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2023)_

‘포스트팍티쉬’가 던져 준 언론의 과제

‘느낌적 느낌’의 언론에서 ‘팩트적 팩트’의 언론으로
등록 2017.01.05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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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 아닌 느낌으로 판단하는 세태의 상징어, ‘포스트팍티쉬’


지난해 독일은 올해의 단어로 “포스트팍티쉬(postfaktisch)”를 선정했다. 우리말로 하면, “탈(脫)팩트” 정도가 되겠다. 객관적 팩트가 아닌 주관적 감성에, 이성보다 감성에 치우친 결정이 횡행하는 세태가 반영된 것으로, 독일은 지난 70년대부터 매년 독일언어협회에서 올해의 단어를 선정하고 있다. 이 ‘탈팩트’라는 신조어에는 무엇보다 “팩트스런 느낌”을 중요하게 여기고 판단하는 후기자본주의적인 일상의 한 단면이 담겨 있다. 

 

언론에서 ‘팩트(Fact)’는 단순 사실 이상을 말한다. 그것은 팩트가 발생한 시발점과 과정(역사)과, 그것이 만들어진 사회 구조(정치경제)가 담겨 있다. 따라서 팩트를 인식한다는 것은 그것의 역사와 정치·경제적 측면을 함께 고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일정한 이성의 활동을 요하는 행위로, 감성으로 접근해서는 외려 바로 그 ‘팩트’에서 멀어지게 된다. 팩트를 가장한 느낌의 판단은 비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는, 일종의 가면무도회 같은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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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팍티쉬’(탈팩트)를 선정한 심사위원단의 선정 사유는 이렇다. 오늘 정치사회적인 논쟁들이 ‘팩트가 아닌 느낌’에 기반해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무엇보다 대다수 국민들이 ‘느낌적 느낌의 팩트’에 익숙해져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명백한 거짓말도 ‘느낌적으로’ 다가오면 얼마든지, 언제든지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감성 광고’가 되어 ‘팔리는’ 미디어


그러면 후기자본주의에서의 미디어에 대해 잠시 살펴보자. “후기자본주의”를 처음으로 언급한 마르크스 경제학자인 에른스트 만델(Ernest Mandel)은 그 특징을 무엇보다 광고의 기능에서 찾고 있다. 독점자본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산업자본은 문화자본으로 형태 변화를 거치게 되는데, 자본의 가치증식이 광고를 통해 비로소 실현되기 때문이다. 언론학에서 광고의 기능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만델의 지적대로, 상품자본 유통의 기능이요, 다른 하나는 미디어의 기능이다. 전자는 오늘 감성(emotion) 시대의 유발자이다. 초기산업자본의 시대 기능형 광고는 오늘 감성형 광고로 전환되었다. 독점시장에서의 유통 촉진을 위해서는, 마케팅을 위해서는 소비자의 감성을, 느낌을 자극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소비할 때, 소비력을 증명할 때 비로소 (여)왕이 된다. 

 

우리 미디어도 이런 세태에 충실하게 느낌 충만한 광고를 실어나른다. 한국 신문지면의 대부분은 핫한 연예인들의 면상으로 채워지고 방송광고의 대부분은 유명 배우들이나 가수들의 스타일과 일상이 고스란히 일반의 삶과 의식의 내용을 채운다. 느낌이 팩트를 압도한다. TV 뉴스 앵커는 기자 특유의 날카로움보다 배우 뺨치는 얼굴을 가져야 하고 팩트를 감성으로 포장할 줄 아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여기 인간이 감성적인 존재라는 문화심리학적 주장은 다른 모든 사회과학을 제치고 후기자본주의의 철학이 된다. 우리의 화폐시스템은 끊임없는 ‘성장’에 종속되어 있고 소비심리는 감성심리로 대체되고 있다. 이것이 오늘, 감성을 소비하는 풍요로운 일상의 철학이 되고 있다.  

 

‘기능형 언론’이 희망이다


이른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드러나면서 언론은 하루에도 수많은 관련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이 가운데 TV조선은 ‘문화계 황태자’로 불리던 차은택의 대머리를 기어이 드러내고야 말았다. 본의 아니게 대머리여서 가발을 쓰고 다니는 사람이라면 ‘팩트’와 무관한 심리적 압박을 받았을지 모른다. 최순실의 한 짝 벗겨진 프라다 구두 보도 사진을 보며 동화 ‘신데렐라’보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연상하며 욕을 쏟아놓기는 해도, 정말 그녀가 명품구두 마니아인지는 밝혀진 바 없다. 덴마크 현지에 파견된 한 언론사 기자는 최순실의 딸 정유라를 경제사범으로 현지 경찰에 신고했고, 체포되는 장면은 매체소비자들에게 이런저런 방식으로 통쾌함 또는 울분을 유발시켰다. 이 기자의 취재행위는 저널리즘 윤리 논쟁이 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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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적 팩트의 시대’가 후기자본주의의 일상이 되고 있지만, 이를 극복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개·돼지 소리를 듣는 국민은 소비심리학의 제물이 되어가고 있는 시대, 국민이 다시 현자 소리를 듣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키는 여전히 언론이 쥐고 있다. 그것은 감성형이 아닌 기능형 언론이 되어야 사용할 수 있는 절대반지이기도 하다. 디지털 저널리즘의 시대에도 이성적인 언론만이 장구한 본질을 연속하며 생존할 수 있다. 국민과 정치의 끈을 이어주는 언론이 이성적으로 기능할 때 ‘느낌적 팩트’에 종속되어 가는 우리의 후기자본주의적 심리를 타파할 수 있다. 이 사회를 정상화 시킬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의 끈은 언론에 있다.

 

서명준(베를린자유대 언론학 박사·민언련 정책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