

△ 손정민 씨 아버지 블로그 글에서 선정적 문장을 부각한 중앙일보(5/28)

 

언론이 유가족 입장의 억울함 해소를 위해 손현 씨 주장을 다뤘다면 제기된 의혹이 합리적인지, 실체적 진실 접근에 도움되는지 검증부터 해야 합니다. 합리적 의혹이 존재한다면, 경찰 수사가 의혹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지도 감시해야 합니다. 그러나 손현 씨 주장을 다룬 대다수 보도는 의혹 제기를 그대로 옮기거나 글에서 가장 선정적인 대목을 제목으로 뽑을 뿐 진실추구를 위한 노력은 찾기 힘들었습니다. 사실상 손현 씨 주장과 블로그 글은 진실추구를 위한 ‘의혹 검증’이 아니라 클릭수를 노린 ‘화제 발언’ 기사화에 이용된 셈입니다.

 

무차별적 의혹 제기, 수사 불신·음모론 확산

손현 씨를 출처로 한 보도는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모두 갖고 있습니다. 유가족 입장이 충실히 다뤄지고 사안을 공론화한 점에서는 긍정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반면 사건 실체를 밝혀나가는 경찰 수사엔 악영향을 끼치기도 했습니다. 손정민 씨 친구 A씨가 죽음에 관여됐다는 음모론이 확산될 때 언론은 ‘사실검증’과 ‘진실추구’라는 본연의 역할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MBN <손정민 부 “짜맞추는 일만 남은 느낌”…낚시꾼 제보자는 ‘A씨 보호모임’?>(5월 21일 김지영 기자) 등 일부 보도는 음모론을 손현 씨 주장과 엮기도 했습니다. MBN은 경찰이 다양한 원인을 모두 열어놓고 수사해야 한다는 취지의 손현 씨 주장을 전하면서도 “낚시꾼 제보자를 둘러싸고 ‘손 씨 친구 A씨의 보호모임 일원이다’라는 주장이 퍼지고 있다”고 음모론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더니 “해당 채팅방은 누구나 들어갈 수 있고, 대화방이 생긴 한참 후 그날 오후 10시 44분에 B씨가 참여했다는 정황에 섣불리 확신할 수 있는 주장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며 음모론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도 언급했습니다. 그런데도 MBN은 사실이 아니라는 걸 충분히 알 수 있는 음모론을 손현 씨 주장과 함께 제목에 나란히 배치했습니다. 경찰의 폭넓은 수사를 촉구한 손현 씨 요구를 음모론과 엮어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한 보도였습니다.

 

MBN과 언론보도는 경찰 수사에 대한 근거 없는 불신을 키우는 데 영향을 끼쳤습니다. 유가족의 비판적 의견과 함께 음모론을 내세운 보도는 경찰 수사의 타당함과 별개로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거나 ‘경찰이 확보한 목격자를 신뢰할 수 없다’는 인식을 남겼습니다. 손현 씨가 음모론을 주장하지 않았음에도 손 씨 주장과 음모론이 동시에 전달돼 ‘유가족이 제기한 의혹’으로 비춰질 우려도 컸습니다. 경찰 수사에 대한 불신과 음모론이 확산된 배경에 언론보도도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근거입니다.

 

* 모니터 대상 : 2021년 4월 25일~6월 9일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손정민’ 등 관련 키워드 검색 후 나온 보도

<끝>

 

monitor_202106616_022.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