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2023)_

죽어가는 권력보다 살아있는 권력 ‘재벌’을 감시하라

권력 농단의 뿌리 재벌이 물린 재갈, 이젠 벗어 던져야
등록 2016.12.08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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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성’을 바꾼 ‘하이에나’


언론의 자유가 활짝 핀듯하다. 권력 앞에 주눅 들어 아첨을 떨어대던 몇 달 전의 언론이 아니다. 특별 취재팀을 편성하여 연일 숨겨진 진실과 사건의 조각들을 들추어낸다. 정권의 비리와 국정 농단은 군침 도는 먹잇감이다. 온갖 상상과 추측까지 양념으로 곁들여지면서 국민들의 분노를 지폈다. 불쏘시개에 기름을 붓는다. 상업언론들에겐 잘 팔리는 뉴스거리를 주는 꿀단지다. 드라마보다 재미있다는 콘텐츠를 만들어 시청률 팔이도 쏠쏠할 것이다. 

 

<TV조선>을 비롯한 종편들이 쌍심지를 켜고 더 날뛰는 모습이다. 권력에 부역했던 자신들의 켕기는 모습을 씻어내기라도 할 듯한 기세다. 마침내 멈칫거리던 공영방송마저 대열에 동참한다. 정치적 입장과 논조마저 다 팽개쳤다. 선명하게 날을 세운다. 하이에나 근성을 보여준다. 이참에 권력에 대한 비판과 감시라는 감시견으로 보이고 싶은 심산일지 모른다. 기자들도 덩달아 신명 난 듯하다. 언론 권력 맛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에도 시국에 대한 풍자와 패러디들로 봇물을 이룬다. 박근혜 정권 조롱이 국민 예능이 된 듯하다.

 

‘시체’가 아니라 ‘살아있는 맹수’를 사냥하라


 그러나 이미 저항할 힘을 잃어가고 있는 권력을 짓밟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다. 만만해진 정치권력은 더 이상 두려울 게 없다. 초라한 몰골로 주권자인 시민 앞에 끌려 나와 있을 뿐이다. 정작은 살아있는 권력을 어떻게 감시하고 비판할 수 있는 지냐다. 여전히 언론 통제의 시퍼런 날을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은 바로 재벌이다. 그들이 내미는 광고와 협찬비는 언론의 돈줄이며 생명줄이기 때문이다. 삼성에 비판적 보도를 했다가 광고가 끊어진 트라우마도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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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르재단과 K스포츠 재단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재벌은 권력에게 돈을 뜯긴 피해자의 모습으로 분장하고 나타났다. 시민들은 무능한 정치권력을 내세워 온갖 잇속을 챙기는 해괴한 국정 농단의 뿌리엔 재벌이 있음을 간파했다. 재벌들은 경제민주화라는 공약을 호기롭게 내걸고 개혁이라도 할 듯한 기세였던 정권을 유혹하고 부리면서 자신들의 충직한 심부름꾼으로 만들어갔다. 언론과 정치권, 관료, 검찰 등 기득권 세력도 재벌의 손아귀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이익조직인 전경련은 그 선봉대였다. 시민단체나 인터넷 카페로 위장한 전위조직들을 운영하고 관리하며 지원했다. 어버이연합을 비롯하여 극우적 정치단체들을 앞세워 여론을 호도하고 시민들의 활동을 방해했다. 재벌과 박근혜 정권, 새누리당이 한 통속이 된 여러 정황이 뚜렷하다. 

 

그런데 언론은 청와대 심처는 샅샅이 뒤지면서도 뿌리인 재벌의 행태와 범죄는 좀처럼 파고들지 않는다. 그저 조금 드러난 사안만 간간히 보도할 뿐이다. 집요하게 추적하고 온갖 정책과 국가 운영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치열하게 취재하는 흔적은 없다. 양쪽을 오가며 심부름했던 전경련 핵심간부에 대한 추적 취재와 보도조차 감감무소식이다. 처음 미르재단과 K 스포츠재단 문제가 불거졌을 때 요설과 거짓증언으로 국민을 속이려 한 인물인데도 말이다. 검찰도 이들에 대한 압수와 조사에는 비중을 싣지 않는다. 박근혜 무리에 대해서는 작은 의혹을 탈탈 털던 기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몸 피한’ 재벌을 감시하는 것이 진정한 기자정신


젊은 기자들을 중심으로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고 한다. 공정보도위원회를 요구하면서 편집과 보도의 쇄신을 주장한다.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기자들은 반성한다고 했다. 기레기라는 시민들의 조롱에 참담함을 느끼고 진정한 기자정신으로 되돌아가겠다고 다짐했다. 불과 2년 남짓 전이다. 시민들은 이 다짐과 반성이 쏟아지는 비난과 불신의 소나기를 피하려는 얕은꾀가 아닌가하고 별로 큰 기대를 하지 않는 듯하다. 힘 빠진 권력을 난도질한다고 비판적이고 양식 있는 기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살아있으면서 좀 더 긴 생명력을 가진 재벌을 어떻게 감시하느냐에 진정한 기자정신이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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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백만 촛불로 드러난 민심은 단순히 박근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체제를 전면 재편하여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자는 것이다. 부당한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외침이다. 서민과 노동자들의 고통과 희생을 자양분으로 공룡처럼 몸집이 커진 재벌체제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다. 특권과 반칙, 억압과 차별이 없는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를 향한 거대한 시민혁명이다. 이 체제의 가장 강고한 뿌리인 재벌. 재벌에 대한 비판과 감시 없이는 새로운 미래에 대한 꿈은 이루어질 수 없다. 저절로 불거지거나 드러난 것만을 그저 받아쓰는 언론은 언론이 아니다. 취재와 질문 없이 받아 적는 기자들은 그저 홍보직원일 뿐이다. 언론과 기자정신은 잠깐의 눈속임이냐 아니면 도도한 역사적 흐름에 함께 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불법과 뇌물로 정치권력을 앞세워 온갖 이익을 탐한 재벌의 실상을 파헤치고 보도하지 않는 기자정신은 가짜다. 줄줄이 국정조사 청문회에 불려 나온 재벌들. 시민들은 언론보도를 부릅뜨고 지켜본다.

 

정연우 (민언련 정책위원, 세명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