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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별로 짚어본 정의연 보도① 맥주집에서 하룻밤 3300만원 썼다?
등록 2023.05.25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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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선생이 기자회견을 열자 언론은 경쟁적으로 보도를 쏟아냈습니다. 이용수 선생이 문제를 제기한 본질과 거리가 먼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 회계부정 의혹’, ‘윤미향 의원 기부금 유용 의혹’ 등이 언론을 휩쓸었습니다. 그러나 관련 보도 다수는 사실을 왜곡하거나 확인조차 거치지 않았습니다.

2023년 2월, 1심 판결이 나왔습니다. 정의연 활동가에 대한 혐의는 전부 무죄, 윤미향 의원의 경우 일부 횡령 혐의에 대해 벌금 150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윤 의원도 사실상 대부분 무죄를 판결받은 셈입니다. 그러나 언론은 2020년 무차별로 쏟아낸 오보나 왜곡보도에 대한 반성과 성찰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기존 보도 내용을 기정사실화하고, 심지어 법원 판결과 검찰 수사를 비판했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정의연과 함께 3년 전 언론보도 실태와 문제점을 살펴보고, 바람직한 언론보도를 위한 저널리즘 원칙을 모색하기 위해 2023년 5월 31일(수)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토론회를 엽니다. 언론보도를 통해 나온 의혹과 쟁점을 정리한 총 9편의 보고서를 싣습니다.

 

‘맥주집 3300만원’의 시작 : 한국경제

2020년 5월 7일 이용수 선생의 기자회견 중 ‘모인 돈이 할머니한테 쓰이지 않는다’는 주장이 나오자 언론은 정의연 기부금 운영에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정의연이 국세청 ‘홈택스’에 공시한 ‘공익법인 결산서류’나 ‘기부금품의 수집 및 지출 명세서’ 등 공익법인 공시 자료를 근거로 쓴 기사가 다수 나왔습니다. 그러나 국세청 공시 정보는 민언련 보고서 <정의연 해명을 무시하는 근거가 된 ‘100만 원 이상 분리 공시’ 규정, 실효성 있을까>(2020/6/5)에서 지적했듯 정의연 기부금 운영에 문제 있다고 판단하기엔 매우 부족한 자료입니다. 실제 자금 흐름, 계좌 내역과 비교하지 않고서는 ‘회계 실수’ 이상의 문제점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부금 사용내역 공시 자료 중 수혜 인원, 대표 지급처에 기재된 것만 갖고 ‘정의연 회계가 수상하다’는 식으로 쓴 기사가 쏟아졌습니다. 대표적으로 한국일보 <[단독] 정대협 사업항목 같은데…기부금 수혜자 1년 새 999명→9999명?>(2020/5/11 김동욱 기자), 한국경제 <[단독] 하룻밤 3300만원 사용..정의연의 수상한 ‘술값’>(2020/5/11 양길성 김남영 김보라 기자), 서울경제 <[단독]인쇄업체에서 유튜브 제작했다?…정의연 ‘제2 옥토버훼스트’ 의혹>(2020/6/1 허진 기자) 등입니다.

 

특히 한국경제 ‘맥줏집 3300만원’ 보도의 경우 ‘정의연이 술집에서 3300만원을 썼다’는 왜곡된 프레임을 만들었습니다. 중앙일보 <맥줏집에선 3300만원, 할머니들에겐 2300만원 쓴 정의연>(2020/5/12), 머니투데이 <맥줏집서 3300만원 쓴 정의연…그 해 피해자 지원은 2300만원>(2020/5/12)처럼 왜곡된 제목을 통해 마치 3300만원을 사용한 것인 양 보도됐습니다.

 

‘맥주집 3300만원’의 사실 : 기자의 무지, 검찰 불기소

그러나 정의기억연대는 맥줏집이나 술집에서 3,300만 원을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공익법인이 결산서류 등을 작성할 때 국세청은 ‘사업연도 중 동일한 목적으로 유사한 금액을 지출한 비용은 지출목적별로 작성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목적이 비슷하다면 지출내용을 묶어 지출금액이 가장 큰 ‘대표 지급처’를 적을 수 있던 것으로, 맥줏집이 공시 자료에 올랐던 것입니다.

 

물론 연간 100만 원 이상 지출한 경우엔 각각 따로 적도록 하는 규정이 있지만, 이는 공익법인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실효성이 떨어지는 규정입니다. 사회일반의 이익을 목적으로 공익법인이 운영되는 만큼 불특정 다수에 지출이 있기 마련이고, 연 100만 원의 장학금이 아동에게 지출됐다고 가정할 때 이들의 이름을 모두 나열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입니다.

 

검찰은 2020년 9월 14일, 정의기억연대 전 이사장인 윤미향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현 무소속)을 재판에 넘겼습니다. 이때 ‘맥줏집에서 하루에 3300만원을 지출했다’는 의혹에 대해 불기소 처분했는데요. 관련 내용이 담긴 KBS, 머니S 기사에 따르면 “공시가 부실하긴 했지만 의혹이 제기된 부분에 정상 회계 처리돼 있었고 지출에도 특별한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검찰은 밝혔습니다. ‘공시 실수’일 뿐 기부금을 유용했다거나 회계 비리가 있다고는 볼 수 없다는 판단이었던 겁니다.

 

‘맥주집 3300만원’ 보도 양상은?

한국경제 기사는 기자의 무지와 취사선택으로 완성됐다

한국경제 기사의 첫 문장은 “시민들의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시민단체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가 하룻밤에 3300여만원을 술집에서 사용해 논란이 되고 있다”입니다. 다음 문단엔 “정의연이 2018년 국내에서 지출한 기부금은 3억1000만원인데, 이 중 10%에 해당하는 금액을 맥줏집에서 쓴셈”이라는 문장도 있습니다.

 

기사에 등장한 근거는 두 가지입니다. “국세청 홈페이지에 공개한 ‘결산서류 공시’를 보면 이 단체는 2018년 디오브루잉주식회사에 기부금 3339만8305원을 지출했다”는 것과 한경희 정의연 사무총장이 처음 기자와의 통화에서 “2018년 디오브루잉에 기부된 3339만원은 옥토버훼스트에서 열린 후원의 날 행사에서 쓴 비용”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한국경제가 든 첫 번째 근거는 공익법인의 공시 자료를 기자가 잘못 읽은 결과입니다. 정의연은 한국경제 보도 당일 보도자료를 내고 ‘3300만원은 2018년 모급사업비 지급처 140여곳(140건의 오기. 지급처는 50곳이라고 추후 정의연은 알렸다)에 지급된 지출총액’이라고 밝혔습니다.

 

게다가 두 번째 근거(한경희 사무총장의 전화 취재)는 취재내용을 취사선택한 결과입니다. 한국경제는 정의연을 적어도 두 번 직접 취재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두 번째 취재에서 정의연은 “3300만원에는 옥토버훼스트 외에 다른 곳에서 쓴 비용도 포함돼 있다”고 해명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한국경제는 분명 공시 자료 상 지출내용이 한꺼번에 적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음에도 “맥줏집에서 하루에 3300만원”이라고 적은 것입니다.

 

정의연이 재공시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맥줏집에 965만여 원을 지출한 것으로 기재됐으며, 한국경제 기사에 나오듯 이 중에서 재료비와 인건비 등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은 디오브루잉(맥줏집) 측에서 다시 정의연에 후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기자의 실수 ‘맥주집 3300만원’이 사실로 둔갑되기까지

한국경제 보도 이후 중앙일보 <정의연 참 희한한 기부···3300만원 지출 사용처는 맥줏집>(2020/5/11), UPI뉴스 <“비용 부풀렸나”…정의기억연대 행사비용 3300만원의 의혹>(2020/5/11), 조선일보 <“술집서 하루 3300만원” 위안부 단체, 이상한 장부>(2020/5/11) 등 제목에 3,300만 원을 적어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정의연의 반론이나 해명도 없는 기사가 이어졌습니다. 조선일보 2020년 5월 12일 자 ‘팔면봉’ 코너에서 “하룻밤 3339만원어치 맥주 마셨다는 위안부 단체, 결제액은 430만원. 酒量(주량)에 놀라야 하나, 뻔뻔함에 놀라야 하나”라고 비꼬기까지 했습니다.

 

오보에 상준 한국경제·중앙대언론동문회

한국경제 ‘맥줏집 3300만원’ 기사는 정의연이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반론보도를 청구해 강제조정됐습니다. 한국경제는 2020년 7월 31일 정정보도 및 반론보도엔 “정의기억연대는 하룻밤에 3,300만원을 술값으로 사용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어 이를 바로잡습니다”라고 실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전날 한국경제는 ‘맥줏집 3300만원 기사’를 사내 이달의 기자상 수상작으로 선정했습니다. 언론중재위원회 강제조정 결정은 그보다 한참 앞서기 때문에 오보임을 알고도 이달의 기자상으로 선정한 것입니다. 이 기사는 중앙대언론동문회로부터 ‘제8회 의혈언론인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문제보도에 수상을 했다는 비판에도 한국경제, 중앙대언론동문회는 시상을 철회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한국경제 입장은?

불기소에도 한국경제 “부실 공시” 주장

2020년 9월 14일 검찰은 정의기억연대 전 이사장인 윤미향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현 무소속)을 재판에 넘기며 ‘맥줏집에서 하루에 3300만원을 지출했다’는 의혹은 불기소 처분했는데요.

 

한국경제 또한 검찰 발표를 두 개 기사 <‘정의연 사태’ 윤미향, 횡령·배임·사기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2020/9/14), <검찰 “윤미향, 치매 앓는 할머니 돈까지 기부받았다”>(2020/9/14)에서 전했습니다. 그러나 정상 회계 처리돼 있다거나 지출에 특별한 문제가 없다는 언급은 없었습니다. “검찰은 ‘감독관청 보고나 공시에 부실한 점이 상당했음에도 이에 대해 처벌 규정이 없었다’고 했다”는 설명만 덧붙였습니다.

 

* 모니터 대상 : 2020년 5월 7일~2023년 2월 17일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정의기억연대 3300만원’으로 검색된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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