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언련 칼럼_
공영방송 KBS 사장, 왜 시민이 뽑아야 하는가
김서중(민언련 이사·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융합학부 교수)
등록 2024.10.23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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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에서 해직된 뒤 암 투병 중이던 故 이용마 기자가 2017년 3월 11일 ‘모이자! 광화문으로! 촛불 승리를 위한 20차 범국민행동의 날’에 참석해 발언하는 모습 ©오마이뉴스

 

“대통령도 국민이 뽑는데 검찰총장, 공영방송 사장을 국민이 왜 못 뽑습니까?

국민들이 그들을 뽑을 때, 그들이 국민 눈치를 보게 되어 있습니다.”

 

故 이용마 기자가 2017년 3월 11일 박근혜 탄핵 광장에서 절규하듯 외친 말이다. 이명박 정권의 MBC 침탈에 저항하다 해직된 이용마 기자가 다시는 정치적 후견주의에 의해 공영방송의 근간이 흔들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고심 끝에 내놓은 제안이었다.

 

정치적 성향을 가진 인물을 공영방송 이사로 임명하고, 그 이사들은 정권의 낙점을 받은 인물을 사장으로 임명하는 구시대적 작태가 반복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시민들은 환호했다. 공영방송의 진정한 주인은 시민이라는 당연한 주장에 열광한 것이다. 하지만 일부 시민은 동시에 내심 ‘그것이 가능할까’ 회의감도 들었을 것이다.

 

퇴행한 KBS 사장 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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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2월 24일 한국 공영방송 역사상 최초로 열린 ‘시민자문단과 함께 하는 KBS 사장 후보자 정책발표회’ 현장 ©KBS

 

 

하지만 KBS는 이미 공영방송의 진정한 주인이 시민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 적 있다. 2018년 KBS는 신임 사장 선임 절차에 시민자문단 평가를 반영했다. 권역, 성, 나이, 지역 등을 고려해 선정한 142명 시민자문단 앞에서 KBS 사장 후보자 3명이 정책 발표회를 했다. 자문단은 정책을 듣고, 질의하고, 상호 토론하며 가장 적절한 후보를 선택했다. 자문단은 매우 신중하게 판단했다. 소위 공론화 작업을 거친 것이다. 또 모든 과정을 생중계해 일반 시민에게 공개했다. 시민자문단과 이사회가 공영방송 사장 후보자로 적격한 사람을 뽑는지 일반 시민이 판단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자문단 참여자 90% 이상은 과정이, 98% 이상은 평가가 공정했다는 높은 만족도를 보였다. 시민 참여자 98%는 공공기관 선출 시 시민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고 답했다.

 

당시 KBS 이사회는 시민자문단 평가결과 40%, 이사회 평가결과 60%를 반영해 사장 후보를 최종 결정했다. 시민이 완전히 결정한 것은 아니지만 사장 선임 과정에 체계적으로 관여한 것이다. 사장 후보자는 시민이 공감할 수 있는 정책을 제시하고, 기존 사장은 공영방송을 공영방송답게 운영한 성과를 제시해야만 하는 절차가 마련된 것이다. 시민자문단 구성을 대행한 여론조사기관은 편파성 없는 표집 과정을 거쳤다고 자신했다. 특정 정권의 의사가 반영될 가능성은 불가능했다는 뜻이다. 민주적 선출 과정이었다.

 

시민자문단 과정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던 이유는 문재인 정권이 KBS 사장 선임에 개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시민자문단 운영에는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없었다. KBS는 이후 양승동 전 사장, 김의철 전 사장 선임 절차에서도 시민자문단 참여 과정을 뒀다. 또 다른 공영방송 MBC 사장 선임 절차까지 확산되었다.

 

이용마의 꿈, 언제까지 ‘선의’에 기댈 것인가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선의를 가진 정권과 이사회의 결정사항이었다. 만약 특정 정권이 이사회에 영향을 미쳐 시민자문단 과정을 생략해버리면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는 있지만 제재할 방법은 없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2019년 공영방송 주인인 시민이 사장을 선출할 수 있도록 제도개혁을 추진했다. 국민 100명 이상으로 구성된 사장추천위원회가 공영방송 사장을 선출하는 방송법 개정안이 20대 국회에 상정되었다. 하지만 제대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20대, 21대 국회가 지났다.

 

제22대 국회에 제시된 더불어민주당 당론의 방송법 개정안은 사장후보국민추천위원회를 포함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방송4법(방송통신위원회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결국 이용마 기자가 주창한 민주적 사장 선임 방식은 이사회 선의에 기대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시민평가 피해간 ‘낙제점’ 후보들, 사장 선임 중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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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영방송 KBS 27대 사장 면접 대상자 3인

 

우려한 대로 윤석열 정권의 KBS 이사회는 2023년 현재 박민 사장 선출 시 시민자문단 절차를 생략했다. 임기 1년의 보궐 사장을 뽑는 것이니 비효율적이라 생각했을까? 기간 탓은 변명이었다. 2018년 양승동 사장 선출 때도 약 9개월의 임기였지만, 정치적 후견주의를 벗어나고 민주적으로 공영방송 사장을 선출하기 위해 시민자문단 제도를 적용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정권을 대변하는 후보가 시민자문단의 높은 기준을 통과하기 어렵다 판단한 것은 아니었을까? 방송 경험도 없고, 흠이 많은 박민 후보가 사장으로 선임됐음을 감안하면 그런 추론은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온전한 임기 3년을 보장하는 이번 KBS 사장 선임 과정에서도 시민자문단 평가과정은 생략됐다. 박민 사장 연임을 고려한 포석이었을까? 1년 여 짧은 임기동안 박민 사장이 보여준 전횡은 그가 공영방송 사장으로서 부적격하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냈다. 직역과 무관한 직원의 수신료국 강제 전보, 단체협약이 보장하는 국장 임명동의제 무시, 정권 비판 프로그램 폐지, 세월호 10주기 다큐 불방, 고 채상병 사건 보도 축소, 윤비어천가식 보도 등등.

 

KBS 27대 사장 후보 중 최종 면접 대상자 3인에 오른 박장범 뉴스9 앵커는 김건희 여사가 받은 디올백을 ‘조그만 파우치’로 포장하며 윤비어천가에 앞장선 인물이다. 김성진 뉴스주간은 소위 땡윤뉴스 책임자로 불린다. 이런 사람들이 시민자문단 평가를 통과할 수 있었을까?

 

시민이 주인인 공영방송 사장은 정치적 후견주의에서 벗어나 시민이 참여하는 공정한 절차를 통해 선출하고 임명해야 한다. 방송법은 사장국민추천위원회를 도입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어야 하고, 스스로 자부할 만한 시민자문단 전통을 무시한 27대 KBS 사장 선임 절차는 중단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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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언련칼럼>은 시민사회·언론계 이슈에 대한 현실진단과 언론정책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글입니다. 시민들과 소통하고 토론할 목적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기명 칼럼으로,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