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모니터_
기시다 “마음 아파” 발언, “부담 없이 오라” 윤석열 배려 덕분?
등록 2023.05.09 17:24
조회 254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5월 7일 한일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혹독한 환경에서 많은 분들이 매우 고통스럽고 슬픈 일을 겪으셨다는 것에 대해 마음이 아프다”며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입장을 개인 의견으로 한정지어 에둘러 표현했습니다. 지난 3월 정상회담에 비해 진전된 입장 표명이 나올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이번에도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반성은 없었습니다.

 

동아일보한국경제는 5월 8일 지면에서 기시다 총리의 일본 내 불리한 정치적 입지를 상세히 설명하며 기존 입장과 다를 바 없는 기시다 총리의 유감 표명을 높이 평가했는데요.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은 5월 9일 지면에서 기시다 총리의 발언 배경을 자세히 전하며 이러한 흐름에 동참했습니다.

 

조선‧중앙 “윤석열 배려 덕분에 기시다 유감 표명”

조선일보 <윤 “부담 없이 오라” 배려에…기시다 “가슴 아프다” 표명>(5월 9일 김동하 기자)은 윤석열 대통령이 한일 정상회담 전날 참모들에게 “선물이라든지, 과거사 사과라든지 그런 이야기가 대통령실에서 나오지 않게 하라”고 주문해 “오히려 기시다 총리의 부담을 덜어”주었다고 전했습니다. 그로 인해 “일본 외무성도 기시다 총리가 ‘가슴이 아프다’는 표현을 쓰는 것에는 반대 입장”을 밝혔지만, 기시다 총리가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입장을 표명했다고 보도했는데요. 기사 제목대로 “부담 없이 오라”는 윤 대통령 배려 덕분에 기시다 총리가 “가슴 아프다”는 입장을 냈다는 것입니다.

 

중앙일보 <기시다 “가슴 아파” 발언, 참모와 상의 안 한 단독결정이었다>(5월 9일 박태인 기자, 이영희 특파원)는 “기시다 총리가 한‧일 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이란 공식 석상에서…강제징용 피해자 고통에 공감을 표시”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개인적 심정’임을 전제로 했지만…(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책임을 회피한 일본 정부의 입장과는 크게 달라진 태도”라는 것입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을 인용해 “윤석열 대통령 측이 사전에 ‘(과거사 발언에) 너무 부담을 갖지 말고 오라’고 전달했지만, 기시다 총리는 그런 배려에 보답하는 차원에서…‘말해야 할 것은 말하자’고 판단”했다며 윤 대통령 배려 덕분에 기시다 총리의 유감 표명이 나왔다고 평가했습니다.

 

한일정상회담.jpg

△ 윤석열 대통령 배려 덕분에 기시다 총리 유감 표명 나왔다는 조선‧중앙‧한국경제

 

한국경제 “기시다, 지지율 하락 각오하고 소신 펼쳐”

한국경제 <“한·미·일 동맹 강화 늦출 수 없다”… 윤·기시다의 ‘배수진 회담’>(5월 9일 정영효 특파원)은 기시다 총리가 유감 표명을 내놓자 일본에서 “한국 측을 배려한 발언이 자민당 보수파 의원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 “아슬아슬한 표현”이라는 반응이 나왔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윤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의 취약한 당내 기반을 고려해 ‘너무 부담 갖지 말고 오시길 바란다’는 뜻을 사전에 전달”했음에도, 기시다 총리가 “지지율이 다시 하락하는 것을 각오”하고 적극적으로 소신을 펼쳤다고 평가했습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국경제와 달리 한겨레 <“가슴 아프다”는 기시다…1990년대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다>(5월 9일 신형철 기자)는 “기시다 총리의 발언 역시 일본의 명확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개인적 감정을 토로한 1990년대 초 아키히토 일왕의 ‘통석의 염’ 시대로 돌아가고 말았다”고 비판했습니다. 한겨레는 한-일 관계 전문가인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 발언을 빌려, 기시다 총리의 발언은 “교묘하게 주어를 생략한 표현”으로 발언 대상이 불명확해 세계대전에서 고생한 일본인을 포함한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고 지적했는데요.

 

반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국경제는 윤 대통령의 배려와 기시다 총리의 유감 표명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기시다 총리가 밝혔듯 한일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나온 것은 ‘일본 총리 기시다 후미오’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 ‘일본인 기시다 후미오’의 개인 의견인데도 말입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원하는 것은 기시다 총리의 개인 의견이 아니라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반성입니다.

 

히로시마 위령비 참배 놓고, 조선‧중앙 “사죄” vs 경향 “피폭국 상징”

조선일보한국경제는 5월 9일 지면에서 각각 “G7 정상회의 때…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두 정상이 함께 참배하는 의제는 일본 측이 먼저 요구한 사안”, “한국인 원폭 피해자 위령비를 함께 참배하자는 제안도 기시다 총리가 먼저”라며 한일 정상회담 성과로 꼽았습니다. 한국경제 <천자칼럼/히로시마 원폭 한인 희생자 위령비>(5월 9일 윤성민 논설위원)는 한일 정상의 위령비 공동참배는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한‧일 협력의 또 하나 상징적인 일”이라며 “폴란드 바르샤바 방문 중 유대인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은 빌리 브란트 전 독일 총리”에 비견했습니다.

 

중앙일보는 5월 9일 지면에서 “한국인 원폭 희생자 2만 명의 대부분이 당시 미쓰비시 군수공장 등에서 일하던 징용 노동자나 군인‧군속 및 그 가족이었기 때문”에 “기시다 총리가 윤 대통령과…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에 함께 참배하기로 한 것도 사실상 강제징용 원폭 희생자에 대한 사죄의 의미”라고 분석했습니다.

 

경향신문의 분석은 달랐습니다. <일, 피폭국 정체성 상징 장소…‘강제동원‘ 덮고 평화 강조>(5월 9일 유정인 기자)에서 “한‧일 정상 공동참배의 의미는 결국 기시다 총리가 내놓을 구체적인 메시지에 의해 판가름 날 것”이라고 내다봤는데요.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의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참배는 “일본 제안으로 이뤄진 데다 당시 희생자에 한국인 강제동원(징용) 피해자들이 포함된 점을 들어 한국정부는 의미 있는 진전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히로시마는 일본이…세계 유일 피폭국이라는 정체성을 강조하는 상징적 장소”이기 때문에 참배 자체를 “강제징용 원폭 희생자에 대한 사죄”로 해석하고 한일 정상회담 성과로 판단하기에는 섣부르다는 것입니다.

 

전문가 “오염수 방류 정당화 우려”…조선‧매경‧한경 “후쿠시마 현장시찰 성과”

조선일보 <사설/후쿠시마 처리수, 과학 우선이지만 국민 정서도 살피길>(5월 8일)은 “방류수는 태평양을 시계 방향으로 크게 한 바퀴 돌아 4~5년 뒤에나 우리 해역에 도착”하는데, “그사이 거대한 태평양에서 희석돼 한반도 인근에 도착할 때는 우려 대상인 삼중수소가 의미 없는 농도가 된다”며 “후쿠시마 오염 처리수가 한국 바다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과학적으로 쟁점이 되기 어려운 사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3월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 이후의 한일 관계 개선”이 “(후쿠시마 처리수와 관련해) 일본 정부가 한국 전문가단의 별도 현장 검증”이라는 일본 측 성의를 이끌어냈다고 분석했습니다. 5월 9일 지면에서도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 처리수 방류 문제와 관련해 한국 전문가 시찰단을 현장에 파견하는 문제는 한국 측의 요구가 관철”된 것이라며 한일 정상회담 성과로 꼽았습니다.

 

이에 비해 중앙일보 <한·일 ‘남은 잔 채우기’ 본격화…관건은 징용배상·오염수>(5월 9일 강태화‧정영교 기자)는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발언을 빌려 “일본이 한국 시찰단을 수용하기로 했지만…7월 이후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겠다는 원칙과 계획이 달라진 건 없다”며 “일본이 한국 시찰단을 정해진 절차를 강행하기 위한 면피용으로 활용”할 가능성을 우려했습니다.

 

동아일보 <한일, 이르면 이번주 ‘후쿠시마 오염수 시찰단’ 협의>(5월 9일 고도예 기자)는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명예교수 발언을 빌려 이번 시찰단 파견이 “일본의 오염수 방류 결정에 명분”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일본에 가더라도 도쿄전력이 보여주는 자료만 보고 돌아와선 안 된다”고 조언했습니다. 경향신문, 한겨레, 한국일보도 5월 9일 사설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시찰로 일본 정부의 오염수 방류 계획에 정당성만 부여할 수 있다며, 엄정한 기준에 따른 현장 점검을 당부했습니다. 하지만 조선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는 후쿠시마 현장 시찰에 대해 어떠한 우려도 표명하지 않았습니다.

 

* 모니터 대상 : 2023년 5월 9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지면기사

 

<끝>

 

monitor_20230509_040.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