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신문_
4차 산업혁명 성공 가로막는 경제지들의 낡은 사고우리 경제에 닥친 큰 과제 중의 하나는 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어떻게 대비하고 그에 필요한 여건을 갖춰나가느냐는 것이다. 인류가 경험한 1,2,3차 산업혁명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 앞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큰 흐름을 읽고 면밀히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많은 경제지들이 얘기하고 있다.
경제지들이 4차 산업혁명의 대비에 관건이 되는 것으로 말하는 것 중의 하나는 창의성과 수평적 관계, 기존의 발상을 뛰어넘는 자유롭고 파격적인 사고 등이다. 이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지들이 기사와 칼럼을 통해 펴고 있는 논지들은 자신들이 말하는 창의성과 수평적 관계, 자유로운 발상에 과연 부합하는 것일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은 면이 많다. 혁신을 얘기하면서도 혁신에 배치되고, 창의성을 얘기하면서도 창의성을 억누르는 사회 및 경제 여건을 조장하는 것이 경제지들의 보도행태다.
창의성과 수평적 관계가 중요하다지만
그러나 한국경제 <권영설의 ‘경영 업그레이드’/4차 산업혁명의 성공 조건’>(4/20 권영설 논설위원 https://goo.gl/zIcv16)이라는 칼럼은 제목 그대로 4차 산업혁명의 성공을 위한 조건을 제시하고 있는데, 인공지능(AI) 로봇 사물인터넷 등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하는 데 중요해지는 것은 일하는 문화라면서 “수직적이던 생산문화가 수평적으로, 즉 분권적이고 자율적이며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변화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칼럼은 “1, 2, 3차 산업혁명에서 성공 조건은 각각 달랐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서 “아이디어와 자본이 결합해야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른바 ‘야성적 충동’을 자극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 예로 미국의 실리콘밸리 등을 들었다.
실리콘밸리의 성공을 가져왔던 것은 무엇일까. 기존 제조업의 성숙이라는 조건이 크지만 혁신적 사고, 자유로운 발상, 기존의 제약에 얽매이지 않는 파격적 아이디어 등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낡은 것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고 혁신적인 발상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경제지들이 대선 국면에서 내놓는 의제들은 그 같은 혁신적이며 자유로운 발상을 북돋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을까.
낡은 안보관과 색깔론
우리 사회에서 ‘낡은 것’, 단지 낡은 것이 아니라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어 폐기해야 할 낡은 것을 꼽으라면 가장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색깔론’일 것이다. 특히 지난주부터 기득권 언론들이 필사적으로 펼치고 있는 색깔론이다. 그런데 경제지들도 그 점에서는 별반 다르지 않다.
서울경제 <사설/대선후보 안보관 검증 ‘색깔론 공세’로 넘길 일 아니다>(4/20 https://goo.gl/lb1T5z)가 색깔론에 대한 경제지의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사설은 “대선후보들은 안보관 문제 제기에 대해 ‘색깔론 공세’로 치부하거나 양비론적 화법으로 쟁점을 피해가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색깔론 논란을 “유권자들이 대선후보에게 기본적으로 요구하는 ‘투철한 안보관’”이라고 서술했다.
사설은 “대선후보들은 안보관 검증 요구를 한낱 ‘정치공세’로만 몰지 말고 국민 앞에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면서 민주당이 문재인 후보의 ‘주적 논란’에 대해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색깔론 정치공세”라고 반박한 것은 물론 안철수 후보가 방송기자클럽 토론에서 “북한은 주적이지만 동시에 평화통일을 위한 상대”라고 말한 것까지 문제를 삼고 있다. 종합지들에 비해 색깔론 보도의 비중은 작지만 논지나 태도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복지 거부증’
‘복지’에 대한 낡은 사고는 여전히 완강하다. 특히 한국경제 <사설/‘포커판 베팅’ 닮아가는 기초연금·아동수당 공약 경쟁>(4/18 https://goo.gl/Ne6WTR)은 대선 복지공약 경쟁을 ‘포커판 베팅 경쟁’으로 비하하고 있다. “한쪽에서 증액·확대를 공약하면 다른 쪽에서 따라가는 양상이다”면서 “이런 식으로 선거를 몇 번 더 치렀다가는 나라살림이 파탄날 판이다”고 호통을 치고 있다. “모든 후보들이 ‘판돈’을 더 얹었다”며 ‘판돈’이라는 표현까지 서슴지 않는다. 공약을 이행하려면 올해 10조6000억원 수준인 기초연금 예산이 내년엔 4조~8조원 더 필요하다며 어김없이 예산 부담을 들고 있다.
이 사설은 “각 후보들은 달콤한 선물만 뿌릴 뿐, 비용을 어떻게 마련할지는 뒷전이다”면서 이를 ‘매표행위’의 일종으로 규정했다. 복지에는 돈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돈은 비용이자 투자다. 그리고 사회의 재원과 자원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에 대해 치열한 논의가 펼쳐지는 장이 선거다. 그러나 경제지들에서는 그 같은 이해가 거의 없다. 아니 이해하려는 노력을 아예 하지 않으려는 듯하다. 심각한 ‘복지 거부증’이라고 할 만하다.
‘안보’를 염려하는 경제지들이지만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인간 안보’ 개념에 대해서도 무지-혹은 무관심-하다. 199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인도의 경제학자 아마티아 센이 제창하는 ‘인간 안보’, 즉 한 나라의 안보는 단지 무력만이 아닌 인간의 생존과 발전을 위한 총체적인 여건을 갖추는 데 있다는 것에 대해 무지하다. ‘복지야말로 최선의 안보’라는 것에 대한 이해가 없다.
‘정치 혐오증’
그 ‘복지 거부증’과 한쌍을 이루는 게 ‘정치 혐오증’ ‘선거 혐오증’이다. 한국경제의 <대선판 ‘정치 과잉’, 극단 치닫는 대한민국>(4/20 성수영 기자 https://goo.gl/X19JuD)이라는 기사가 대표적이다. 1면 등 2개 지면에 주요 기사로 배치된 이 기사는 “대통령 선거를 둘러싼 갈등 양상이 내전이라 할 만큼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면서 극단적인 사례를 예로 들며 정치와 선거 혐오증을 부추기고 있다.
△ ‘정치 혐오’ ‘선거 혐오’ 부추기는 한국경제(4/20)
이를테면 “‘문자 폭탄’이나 ‘18원 후원금’ 등의 공격은 이제 ‘애교’ 수준이 됐다. 온라인은 ‘OOO 후보를 때려죽이고 싶다’ 등의 섬뜩한 막말로 도배되고 있다. … 세대를 넘고 진영도 넘어 전선은 무차별적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라고 말하거나 ‘죽기 살기식 정치투쟁’이 전개되고 있다고도 서술하는 식이다. 이 기사가 예로 들었듯 부산에서 30년 지기 초등 동창을 ‘지지 후보가 다르다’며 말다툼 끝에 살해하는 사건도 벌어지고 정치 얘기로 동료와 대판 싸웠다는 직장인들 사연도 들리는 등 일부에 그 같은 과열과 과잉은 분명히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극단’이나 ‘과잉’과 같은 용어로 이번 대선을 간단히 매도해도 될 정도로 과잉 양상이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어느 선거판에나 있을 수 있는 일을 무리하게 일반화해서 전체 선거판을 매도하는 기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새로운 정치, 새로운 정치리더십을 세우기 위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논의가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은 이 신문의 눈에 아예 들어오지 않는 듯하다.
재벌에 대한 무한애정이야말로 낡은 사고
반면 경제지들이 고수하는 낡은 사고는 굳건하다. 재벌을 바라보는 태도다. 한국경제 <‘구치소서 평정심 찾아가는 이재용…"세상의 비판, 숙명으로 받아들여’>(4/18 안재석 기자 https://goo.gl/YeM39p)가 그 집약판이다.
구치소의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어떻게 지내는지 근황을 전하는 이 기사는 어느 ‘가련한 수인(囚人)’에 대한 연민과 동정으로 넘친다.
“벌써 얼굴이 햇볕에 그을렸다”는 감상적인 문구로 시작된 이 이 기사는 “입맛이 있을 리 없지만 배식 음식은 억지로라도 다 먹는다”면서 그는 가족과 친지들에게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웃을 때도 있지만 “그를 만난 사람들은 웃을 수가 없다. 이 부회장의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고 서술한다.
기사는 그가 “좁은 골방, 찬 바닥에 눕는다”면서 그의 심경이 억울함으로 가득차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며 평소 그의 일상을 아는 이들이 하나같이 “지금 이 부회장은 거대한 오해의 성(城)에 갇혀 있다”고 전한다.
“대중들은 TV 드라마나 자신의 회사에서 만나는 ‘사장님’을 잣대로 이 부회장을 재단하겠지만 60여개 계열사에 종업원만 30만명이 넘는 삼성같은 회사에서 일상적 업무를 거의 대부분 위임하는 이 부회장”이어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직접적인 책임을 질 만한 상황이 아니었음을 강변하려 한다.
그가 구치소에 읽은 책 중의 하나가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출간한 《결국 다시 경제민주화다》, ‘경제 민주화’에 대한 책이라는 것도 굳이 애써 강조하고 있다.
기사는 이 부회장의 24시간이 ‘삼성의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채워져 있다면서 삼성의 위기에 대한 걱정으로 넘어간다. 삼성전자가 지난 1분기에 9조9000억 원의 영업이익을 내 역대 두 번째로 호성적을 올린 것도 “이 부회장이 없으니까 더 잘되네, 뭘.”이라는 조소를 받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낸 뒤 이 부회장에 닥친 시련으로 인해 그의 장기 구상이 온통 헝클어졌고, 삼성의 M&A는 ‘올스톱’됐으며, 삼성의 위기가 시작됐다고 서술한다.
같은 신문이 표제에 ‘단독’이라는 표시까지 달아 내보낸 <‘박근혜-최순실 공모, 기업 부정청탁 구체적 내용 없어’>(4/18 고윤상 기자 https://goo.gl/0jDCm8)는 이 신문이 단독 입수했다는 박근혜 공소장을 내세워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가 뇌물수수를 위해 어떤 방식으로 공모했는지에 대한 사실관계 적시가 매우 허술했으며 대기업 총수들의 부정한 청탁도 구체적 사실보다는 정황상 판단을 앞세우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삼성으로부터 뇌물을 수수하기 위해 공모한 내용이 입증 수준에 못 미친다면서 ‘박근혜는 이재용 부회장이 정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이용해 그가 희망하는 방향으로 승계작업 등을 도와주는 대가로 돈을 달라고 요구하기로 마음먹었다’거나 ‘이재용은 요구(재단 출연금)를 들어줄 경우 승계작업 등 현안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박근혜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심증을 앞세워 법정에서 당사자 진술이나 증거로서 증명돼야 한다고 적었다.
두 개의 기사가 얘기하려는 것은 결국 무엇인가
이미 앞선 경제지 모니터링 보고서에서도 거듭 얘기했지만 재벌에 대한 무한애정, 무한구애다. 재벌총수의 수난은 곧 기업의 위기며, 경제의 위기라는 것이다. 그러니 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나라경제의 발전을 위해서는 재벌총수는 어지간한 잘못이 있더라도 너그럽게 이해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최대 기업의 총수가 받고 있는 혐의는 무리하게 씌운 것이니 법정에서 시비비비가 제대로 가려지고 정의가 구현돼야 하며, 그렇게 되면 총수는 해방을 얻고, 삼성은 위기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아니, 기원(祈願)이며 열망이다.
이렇게 낡은 관념에 사로잡힌 사고에서 4차 산업혁명에 맞는 ‘창의성’과 ‘수평적 관계’가 과연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