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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페 정체성 훼손 원인이 ‘말랑말랑 여심’ 때문? 조선의 편견
등록 2017.07.27 18:23
조회 398

최근 록 페스티벌에 ‘장르 확장’ 바람이 불고 있다고 합니다. 페스티벌 주최 측이 정통 록 뿐 아니라 EDM, 힙합, 인디 등의 ‘록 이외’ 장르 출연진까지 포섭하는 이유는 결국 ‘더 많은 대중을 끌어들이기’ 위함일 텐데요. 이와 관련해 조선일보가 내놓은 분석 기사가 좀 황당합니다. 

 

 

‘록=거친=남심’ ‘팝=말랑말랑=여심’이라는 도식
기사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사실 제목에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거친 남심에서 말랑말랑 여심으로… ‘록페’는 변신 중>(7/27 권승준 기자 https://goo.gl/x9Fwqe)이라며 ‘남심은 거칠고 여심은 말랑말랑하다’는,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을 야기하는 표현을 거리낌없이 사용하고 있는데요. 기사 내에서도 조선일보는 록 페스티벌의 장르 확장 현상을 “여름 음악 축제에서 울려 퍼지던 단단한 기타 소리가 말랑말랑해지고 있다”고 표현한 뒤, “록 음악보다는 일렉트로닉이나 포크, 팝 등 다른 장르의 음악을 더 선호”하는 “20~30대 여성 관객의 역할이 점점 중요”해진 덕분이라는 해설을 달아놓았습니다. 


즉 조선일보는 ‘록을 좋아한다=거칠다=남성’ ‘일렉트로닉이나 포크, 팝을 좋아한다=말랑말랑하다=여성’이라는 일종의 ‘도식’을 그리고 있는 것인데요. 특정 음악 취향을 ‘여성적 취향’ 혹은 ‘남성적 취향’으로 적극적으로 재단하고 있을 뿐 아니라, 나아가 ‘여성을 말랑말랑’으로 ‘남성을 거친’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이는 단순 현상을 기술하는 것을 넘어서는 성차별적 언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중성 확보’와 ‘여심 끌기’는 다르다
기본적으로 해당 조선일보 기사는 록페의 변화에 대해 “대중성을 확보하려고 지나치게 다양한 가수를 섭외하다 보면 축제 자체의 정체성이 흐려질 위험이 있”다며 부정적 시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부제에서도 “트렌드 좇다 정체성 잃을 수도”라 강조하고 있지요. 그런데 이런 ‘우려되는 변화’의 주요 원인으로 유독 ‘여성 관객의 증가’를 내세우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만 합니다. 


실제 기사는 제목과 부제(<최근 여성 관객 비중 높아지자 악동뮤지션 등 대중가수 늘어>) 등을 통해 반복적으로 여성 관객의 증가가 변화를 유발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데요. 첫 문단에서는 ‘말랑말랑’이라는 ‘여심’을 상징하는 단어를 사용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20대 여성으로 추정되는 (인터뷰어의 이름은 김가은) 인물의 “록 페스티벌은 20~30대 남자들이 가는 거친 곳이란 이미지가 있었는데 출연진을 보니 내가 좋아하는 가수들이 많아서 한번 가보려 한다”는 발언을 소개하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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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락페의 정체성이 흐려지는 원인으로 여성 관객 증가를 꼽은 조선(7/27) 


이어지는 문단에서도 ‘여성 관객’에 대한 관심은 계속 이어집니다. 온라인 판에는 <공연 시장은 여성이 움직인다>는 소제목이 달려있는 이 문단에서 조선일보는 “축제가 성공하기 위해 공연 시장 주 고객층인 20~30대 여성 관객의 역할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 “20~30대 여성 관객층은 록 음악보다는 일렉트로닉이나 포크, 팝 등 다른 장르의 음악을 더 선호하는 편” “주최 측도 여성 관객을 불러들이기 위해 이들 취향에 맞는 뮤지션들을 무대에 올려야 한다. 자연스럽게 출연진의 변화와 여성 관객 증가로 양자 간 선순환 구조가 강해졌다”는 분석과 함께 페스티벌 관객의 남녀 비중을 전했습니다. 록페의 변화를 아쉬워하며 ‘여성이 늘었기 때문’이라 반복하여 강조하는 이런 모습은, 흔히 남성의 전유물이던 문화에 여성의 참여가 늘어나자 ‘여자가 끼면서 다 망쳤다’고 한탄하는 차별주의자의 태도를 떠오르게 합니다.    


실제 조선일보가 인터뷰한 지산밸리 주최 측 관계자는 “전 세계적인 음악 트렌드가 록 음악에서 힙합이나 일렉트로닉 쪽으로 이동 중인데 음악 축제가 그런 흐름을 반영하지 않는 것은 무성의한 것” “한국처럼 규모가 작은 시장에서는 특정 층이 아니라 다양한 관객을 아우르는 ‘빅텐트(Big tent)’ 전략이 최선”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즉 록페 주최 측은 변화의 원인으로 ‘여성 관객이 늘어서’가 아닌 음악 트렌드의 변화와 더 다양한 ‘대중’을 포섭하기 위한 전략을 꼽고 있는 셈입니다. 이어지는 문단에서도 조선일보는 “록 페스티벌의 변신은 전 세계적 추세”라며 “코첼라, 프리마베라 등 성공적인 음악 축제들도 특정 장르 음악에 치우친 것이 아니라 여러 장르의 뮤지션들을 고루 섭외하는 추세”라 전하고 있는데요. ‘대중성을 고려하는 것’은 ‘여성 관객을 더 의식하는 것’과는 엄연히 다른 것입니다.   

 

 

성별 고정관념을 야기하는 표현은 이제 그만
인권보도준칙은 제4장 성 평등 조항을 통해 “양성의 특성을 지나치게 부각”하거나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을 야기”하거나 “양성의 성 역할을 이분법적으로 고정화”하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한국기자협회와 국가인권위원회가 왜 굳이 별도의 조항까지 만들어가며 언론이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경계했을지 고민해 봐야 할 것입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7년 7월 27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신문 지면에 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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