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칼럼_
연산군과 윤석열, 언론탄압과 간신배들윤성구(민언련 정책위원·언론노조 KBS본부 사무처장)
조선 최초의 무오사화, 언론탄압 데자뷰
조선시대 첫 사화는 연산군 때 발생한 무오사화(戊午士禍)다. 당시 조선왕조실록은 공정성과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임금조차 생전에 열람할 수 없었고 당대 왕 사후에만 작성되었다. 그러나 연산군은 즉위 4년 만에 이 규율을 깨고 실록의 기본 자료인 사초(史草) 내용을 문제 삼아 대대적 숙청 작업을 시작했다.
“대간이 말한 바는 반드시 공의(公議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평한 여론)이다.” 아버지 성종이 조선의 언론기관 3사(사헌부, 사간원, 홍문관)를 이렇게 존중했던 것과 달리 폭군으로 평가된 연산군은 3사 언론활동을 자신의 권위를 훼손하는 행위로 간주했다. 그는 이를 ‘임금을 능멸한 것’으로 규정하며 무오사화를 일으켰고, 연산군 시대 폭정과 간신배들의 국정농단 서막이 되었다.
▲ 2024년 11월 7일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을 연 윤석열 대통령
역사 이야기를 꺼낸 것은 윤석열 정권 ‘12·3 내란’이 연산군 무오사화와 놀랍도록 유사한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권은 ‘언론 프렌들리(Friendly)’를 표방했으나 현실은 적대와 공격이었다. ‘바이든-날리면’ 논란을 계기로 MBC 취재진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거부했고, 집무실 이전 이유로 내세웠던 ‘출근길 문답’은 취임 6개월 만에 돌연 중단했다. 그 후 윤석열 정권은 KBS, MBC 등 공영방송 장악에 나섰다.
특히 KBS는 군사작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급격하게 이사회와 경영진이 교체되었다. 주요 보도 제작 간부에 대한 임명동의제를 폐기하고, 불법적으로 임명된 국장들에 의해 뉴스와 프로그램은 철저히 파괴되었다. 심지어 극우 유튜버가 시사 라디오 진행자로 영입되고 KBS 신뢰도는 급락했다. 지난해 11월 최재현 보도국장 발령자는 명태균 게이트의 핵심 증거인 대통령 녹취록 보도를 거부하며 “명태균 녹취는 계속 비슷한 얘기를 중계하듯이 하는 것은 아닌 것 같고 중요한 계기가 있으면 다룰 것”이란 어이없는 변명을 늘어놓기도 했다.
12.3 내란과 KBS ‘사화(史禍)’
▲ 내부 압력으로 제목이 수정된 KBS 시사기획 창 ‘대통령과 우두머리 혐의’ 방송 화면 갈무리 ⓒ언론노조 KBS본부
윤석열 정권은 ‘낙하산 박민’에 이어 ‘파우치 박장범’을 KBS 사장으로 임명하며 공영방송 파괴를 이어갔다. 12·3 내란 보도는 그 파괴의 절정이었다. 조선시대 사화(士禍)에 버금가는 현대판 사화(史禍 역사를 쓴 관계로 말미암아 입는 화)가 공영방송에서 재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비상계엄 선포 이튿날인 12월 4일 KBS는 비상계엄 원인이 야당에 있다”는 여당 인사의 발언과 당시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국회 출입문이 폐쇄돼 투표하지 못했다”는 변명을 검증 없이 방송했다. 12월 5일은 더 참담했다. 계엄령 선포의 불법성과 절차적 문제는 외면했다. 내란죄 성립 여부를 따지는 리포트도 전무했다. 12·3 내란 당시 우원식 국회의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군에 의해 체포될 뻔한 상황은 아예 다루지 않았다. 그 결과 수도권 기준 KBS 메인뉴스 시청률은 SBS에게도 밀렸고, MBC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윤석열 탄핵 가결 한 달을 맞아 기획된 〈시사기획 창 : 대통령과 우두머리 혐의〉는 방영 과정에서 심각한 내부 압력에 부딪쳤다. ‘파우치 박장범’을 앞세운 보도본부 수뇌부는 ‘계엄이 불가피했던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 ‘윤석열 측 입장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다’, ‘윤석열과 박장범의 파우치 대담 영상을 왜 포함했느냐’ 등 이유로 방영을 막으려 했다. 일관되게 내란세력이 주장하는 ‘계엄의 불가피성’을 KBS가 대변하라고 요구했다. 심지어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결방하겠다는 압박까지 가했지만, 제작진의 강력한 거부로 결방은 실행되지 않았다.
역사 앞에 서다 : ‘사화(史禍)’의 반복을 막으려면
1월 30일, MBC는 12·3 내란 당시 윤석열이 “22시에 KBS 생방송이 확정돼 있다”며 계엄 반대 의견을 묵살했다는 이상민 전 행안부 장관의 경찰수사 진술을 보도했다. 이미 언론노조 KBS본부는 지난해 12월 5일 KBS 수뇌부가 계엄방송을 준비한 정황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공영방송 KBS에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의 부역자, 간신배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어떤 역사는 반복될 때 비극이 된다. 다행히 윤석열 정권의 이번 내란은 실패했고, KBS는 ‘내란방송’으로 추락하기 직전 멈춰섰다. 그러나 12·3 내란의 밤,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훼손하고 헌법이 부여한 국민의 알 권리를 배신한 자들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처벌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는 다시금 사화(史禍)의 비극을 반복할 것이다.
다시 역사를 돌아보자. 무오사화로 조선의 언론기관 3사를 짓밟고 폭정을 이어간 연산군의 최후는 어땠는가. 조선시대 최초로 신하들에 의한 중종반정으로 왕좌에서 끌어내려졌다. 손바닥에 ‘왕(王)’을 새기고 ‘왕’이 되고자 한 그대에게 묻고 싶다. 반정 이후 연산군의 삶을 알고 있는가. 연산군이 폐위된 뒤 기록된 《조선왕조실록》을 읽어보시길.
*민언련칼럼은? <민언련칼럼>은 시민사회·언론계 이슈에 대한 현실진단과 언론정책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글입니다. 시민들과 소통하고 토론할 목적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기명 칼럼으로,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편집자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