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언련 칼럼_
총선 핵심 키워드 ‘저출산’, 성평등 없이 극복할 수 없다
오경진(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처장·2024총선시민네트워크 공동운영위원장)
등록 2024.03.29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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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대 총선, 선거운동 서막을 연 안티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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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월 4일 여의도 국회 당대표실 앞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공식 선거운동 이틀 전 3월 27일, 더불어민주당은 ‘비동의 강간죄 도입’을 공약에 포함한 것은 “실무적 착오”라 발표했다. 그 전날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개혁신당 천하람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비동의 간음죄’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발표하자마자 단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바로 입장을 선회한 것이다.

 

대통령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지키겠다고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한 국민의힘과, 젠더 갈라치기 프레임으로 청년 정치의 발전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 이준석의 개혁신당이 지지율 올리기 전략으로 또다시 안티페미니즘을 선택한 것이야 놀랍지 않다. 물론 백번 비판해도 충분치 않다. 그러나 이에 부화뇌동하여 유엔 인권 조약기구들이 여러 차례 권고하고 스웨덴, 독일 등 여러 국가에서 이미 법제화한 보편적 인권 기준인 비동의 강간죄 공약을 하루아침에 ‘실무진의 실수’로 치부해 버린 더불어민주당은 여성 유권자를 과연 어떻게 취급하고 있나?

 

‘성평등 실현’ 목표 실종, 저출산정책 = 여성정책?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서 게시된 정당들의 10대 공약을 보면, 성평등과 여성 키워드는 놀랍도록 찾아보기 어렵다. 여성 분야로 분류된 공약 내용에서도 정책들이 ‘성평등 실현’을 상위 목표로 하지 않고, 주로 ‘저출산’ 해결을 위한 결혼· 출산 장려 정책으로 치환되거나, 성평등 관점 없는 ‘안전’ 정책의 하위 주제로 들어가 있다.

 

4년 전 선거와 비교해도 퇴행은 명백하다. 국민의힘은 이번 총선에서 여성 공약으로 분류된 ‘시민이 안전한 대한민국’ 표제어 아래 정책 목표는 △흉악범죄 예방과 처벌 강화 △사이버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 구축이다. 이미 상식적으로도 여성폭력 범죄라고 알려진 스토킹, 가정폭력, 성폭력 등을 ‘흉악범죄’로 명명한다. 관련 범죄가 지니는 젠더 관점을 애써 지우려는 시도이다. 한편 4년 전 제21대 총선에서 국민의힘의 전신인 미래통합당은 공약에서 많은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데이트폭력, 스토킹, 성범죄 등을 최소한 ‘여성범죄’로는 명명하였다. 2022년 대선에서 ‘여성가족부 폐지’를 ‘청년 정책’으로 제시했던 심각한 퇴행이 현재까지 다다른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4년 전 총선에서는 ‘여성의 안전과 폭력 예방’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2022년 대선에서는 ‘여성이 안전하고 평등한 사회 실현’을 공약 목표로 하여 노동, 건강, 폭력 등 각 영역에서 여성인권보장 정책을 내놓았다. 한편, 이번 총선 10대 공약에 성평등 실현이라는 독자 목표는 없으며, ‘저출생 극복’과 ‘시민 안전’ 등의 세부 목표 아래 노동, 돌봄, 여성폭력 등 각 여성정책이 산발적으로 들어가 있다. 10대 공약의 목표와 표제어만 보더라도 지난 선거에 비해 여성, 인권, 성평등이라는 키워드와 목표가 축소된 것을 알 수 있다.

 

전통적 가족 규범 강화와 현금지원 정책 위주 저출산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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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연도별 출생아 수 및 합계출산율 추이(자료 출처: 통계청) ©민주언론시민연합

 

이번 총선에서 정치권은 저출산이라는 ‘심각한 위기’ 해결에 강한 의지를 보인다. 너도나도 저출산 문제 대응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심지어 국민의힘, 더불어민주연합, 조국혁신당은 저출산 정책 전담 부처 신설을 약속했다. 그러나 대부분 정당이 저출산이라는 ‘결과’를 야기한 구조적 원인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청년을 전통적 가족 규범 테두리로 끌어들이고 현금을 주면 출산율이 높아질 것이라는 오판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현금으로 여성의 몸을 통제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발상은 대체 언제쯤 끝날 수 있을까?

 

극도로 낮은 한국의 출산율을 경제적 시각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오히려 사회문화적으로 지체된 전통적 가족 규범, 불평등한 가사·양육 분담과 여성의 경력단절, 여성과 남성의 소득격차, 신자유주의 무한 경쟁 사회 속 자녀교육 문제와 계층의 세대 대물림 등의 현실에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저항하고 있다는 측면을 읽어내야 한다. 즉, 저출산의 원인을 성평등과 인권의 눈으로 해석하고, 성평등 정책의 기반을 더욱 탄탄하게 다져야 한다. 그런데 성평등 관점이 없는 저출산 정책이 성평등 정책을 대체하여 정당들의 핵심 공약으로 들어가 있는 형국이다.

 

성평등 없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결국 여성의 재생산권을 생식의 문제로 협소하게 바라보는 퇴행을 반복할 뿐이다. 그러나 국가 성평등 정책 전담 부처 등 성평등 추진 체계 강화를 10대 공약으로 제시한 곳은 녹색정의당과 새로운미래 뿐이다.

 

국가 성평등 정책 전담부처 강화 등 성평등 정책 법·제도 정비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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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0대 대선 투표일 전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SNS에 이전에 올린 짧은 공약 문구를 이어붙여 올렸다. ©윤석열 페이스북

 

지난 몇 년간 성평등 의제와 여성운동은 한국 사회 변화를 추동한 주요 동력이 되어 왔다. 미투운동, 권력형 성폭력 범죄와 디지털 성폭력 의제화 등이 그 예이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시기 청년층의 표심을 잡는다는 목적으로 여가부 폐지, 성범죄 무고죄 강화 등을 청년 공약으로 선포했다. 그 결과 2년 동안 성평등·여성 정책은 급속도로 퇴행을 거듭하였다. 성평등 정책의 급속한 축소와 퇴행, 여가부 사업의 운영 미비, 지자체 성평등 정책 전담부서 위상 격하와 성평등 정책 연구기능 축소·약화, 여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지원 예산의 대폭 삭감, 민간고용평등상담실 예산 전면 삭감 등이 나타났다.

 

제22대 총선에서 정치권은 이러한 성평등·민주주의 퇴행을 시급히 되돌리고 한국 사회의 진짜 ‘시급한’ 문제인 불평등과 차별 해소를 위한 약속을 여성 유권자에게 제시해야 한다. 2023년 말 한국여성단체연합을 중심으로 150여 개 여성·시민사회단체가 함께 출범한 ‘2024 총선! 여성 주권자 행동 ‘어퍼’가 출범했다. 출범 선언문 중 한 단락을 인용하며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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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 150여개 여성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2024 총선! 여성 주권자 행동 ‘어퍼’>가 2023년 12월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출범 기자회견 및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오마이뉴스

 

“우리에게는 여성과 소수자의 삶을 후순위에 두거나 삭제하는 정치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대변하는 정치, 우리의 요구를 갈등이나 논쟁으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이해하고 실질적 변화를 만들 정치, 우리를 여의도 셈법에 의한 표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동료 시민으로 대할 정치가 필요하다. 또한 후퇴하는 여성·성평등 정책을 저지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가부장제 자본주의·군사주의·기후위기 속에서 어떤 사회로 나아가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하고 그 과정에 젠더관점을 견지하는 정치가 우리에게 지금 당장 필요하다.”

 

민언련 총선 특별칼럼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은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맞아 선거 전후 언론보도와 사회 의제를 짚어보는 총선 특별칼럼을 마련했습니다. 시민이 정확하고 공정한 정보를 얻어 현명한 주권자로서 선거에 참여하길 바라며, 열한 번째로 오경진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처장・2024총선시민네트워크 공동운영위원장의 글을 싣습니다. 해당 칼럼은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