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칼럼_
‘속기’ 저널리즘을 넘어서기 위한 세 가지 실천방안
박성호 (방송기자연합회장)
등록 2025.03.12 10:08
조회 297

‘따옴표’ 관행, 어떻게 바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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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 이미지 ©픽사베이

 

언론은 ‘따옴표 저널리즘’이란 말로 자주 비판받는다. 오래된 비판인데 비상계엄과 내란사태 이후 더 빈번해졌다. ‘누가 ~라고 말했다’며 발언을 받아적고 인용하는 데 몰두한 ‘속기’ 저널리즘은 위험하다. 자칫 거짓을 유포할 수 있다. 이를 공방의 형태로 전하는 경우는 최악이다. 거짓의 지위를 상승시켜 진실과 대결하는 동급으로 대우해 버린다.

 

그런데 나는 따옴표 저널리즘에 대한 비판에서 이따금 공허함을 느낀다. 문제의식은 타당하지만, 같은 지적을 되풀이할 뿐 실천적 제안은 드물다. ‘어떻게’ 고치자는 논의가 적다. 현재의 뉴스 생산 관행에 젖어 있는 기자들이 공감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논의가 구체적일 필요가 있다. 그래야 뉴스에서 당장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따옴표 저널리즘 비판은 때로 언론인들을 딜레마에 빠지게 한다. 어떤 주장은 워낙 문제가 많으니 정규 담론이 되지 못하도록 인용도 말고 배격하라는 요구가 그렇다. 2월 27일 민언련과 한국언론정보학회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문제적 주장이라고 공론장에서 배제하면 그만인가?”(김재영 한국PD연합회장), “집권 여당과 국민의 적지 않은 수가 극우와 연결돼 있는데 극우적 주장을 배제하는 게 현실적인가”(이호찬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당선인)라는 고민이 나왔다. 그 자리에서 나는 ‘무엇을’ 보도할 지보다 ‘어떻게’ 보도할 것인가를 강조했다.

 

뉴스가 추구할 실천방안

 

내란사태 이후 뉴스가 추구할 ‘어떻게’에 관한 세 가지 실천 방안을 제안한다.

 

첫째, 뉴스에 만연한 ‘누가 ~라고 말했다’는 인용문부터 줄이자.

이 방법은 ‘그가 말했고, 그녀가 말했다’(He said, she said) 저널리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근본적 해결책인데, 실천하기 어렵지 않다. 최근 미국 공영방송 PBS 간판뉴스인 <뉴스아워>(NewsHour)의 톱 리포트를 보자. ‘트럼프와 머스크, 첫 내각 회의에서 연방 공무원 감축 계획 예고’라는 3분 38초짜리 리포트에서 문장 21개 가운데 ‘누가 ~라고 말했다’는 인용문은 3개에 불과했다. 리포트에서 직접 인용을 줄이자 기자는 회의장에서 드러난 일론 머스크의 위상을 관찰했고, 공무원 해고 계획의 상황을 짚었으며, 트럼프의 새로운 이민 비자 프로그램과 그의 과거 입장까지 제시해 설명할 수 있었다.

 

▲ 2월 26일자 MBC <뉴스데스크> 리포트 화면 갈무리 ©MBC

 

MBC 사례는 더욱 돋보인다.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의 헌법재판소 최후 변론을 전한 톱 리포트는 19개 문장에서 한 차례도 인용문을 쓰지 않았다. 대신 윤석열이 법정에 늦게 나와 국회측 대리인단 변론을 청취하지 않은 점부터 짚었고, 그가 말하지 않은 계엄으로 초래된 환율 급등과 투자심리 위축을 지적했으며, 사실상 ‘착한 계엄론’으로 그가 국민에게 2차 가해를 했다고 분석했다.   

 

따옴표 사용을 줄이면 취재원은 프레임과 의제를 주도적으로 규정하기 어려워지고, 기자는 사안의 의미와 맥락을 드러내기 쉬워진다. 발언자의 말을 그대로 중계하지 않고 근거를 의심하고 모순을 지적할 수도 있다. 반대로 취재원의 말을 실어나르는 편리한 관행을 고수한다면, 언론학자 김사승이 저서 <저널리즘과 질문의 자격>(2023)에서 지적한 대로 언론은 사안을 정의하는 권력을 취재원에게 내주고, 기자는 비판적 감시자가 아니라 관찰자의 입장에 머물게 된다.

 

둘째, 문제적 발언을 한 당사자에게 더 묻고 따지자.

근거를 요구하고 집요하게 재질문을 던지는 공적 심문은 시민들의 합리적 판단을 도울 수 있다. 홍원식 동덕여대 교수는 언론이 따옴표 관행으로 프로파간다에 악용되지 않으려면, 해당 발언의 모순을 밝힐 수 있는 질문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BBC가 극우 정당인 영국독립당(UKIP)을 2015년 총선에서 다룬 방식이 생각난다.  BBC 기자는 기자회견장에서 나이젤 패라지 당 대표와 대결하듯 물었다. 선거 기간에는 “지난번 공약도 지키지 않았는데, 이번 공약 발표를 왜 믿어야 하나”라고 따졌고, 선거 직후에는 “정말로 사임할 것인가, 아니면 단순한 휴식 후 복귀할 계획인가”라고 추궁했다. 비판적 질문을 계속 던지며 그들의 선거 메시지가 사실에 부합하지 않고 근거가 희박하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극단적 목소리라고 배격하지 않되 그들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고 도전함으로써 정당의 의제를 수동적으로 매개하지 않았다.

 

질문은 종편과 보도전문채널은 물론 지상파에도 일반화한 생방송 출연 대담에서 특히 중요하다. 정치인이나 평론가 등 출연자들이 검증되지 않았지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든 실시간으로 퍼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의 언론인이자 저술가인 빌 코바치와 톰 로젠스틸은 생방송 대담을 두고 ‘재료가 제품이 되는’ 저널리즘이라고 이미 15년 전 심각하게 우려했다. 소문, 중상모략, 의혹, 비난, 주장, 가정 같은 원재료들이 검증을 거치기도 전에 시청자들에게 곧장 전달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진행자들이 명백한 거짓을 듣고도 질문하거나 따지지 않고,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의례적 진행으로 진실 검증에 실패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성공의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BBC <뉴스나잇>에서 앵커 제레미 팩스맨이 답변을 회피하는 내무부 장관 마이클 하워드에게 똑같은 질문을 생방송에서 12회나 던졌던 것처럼 질문 DNA를 가진다면 말이다.

 

셋째,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는 표식을 남기고, 일방적 메시지에는 주석을 달자.

 

▲ 3월 1일자 MBC <뉴스데스크> 리포트 화면 갈무리. ©MBC

 

이 방법은 앞의 두 제안보다 소극적 실천이지만 가장 손쉽다. 발언의 신빙성이 의심스러운데 시간 제약상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다면, ‘검증되지 않은 주장’(unsubstantiated claim)이라는 표현으로 시청자들이 진실로 믿지 않도록 하자. 이미 영미권 방송뉴스에서는 흔한 수식어로 굳어져 있고, 국내 기자들도 더러 그렇게 한다.

 

발언 자체가 허위는 아니지만, 그 말만 전했다가는 사안의 본질을 흐릴 수 있음에 유의하자. 즉 ‘말한 것’이 아닌 ‘말하지 않은 것’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의 3.1절 기념사를 다룬 MBC 뉴스를 예로 들어본다. 이 리포트는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통합”이라는 최 대행의 육성을 전했다. 이어서 기자는 그가 △분열과 갈등의 원인이 무엇인지 언급하지 않았고 △비상계엄에 대한 평가를 유보했고 △통합만 강조해 극우 세력의 책임을 단순히 ‘갈등’으로 치부한다는 의심이 나오며 △한일 간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자면서도 구체적 해법은 말하지 않았다고 해석했다. 방송뉴스에서는 매체 특성상 사운드바이트(육성 녹취)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적절한 맥락 설명과 추가 분석을 통해 뉴스메이커들의 일방적 메시지만 전달되는 것을 충분히 방지할 수 있다.

 

지금 관행에 계속 머물 것인가

 

물론 따옴표 저널리즘만 고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기계적 이분법이라는 안이한 관행과 중립에 대한 오해도 바로잡아야 한다. 다만 여기서는 기자들의 ‘현실적’ 사정을 감안한 ‘현실적’ 제안만 했다. 따옴표 인용은 객관화를 위한 장치라는 지적도 많지만, 시간과 타협한 저널리즘의 산물이라는 점도 외면할 수 없다. 발언은 시시각각 쏟아지고 뉴스는 곧 내보내야 하는데, 모든 발언의 진위를 확인하고 검증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문제적 발언에만 집중한다 해도 그 검증에 몇 시간 혹은 며칠이 걸릴지 장담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지금의 관행에 머물 것인가.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부터 손을 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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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언련칼럼>은 시민사회·언론계 이슈에 대한 현실진단과 언론정책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글입니다. 시민들과 소통하고 토론할 목적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기명 칼럼으로,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