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모니터_
국정농단 두 번 침묵한 공영방송, 두 번 왜곡한 TV조선‧채널A
지난 14일 민정수석실에서 300여종에 육박하는 문서가 발견되자 청와대는 내부 전수조사에 돌입했습니다. 그 결과, 17일과 18일에 걸쳐 정무수석실에서만 1,361건의 문건이 발견되는 등 민정수석실, 국가안보실, 국정상황실에서도 수많은 문건이 추가로 발견됐습니다. 문건은 청와대의 삼성 경영권 승계 지원 등 국정농단 관련 내용부터 세월호 특조위 무력화 지시 등 박근혜 정부 전반의 폭정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와 관련해 18일, 7개 방송사도 보도를 냈는데요. SBS와 JTBC는 문건의 상세 내용을 취재해 단독보도까지 내놨습니다. 반면 KBS‧MBC‧MBN은 고작 1건의 보도만 내면서 엄중한 사안을 외면했습니다. 더 심각한 방송사는 TV조선과 채널A입니다. 이들은 청와대의 문건 공개가 위법이라거나 문재인 정부의 정치적 의도라는 야권의 반발을 집중 조명하면서 본질을 왜곡했습니다.
무더기 ‘국정농단 문건’ 발견됐는데 ‘여야 공방’ 1건이 전부?
지난 14일, 처음으로 문건 300여 종이 발견되었을 때도 KBS는 1건, MBC는 2건의 보도만 내면서 ‘문건 공개’라는 단순한 사실만 전달했습니다. 문건에서 나타난 이전 정부의 충격적인 내막은 전혀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똑같습니다. 두 공영방송은 18일에도 1건의 보도만 냈고 그 내용마저 본질에서 벗어났습니다.
일단 KBS <청 “문서 추가 발견”…야 “호들갑”>(7/18 https://bit.ly/2u6G0jQ)과 MBC <청 검색대 철거 공개‥야 “문서 호들갑”>(7/18 https://bit.ly/2uBlBWG)은 ‘호들갑’이라는 야권의 반응을 제목에 담았습니다. KBS는 “민정수식설 문건 300여 건, 정무수석실 문건 1,300여 건 외에 실사 과정에서 문건들이 더 나왔다”는 청와대 발표와 함께 “청와대는 이와 함께 박근혜 정부 민정수석실에서 검색대를 통과하면 경고음이 울리는 특수용지로 문서 생산을 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면서, “재판에 개입하려는 불순한 의도를 갖고 청와대가 문서를 공개하고 있다”(자유한국당), “호들갑 떨 일이 아니다”(바른정당) 등 야권의 비판을 나열했습니다. 여기다 “본말을 전도하려는 불순한 의도”라는 여당 입장도 덧붙여 ‘여야 공방’으로만 보도를 끝냈습니다. ‘국정농단 문건’이 발견됐는데 정작 ‘문건 내용’은 없는 보도입니다. MBC도 비슷한 태도를 보였는데요. MBC의 경우 문건은 아예 외면한 채 “검색대에는 특수 용지를 감지하는 장치가 있었는데 박근혜 정부 당시 이른바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이 일어나자 청와대는 보안을 강화하기 위해 어두운 색을 띤 특수 용지를 쓰고 검색을 실시했”다며 검색대 철거에만 집중했습니다. “최근 전임 정부 문서를 잇따라 공개한 일과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라며 검색대 철거를 ‘정치적 쇼’로 악평한 야권 입장에 서기도 했습니다.
△ 국정농단 문건 내용 외면한 KBS(7/18)
이날 SBS는 3건, JTBC는 4건의 보도로 국정농단 문건 관련 소식을 구체적으로 전했습니다. SBS는 국가안보실 등 추가 문건 발견을, JTBC는 박근혜 정부의 세월호 특조위 무력화 지시 정황을 단독으로 전하기도 했습니다. TV조선 4건, 채널A 3건으로 종편은 대부분 KBS‧MBC보다 보도량이 많았습니다. 다만 MBN이 1건으로 공영방송 못지않은 무관심을 보였습니다.
지난해 12월에도 침묵했던 공영방송, 끝까지 묻을 셈인가
요컨대 KBS와 MBC는 14일과 18일, 박근혜 국정농단 문건이 무더기로 발견될 때마다 침묵으로 일관한 겁니다. 이는 박근혜 국정농단이 막 불거졌던 지난해 말 상황과 너무도 흡사합니다. 지난해 10월 24일 JTBC의 ‘최순실 태블릿PC’ 보도로 불거진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에 대다수의 언론이 특별취재팀을 구성해 파고들었지만 KBS‧MBC는 달랐습니다. 사태 초기였던 지난해 10월, KBS 기자들은 특별취재팀 구성을 보도국에 요청했지만 보도국장 등 책임자들은 “최순실이 대통령 측근이야? 측근이 맞나? 뭐가 맞다는 거지? 알려져 있다는데 어떻게 측근이라고 장담할 수 있느냐”라고 따져 물으며 거부했습니다. MBC도 논란 끝에 10월 28일 특별취재팀을 구성했지만 별다른 취재도 없이 한 달 만에 ‘엘시티 취재팀’으로 변경돼 사실상 해체됐죠. 당연히 두 공영방송은 타 매체보다 국정농단 관련 보도가 상당히 부실했습니다.
부실 보도를 넘어 아예 박근혜 정부를 옹호하는 보도도 쏟아졌습니다. KBS‧MBC는 여론의 분노를 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담화가 나올 때마다 그대로 받아쓰며 ‘용비어천가’라는 비판을 자초했고 심지어 KBS는 1월 25일 논란의 ‘정규재TV’ 인터뷰도 그대로 읊었습니다. MBC <블랙리스트 의혹…월권 수사 논란>(1/4 https://bit.ly/2hUGuFl)의 경우 특검의 수사가 ‘월권’이라 주장했는데 이는 내부에서도 ‘청와대 청부 기사’라며 반발이 컸습니다. ‘최순실PC’가 조작됐다는 황당한 주장도 KBS‧MBC에서 보도됐습니다.
이렇듯 KBS‧MBC는 헌정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를 철저히 은폐하고 두둔했고 이는 국민적 신뢰를 잃는 결정적 계기가 됐습니다. 해가 바뀌고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KBS‧MBC는 ‘박근혜 국정농단 문건’을 보도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 번 묻은 사안은 끝까지 묻어버리겠다는 심산일까요? 공영방송 개혁이 절실한 이유가 또 하나 추가됐습니다.
‘국정농단 문건’에 ‘정치적 의심’만 남긴 TV조선
KBS‧MBC보다 많은 보도량으로 큰 관심을 보인 TV조선‧채널A는 더 심각합니다. TV조선과 채널A는 사안을 왜곡했습니다. 두 방송사는 발견된 문건이 의심스럽다거나 문건 공개가 위법이라는, 본질에서 벗어난 야권 발 주장에 잔뜩 힘을 실었습니다. 정작 국민이 알아야 할 내용, 어떤 내용을 담은 문건이었는지는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TV조선 <안보·상황실 문건 또 발견>(7/18 https://bit.ly/2vh0UwQ)은 “청와대가 오늘 국가안보실과 국정상황실에서도 박근혜 정부에서 만든 문건을 추가로 발견했”다면서도 문건 내용은 배제한 채 ‘정치적 논란’만 다뤘습니다. 특히 야권의 청와대 비판에 주목했습니다. 신정훈 기자는 “대통령기록물일 수도 있는 문건을 청와대가 발표하는 것은 법적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언급했고 “1,2차 문건 발표 이후 야당의 반발과 부정적 여론을 의식”한 청와대가 추가 문건 공개 일정을 늦췄다고 의심했습니다. 여기다 “다분한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자유한국당), “모든 문건이 마치 범죄조직의 문건인 것처럼 연일 발표하면서 호들갑을 떨고 있습니다”(국민의당), “5년마다 반복되는 정치보복 쇼가 시작됐다”(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 등 야권 발 비난 발언을 덧붙였습니다.
TV조선 <전 정부 보안장치 ‘철거’>(7/18 https://bit.ly/2tem5OZ)는 청와대의 민정수석실 검색대 철거 공개에 “이례적인 공개”라 평가한 뒤 “종이 한 장 빠져 나가지 못하게 철통 보안을 지키던 박근혜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막상 자체 작성 문건을 300건이나 캐비닛에 남겼다는 건 이해하기 힘든 일이라는 지적”을 달아 역시 의심의 눈초리만 남겼습니다.
TV조선 <판포커스/청와대 캐비닛 ‘미스터리’>(7/18 https://bit.ly/2uBf8uQ)는 TV조선만의 의심을 한 데 모아놓은 보도입니다. TV조선은 “커다란 캐비닛이 있는데, 왜 아무도 열어볼 생각을 안했을까”, “전 민정수석실 사정팀 관계자는 해당 문건이 사정팀에서 갖고 있을만한 내용도 아니고, 본적도 없다고 했다”, “누가 만든 건지 아직까지 확인이 안 되고 있다”, “관리 소홀로 남겨진 건지, 누군가 의도적으로 남겨둔 건지, 아니면 누군가 갖다준 건지, 수많은 추측들만 난무한다” 등 아무런 근거가 없는 의심을 3분 14초 동안 늘어놨습니다. 이 모든 의심은 자유한국당 등 야권이 가하고 있는 공세와 동일합니다.
‘NLL 대화록 공개 파문’과 ‘박근혜 국정농단 문건 공개’가 똑같다고?
채널A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채널A <“다 파쇄했는데 있을 수 없는 일”>(7/18 https://bit.ly/2vgKYuz)은 아예 리포트의 시작을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보고 위법성이 있을 경우에는 검찰에 고발 조치를 할 예정”이라는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발언으로 장식했습니다. 이어서 “5년마다 반복되는 정치보복쇼”, “있을 수 없는 일”, “문서들은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된 뒤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됐다” 등 야권과 이전 청와대 관계자들의 주장을 나열했습니다. 여기다 여당의 입장을 대비시키기는 했으나 “지난 정부에서 생산한 문건을 발견한 것인데, 근데 무슨 정치보복 그런 뜬금없는 소리가 있어요”라는 김태년 민주당 정책위의장 발언을 덧붙이는데 그쳐 기계적 중립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애초에 국정농단 문건을 ‘여야 정치 공방’으로 처리한 보도의 취지부터가 부적절합니다.
심지어 채널A는 여당을 직접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대화록 공개는 위법이라더니>(7/18 https://bit.ly/2u97uar)는 2013년 6월, ‘노무현 정부 당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사건’을 이번 국정농단 문건 공개와 비교하며 당시 “서해북방한계선(NLL) 포기 의혹이 제기된 대화록 사본이 공개되자 민주당은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고 전했습니다. “불과 4년 전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이런 걸 '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는데, 이번에 특검에 직접 넘기기까지 했”다며 민주당을 비판한 겁니다. 여기다 “이중적인 잣대”라는 자유한국당의 비판도 덧붙였고 “공수(攻守) 주체만 바뀌었을 뿐 4년 전과 똑같은 공방이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이라며 ‘NLL대화록 공개 파문’과 이번 사태를 동일시했습니다.
△ 국정농단 문건과 ‘NLL 대화록 파문’ 동일시한 채널A(7/18)
상식적으로 비교 불가한 두 사건, 국민 기만한 채널A
채널A는 ‘NLL 대화록 공개 파문’을 이번 사태와 동일시하며 ‘민주당도 도긴개긴’이라는 논리를 폈죠. 그러나 ‘NLL 대화록 공개 파문’과 이번 국정농단 문건 공개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사건입니다. 일단 이번에 발견된 국정농단 문건은 문재인 정부가 없던 논란을 만들어 특정한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억지로 공개한 것이 아닙니다. 이전 정부가 말 그대로 ‘놓고 간 문건’들을 발견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2013년 불거진 NLL 대화록 공개 파문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야권 후보였던 문재인 후보를 공격하기 위해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이 만들어낸 의혹에서 시작됐습니다. 2012년 대선을 코앞에 둔 10월,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이 ‘2007년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 대화록을 본 결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고 주장했고 결국 대선은 ‘종북 논란’ 속에 치러졌습니다. 새누리당은 ‘민주당이 NLL을 북한에 넘겼다’고 공세를 퍼부었는데 김무성 의원의 경우 대통령기록물이자 국가기밀인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국정원을 통해 입수했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정작 대선이 끝나자 진실 공방은 흐지부지 됐고 ‘사초 실종 사건’으로 비화한 끝에 오히려 처음 의혹을 제기한 정문헌 의원이 대화록 유출죄로 벌금 천만원을 선고 받았죠. 김무성 의원 역시 “대선 때 과했다”며 사과했고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도 2014년 8월 “노무현 대통령이 NLL 포기란 말을 한 번도 쓴 적이 없다”고 사과했습니다.
정리하자면 ‘NLL 대화록 파문’은 자유한국당 등 구 여권 세력이 대선에서 이기기 위해 사실과 다른 의혹을 주장하면서 터졌고 그 의혹 당사자들이 위법하게 대통령기록물을 열람했다는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반면 이번 국정농단 문건 공개는 이전 정부가 기밀 표시나 기록물 이관을 하지 않아 남아 있는 문건이 발견된 것이고 대부분은 이미 알려진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및 실정에 정황을 더하는 내용들입니다. 여당이 아닌 현 청와대가, 이전 청와대의 자료를 공개했다는 점도 중요한 차이입니다. 채널A는 이렇게 상식적인 수준에서 확인 가능한 차이를 무시한 채, ‘민주당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프레임으로 몰아갔습니다.
야당 대변인 자처한 TV조선‧채널A, 언론이라면 사실관계부터 따져야
이렇듯 TV조선과 채널A는 철저히 야권의 편에 서서 국정농단 문건을 공개한 청와대를 공격했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전반적 폭정과 국정농단이 기록된 구체적 내용을 외면하면서 본질을 은폐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심지어 정치적 사안을 다룰 때 양쪽 주장을 모두 다뤄야 한다는 기본적인 보도 윤리조차 어겼습니다.
더 큰 문제는 TV조선과 채널A의 주장이 사실관계마저 왜곡한다는 겁니다. TV조선이 보도한 ‘대통령기록물을 공개한 문재인 정부가 위법’이라는 주장에도 이미 많은 반론이 나왔습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소속 송기호 변호사는 “대통령지정기록물의 지정은 문서 생산 당시의 대통령이 각 문서마다 개별적으로 이관하기 전에 보존기간을 정하는 방식으로 하게 돼 있다. 이번에 발견된 문서는 이러한 요건을 갖추지 않아 지정기록물에 해당하지 않는다”라며 법적 문제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소연 한국기록학회 회장은 “법에는 미이관 기록은 대통령기록관에 이관하도록 돼 있는 조항 말고는 공개 여부나 지정기록 목록과 대조해야 한다는 내용이 없다”, “캐비닛 문서의 존재가 알려진 이후 놀랍게도 ‘다 파기했으니 그럴 리가 없다’는 관계자의 발언이 보도됐다. 박근혜 청와대에서 벌어진 기록 무단폐기에 관한 직접적 진술이 나온 만큼, 이를 수사하고 처벌해 모든 공직자의 경계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오히려 기록물을 무단 폐기한 황교안 전 권한대행을 처벌해야 한다는 겁니다.
TV조선이 성실히 나열한 ‘공개 시점에 정치적 의도’, ‘문건이 남아 있을 리 없다’ 등의 주장은 근거 없는 추정에 불과합니다. 언론은 기본적으로 근거를 가지고 보도해야 합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7년 7월 18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1,2부), TV조선 <종합뉴스9>, 채널A <종합뉴스>, MBN <뉴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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