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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공동체’ 발언은 어쩌다 ‘친중 증거’가 되었을까
등록 2020.03.25 20:36
조회 244

코로나19 확산이 ‘친중 정책’의 결과라고 공격하는 언론사들은 그 핵심 근거로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과 중국 관계를 두고 “운명공동체”라고 말했음을 부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논리를 담은 기사는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2월 1일부터 3월 19일까지 조중동에서만 30건이나 나왔습니다. 한국일보는 동아일보 칼럼 필진이기도 한 송호근 포항공대 석좌교수를 인터뷰했는데, 여기에서도 송 교수 주장으로 ‘운명공동체’가 언급됐습니다. 실제 문재인 대통령은 중국과 운명공동체라고 말한 것일까요? 정확하게 어떤 맥락에서 그런 말을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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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 확산 국면에서 한중관계 관련 ‘운명공동체’가 언급된 칼럼·인터뷰 기사 수(2/1~3/19) ©민주언론시민연합

 

대통령의 ‘운명공동체’ 언급은 두 번, 맥락을 따져보면 ‘친중’ 단정은 무리수

노컷뉴스의 22일자 팩트체크 기사 <노컷체크/문 대통령은 과연 한중 운명공동체라 말했나>(2/22)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중국과의 관계에서 ‘운명공동체’ 발언을 한 것은 두 번입니다. 첫 번째는 중국의 사드 보복 문제를 해결해야 했던 2017년 한·중 정상회담 자리에서 나왔습니다. 12월 13일, 양국 기업가들이 모인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양국 관계가 경쟁 관계에 있는 건 사실이나 더 크게 보면 양국 협력을 통해 공동 번영해 나가는 운명적 동반자, 또는 운명공동체 관계라 생각한다”고 연설했습니다.(연설 전문) 중국이 사드 경제보복을 풀어야 서로 발전해 나갈 수 있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문 대통령은 다음 날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운명공동체’가 아니라 ‘전략적 협력동반자’, ‘운명적 동반자’라는 표현을 썼는데요. 이는 2008년 한·중 정상회담에서 양국 관계가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로 격상된 데 따른 것입니다.

두 번째는 2019년 12월 한·중·일 정상회담 자리에서 나왔습니다. 문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운명공동체’를 두 차례 언급했습니다. 우선 “중국은 주변국과 ‘운명공동체’로 함께 발전해가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라고 했고, “경제적으로도 우리는 ‘운명공동체’”라는 말도 했습니다.(연설 전문)전자는 문 대통령 자신의 말이 아니라 중국의 대외전략을 해설하는 말이었으므로 문 대통령 스스로 ‘운명공동체’라 말한 대목은 후자입니다. 또한 이 발언은 한·중·일 3국 정상회의에서 나왔다는 사실만 봐도 중국뿐 아니라 당시 무역 분쟁중이던 일본을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이 ‘운명공동체’를 언급한 두 번의 사례는 모두 경제 부문에 한정되었다고 봐야 합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부임한 싱하이밍 신임 중국대사의 ‘운명공동체’ 발언

한편, 싱하이밍 대사는 2월 4일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과 중국은 “명실상부한 운명공동체”라며 협력과 지지를 당부했습니다. 또한 2월 13일 문희상 국회의장을 만난 자리에서도 “중·한 양국은 운명공동체로서 한반도 평화 안정을 추구하는 등 많은 부분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싱하이밍의 발언은 ‘한국 측은 코로나19 상황에서 중국에게 불리한 조처를 하지 말라’는 압박입니다. 노컷뉴스는 이에 대해 “싱하이밍 대사가 최근 기자회견에서 한중 양국은 운명 공동체라며 ‘역지사지’를 거론한 것은 한국 내 상황을 교묘히 이용한 측면이 있다”며, “한국 내에서는 운명 공동체 발언이 기정사실화되자 슬쩍 묻어가는 식의 편승 전략을 택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게다가 중국이 운명공동체라고 말한 대상은 한국뿐이 아닙니다. 중국은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은 베트남에도 여러 차례 ‘중국과 베트남이 운명공동체’라고 한 바 있습니다. 시진핑 주석은2015년에는 ‘아시아 운명공동체’, 2019년에는 ‘인류 운명공동체’ 발언을 하는 등 ‘운명공동체’의 대상도 계속 넓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모두 중국의 주장일 뿐입니다. 한국 역시 아세안(동남아시아 국가 연합) 소속 국가와의 외교를 강화하는 ‘신남방정책’의 일환으로 지난 11월 25일 “아세안은 한국의 영원한 친구이며 운명공동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연설 전문).

조선·중앙은 2020년 1월에 비해 신임 싱하이밍 주한 주중대사가 발언한 이후인 2월 초부터 ‘운명공동체’라는 키워드를 부각한 칼럼들을 부쩍 많이 내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칼럼들이 문재인 대통령과 싱하이밍 대사가 운명공동체라는 표현을 사용한 발언시기와 맥락을 뒤섞어서 마치 문 대통령이 코로나19 확산 상황에서 중국을 ‘운명공동체’라고 말한 것처럼 비난한다는 데 있습니다.

 

시점과 맥락을 뒤섞어 문 정부가 중국과 운명공동체라서 문제라고 비난하는 조선‧중앙

이하경 주필은 <이하경 칼럼/문재인 대통령은 시황제의 노예가 돼도 좋은가>(2/10)라는 무시무시한 제목의 칼럼에서 중국과 시진핑이 코로나19를 잘못 대응해서 국제적으로 큰 피해를 입혔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이 주필은 “문 정권은 총선 전에 시진핑 방한을 성사시키기 위해 저자세를 취했다. “운명공동체발언도 문 대통령이 먼저 꺼냈다. 미국은 중국인 입국금지 조치를 내렸고, 중국의 맹방인 북한과 러시아도 일찌감치 국경을 폐쇄했다. 한국은 관광 목적의 중국인 입국금지 조치마저도 발표 2시간 만에 번복했다. 중국이 그렇게 무서운가. 나를 무시하는 상대와 운명공동체가 되는 것은 노예가 되는 길이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나마 이 칼럼에서는 문 대통령이 운명공동체라는 발언을 먼저 꺼냈다고는 표현했지만, 그 ‘먼저’라는 것이 코로나19 발생 이전이라는 점은 분명히 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다른 보도들은 모두 문 대통령의 발언 시점과 맥락 모두를 제거했습니다. 중앙일보 <박보균 칼럼/문재인 정권의 고약한 인내>(2/13)에서는 “문 정권은 중국몽에 감화됐다. ·중 운명 공동체는 문 대통령 언어다. 그 말은 외교 수사로 머물지 않는다. 거기에 386 운동권식 역사관·이념이 담겼다”며 비판했습니다. 중앙일보 <이하경 칼럼/코로나 최고 숙주는 문재인 정부의 중국 눈치보기다>(2/24)에서는 “이런데도 운명공동체라면서 중국에 대해 전면적 입국금지를 하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다”, “중국은 확진자 통계도 조작한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그런 나라와는 이익공동체는 가능해도 운명공동체는 될 수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이상 언급한 칼럼 이외에도 중앙일보에는 비슷한 논리를 차용한 칼럼이 3월 19일까지 16개나 더 실렸습니다.

조선일보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양상훈 칼럼/소름 끼치는 ·중 운명 공동체>(2/20)에서 “중국 공산당을 좋아하고, 마오쩌둥을 존경하고, ‘큰 산봉우리 중국 앞의 작은 나라 한국’이라고 스스로 비하했던 한국 운동권과 문 대통령은 이제 ‘한·중은 운명공동체’라고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제’라는 용어 사용에서 볼 수 있듯이 마치 코로나19 국면인 현재 ‘운명공동체’ 발언을 한 것처럼 묘사한 겁니다. 조선일보 <사설/‘대구 코로나라니, 역병 진원지도 한국으로 하고 싶나>(2/24)는 “청와대는 ‘우한 폐렴’ 용어를 쓰지 말자고 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한·중은 운명공동체’라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시간 순서를 완전히 뒤섞었습니다. 조선일보 최보식 선임기자의 <최보식 칼럼/지금이 대통령 부부의 심기 경호를 할 땐가>(3/13)는 “대통령 지지자들도 ‘중국인의 아픔이 우리의 아픔, 중국과 한국은 운명 공동체’같은 발언에는 상처받았을 게 틀림없다”고 하기에 이르렀는데, 이제는 아예 시점과 맥락이 다른 두 발언을 붙여서 하나의 관용구처럼 썼습니다.

동아일보 필진들의 경우 논리는 비슷하나 그래도 발언의 시점 정도는 명시해주는 편이었습니다.

 

일부는 사실이지만, 시점과 맥락을 제거해서 만들어내는 일종의 허위조작정보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에 대해서 ‘운명공동체’라고 말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코로나19 상황에서 이 같은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조중동 칼럼들은 맥락과 시점을 삭제하고 특정 표현만 지속적으로 반복·강조했습니다. 마치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제시카 징글’을 외우는 것과 같이 ‘코로나, 문재인, 한중운명공동체, 입국금지안하면, 그는 친중파’를 두 달에 걸쳐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문재인 정부는 친중 정부’라는 프레임을 만들기 위해서 사실관계를 꾸며낸 허위조작정보에 가깝습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20/2/1~3/19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지면보도에 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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