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2023)_
나라의 법도는 무너졌지만, 그래도 연대해야 한다영화 ‘인천상륙작전’과 KBS의 불법징계
KBS가 영화 ‘인천상륙작전’ 홍보기사 작성을 거부한 송명훈, 서영민 두 기자를 징계하겠다고 나섰다. 두 기자는 인사위원회에 회부되었다. 방송법과 KBS 편성규약은 기자가 양심과 신념에 어긋나는 지시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KBS 경영진은 그런데 관심이 없거나 무지하다. 오직 괘씸할 뿐이다. 제대로 된 언론사라면 거부할 줄 아는 기자들이 있어야 한다. 거부할 줄 모르는 기자들을 내쳐야 한다. 그러나 지금 KBS의 경영진이 하는 행태는 그들이 KBS의 정체성이나 존재이유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들을 그 자리에 꽂아준 윗사람들에 대한 충성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KBS의 사장, 국장, 부장이라는 완장이 주는 허황한 권세에 눈이 멀었다.
MBC도 다를 바 없다. 인사권, 아니 징계의 칼을 망나니처럼 휘두르는 것은 이미 오래되었다. 사법부에서 부당해고 판결을 내려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다시 복직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치사한 방법을 찾아내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실행에 옮긴다. 추락한 MBC뉴스와 시사프로그램의 신뢰도에는 관심이 없다. 방송문화진흥회의 여당 쪽 이사들이 지켜주고, 그 위의 누군가가 잘했다고 부추긴다. 그들끼리 은밀한 술자리에서 잘했다고 낄낄댄다. 그것이 지금 세상을 잘사는 처세술이라고 믿고 있다.
입추와 올림픽
어제(8월 7일) 입추였다. 그러나 전혀 가을로 들어서는 것 같지 않다. 기온은 35도를 넘었다. 광화문 광장의 지열은 더욱 뜨겁다. 세월호 진상규명, 사드 반대, MBC 살리기를 주장하는 단식과 일인시위를 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아는 만큼 목소리가 끊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안다.
올림픽이 시작되었다. 선수들은 준비한 만큼 뛰고 결과를 얻는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준비한 만큼 다른 나라 선수들도 준비했다는 걸 안다. 올림픽을 보는 눈은 옛날과 다르다. 그러나 올림픽을 보는 눈이 옛날과 같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홍만표, 진경준, 우병우가 잊히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그저 세상이 바뀌지 않고 오늘만 같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내부자들이다. 그들이 ‘인천상륙작전’이란 영화 홍보를 통해 반공, 북한에 대한 공포, 그리고 사드의 정당성까지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그들이 KBS의 두 기자를 징계하겠다는 불법행위를 저지르고, 복직판결을 받은 MBC의 기자와 PD를 치사하게 괴롭히고, 그들이 성주의 국민들을 우롱하고 있다.
나는 외부세력이다
△ 사드배치 관련 MBC <8뉴스> 화면 갈무리
‘외부세력’이란 말은 노동자 파업현장의 ‘제삼자 개입’이란 말과 통한다. 그들은 99%의 연대를 두려워한다. ‘내부자들’은 ‘내부자’가 아닌 99%가 다 외부세력이라는 것을 안다. 단지 그 외부세력들이 외부세력이라는 걸 깨닫지 못하고, 연대하지 못하게 세상은 평안하다고, 세월호의 노란 리본만 없으면, 해고자들만 없으면, 님비현상에 빠진 성주군민만 없으면 대한민국은 살만하다고 속인다. 나라에 법도가 있는데 점잖지 못하게 뭐하는 짓이냐고, 당신은 그러지 말라고 꼬드긴다.
그러나 나라에 법도가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만들어준 법을 지켜야할 검사, 변호사, 판사, 청와대 민정수석이 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의심을 할 만한 충분한 사실들이 드러났다.
검찰이 스스로 바뀔 수 있을까? 노무현 대통령이 수모를 당하면서도 내준 자율권을 끼리끼리의 사욕을 채우는데 이용하고 다시 권력의 주구가 되는 길을 택한 검찰이 바뀔 수 있을까? 희망을 가지기에는 조직 내부의 저항하는 목소리가 너무 작다. 들리지 않는다. 언론노조가 생긴지 30년이 가까워지지만 언론 상황은 후퇴하고 있는 걸 보면 더욱 그렇다. 내부자들의 사슬구조를 해체하기에는 더 많은 어려운 세월이 필요할 것 같다. 혁명이 필요하지만 혁명적 방법은 쓸 수 없기에 더욱 인내심이 필요하다.
외부세력과 연대해야 한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의 고위관리를 한 사람들이 있다. 명백한 친일파들이다. 그들의 후손이 그 친일한 조상을 부끄러워하는지가 문득 궁금해진다. 친일파,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소리는 듣기 싫어하면서도, ‘그래도 그 양반이 그만큼 똑똑했으니까 그랬겠지’ 따위의 말로 주제를 흐리지는 않는지 말이다. 똑똑하고 시험 잘 보는 것은 나쁜 게 아니다. 그러나 그 똑똑한 머리로 나라를 팔아먹고, 동포의 피를 빨아 제 뱃속을 채우는 것은 나빠도 너무 나쁜 일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똑똑하고 시험 잘 봐서 검사가 되고, 공영방송의 고위직에 앉았으면 위임받은 권한으로 나라의 법도를 세우는데 몸을 바쳐야 한다. 그러지 않고 간첩에 공안사범 만들고, 뇌물 받고, 직분에 충실하고자 한 기자 징계하고 해고하고 하는 대가로 호의호식한다면 그놈은 나쁜 놈이다. 몸뿐 아니라 머리도 나쁜 놈이다. 높은 자리가 부끄럽고 두려운 자리라는 의식이 자리 잡을 때까지 몇 번의 입추가 지나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주위에 연대할 외부세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 언론의 사명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