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언련 칼럼_
‘후보자 검증’ 않는 언론, ‘팩트체크’ 의무 저버렸나
선정수 독립팩트체커(전 뉴스톱 팩트체커)
등록 2024.03.28 14:44
조회 1288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다가온다. 정치권에 대한 냉소가 하루 이틀 일은 아니지만 이쯤 되면 정말 정치권이 국민의 정치 혐오 정서를 부추겨 그들만의 왕국을 꾸려가고 있다는 음모론에 신뢰가 갈 지경이다. 기초적 검증도 제대로 하지 못해 제1야당이 후보 등록 이후 공천을 취소하고 후보를 제명한 일이 벌어졌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후보로 확정된 인물들이 이런저런 과거의 부적절한 언행으로 공천이 취소되는 일이 있었다. 예비후보 등록부터 경선 과정에 이르기까지 정당은 후보를 검증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일반 유권자들이 무자격 후보를 걸러내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이영선 낙마와 후보 검증 시스템의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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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선 전 더불어민주당 세종(갑) 예비후보가 1월 10일 대전시의회에서 전세사기 관련 정책공약을 발표하는 모습. ©오마이뉴스

 

더불어민주당 세종시갑 후보였던 이영선 변호사는 3월 25일 사과문을 발표했다. 갭투기 의혹이 드러나 민주당이 공천을 취소한 이튿날이었다. 이 변호사는 사과문을 통해 "참담한 심정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제 부족함과 부덕의 소치로 저는 민주당 세종(갑) 후보에서 사퇴한다"고 밝혔다. 이어 "당의 결정을 존중하고 수용한다"며 "거듭 사죄의 말씀을 드리며 앞으로 시민 여러분과 당원 여러분께 속죄하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일들을 깊이 생각하며 반성의 시간을 보내겠다"고 덧붙였다.

 

이 변호사는 경선 승리 이후 선관위 후보 등록과 함께 아파트 4채와 오피스텔 6채, 상가 1채와 임차권 1건 등 총 38억 287만 원 상당의 부동산을 신고했다. 문제는 대출인데, 이 변호사는 배우자와 합해 대출 6건과 임차·임차보증금 10건 등 채무 37억 6,893만 원도 함께 신고했다. 부동산 소유 규모와 비슷한 액수다. 대출을 받아 부동산을 사들이고, 여기서 나온 보증금으로 다시 부동산을 사들이는 전형적인 갭투기 행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당과 국민에 용서 못할 죄를 지었다”며 “어제 보고받은 즉시 윤리감찰을 지시하고 본인과 직접 통화해서 사실관계 확인 후에 빠르게 징계했다”고 밝혔다.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데 대해 “제도상 한계”라고 말했다. 당사자의 신고 외에는 추가 재산이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문이 남는다. 과연 당사자 신고 외에는 추가 재산이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을까?

 

전세자금 대출을 받을 때 은행이 요구하는 서류를 살펴보자. 1주택자 여부를 가리기 위해 '지방세 세목별 과세 증명'이라는 걸 요구한다. 누군가 어떤 목적으로든 부동산을 취득했다면 지자체에 등록해야 하고 취득세를 내야 한다. 따라서 제대로 검증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후보자가 지방세 세목별 과세 증명을 제출하도록 하면 된다. 이재명 대표의 "제도상 한계"라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냥 민주당의 후보 검증 과정이 허술했다고 사과하면 될 일이고 각계의 검증 전문가들을 초빙하든지 자문하든지 검증 과정을 탄탄히 보강하면 될 일이다. 민주당의 후보 검증 시스템은 그냥 허술할 뿐이다.

 

예비후보 등록 과정에서 후보가 당을 속일 수 없는 철저한 검증 장치를 만들고, 지역당 또는 중앙당에서 실행할 수 있는 프로토콜을 만들고 그에 따라 검증을 실시하면 그만인 것이다. 괜한 시스템 핑계를 댈 필요 없다.

 

정봉주와 조수진의 낙마, 민주당의 의지 박약 또는 외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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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순서대로 박용진 의원, 정봉주 의원, 조수진 변호사 ©오마이뉴스

 

이번 선거에서 가장 화제가 된 지역구 중 하나가 강북을이지 않을까 싶다. 민주당 내 '비명' 중 그나마 탄탄한 입지를 굳히고 있던 박용진 후보가 두 번의 경선 끝에 모두 패배해 눈길을 모았다. 그런데 이 두 번의 경선 과정을 살펴보면 역시 민주당의 안일한 후보 검증을 살펴볼 수 있다. 첫 번째 경선에서 승리했던 정봉주 후보는 여러 차례 막말 파동을 일으킨 전력이 있고, 결국 목함 지뢰 사건 피해자들에게 막말을 했다가 직접 사과한 것처럼 거짓 해명을 한 것이 치명타가 됐다. 민주당 공천 관계자들이 충분히 사전에 거를 수 있었던 사안이었다.

 

두 번째 경선 승리자였던 조수진 변호사는 성범죄자를 변호하는 과정에서 2차 가해를 일으켰다는 논란이 일면서 낙마했다. 논란은 조 변호사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공개한 내용이 알려지면서 시작됐다. 왜 민주당 공천 관계자는 후보자들이 블로그나 방송 등을 통해 스스로 외부에 공개한 내용을 걸러내지 못했을까? '비명횡사'를 도모하다 비판 여론에 떠밀려 철회한 것이라면 민주당의 수준이 참 한심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대통령 통역관 사칭하던 그 남자, 국민의힘 예비후보로?

 

여당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도태우, 장예찬 등 과거의 막말로 인해 후보 결정 이후 공천이 취소된 사례가 나왔다. 이건 민주당의 정봉주, 조수진 낙마 사례와 본질적으로 같다. 이미 알려진 부적절한 언행을 걸러내지 못한 것이다. 거대 양당의 대응은 얼마나 민심이 들끓는지 지켜보겠다는 식으로 읽힌다. 참 오만한 행태다. 문제가 있지만 과거 일이니 그걸로 아직도 민심이 들끓는다면 다시 판단해 보겠다는 접근인 셈이다.

 

국민의힘 수도권 예비후보로 출마했던 한 후보는 과거 대통령 통역관을 사칭한 사례가 적발돼 뉴스톱을 통해 보도됐다. 그는 대통령 통역관뿐만 아니라 대학교수, 외교관 등 수많은 직함을 사칭했다. 뉴스톱 보도로 그의 사기행각이 드러나자, 언론중재위에 제소하는 뻔뻔함도 내보였다. 그의 중재 신청 사건은 언론중재위원회의 직권조정에 뉴스톱이 이의신청하며 자동적으로 민사소송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얼마 후 원고가 소송을 취하했다는 통보가 전해졌다. 그랬던 그가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나선 것이다. 여당 후보로 말이다. 여당은 예비후보 등록에 과거 이력을 전혀 검증하지 않는 모양이다. 언론에 보도가 된 내용임에도 그는 예비후보로 등록하고 언론을 통해 이름을 알렸다. 결국 경선에 진출하지도 못했지만 말이다.

 

철저한 사실 검증 문화가 필요하다

 

며칠 전 국민일보는 <사설/이영선 같은 부적격자 훨씬 많을 것…유권자가 걸러내야>(3월 25일)에서 “(유권자가) 꼼꼼하게 후보의 적격성을 따져 투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언론의 임무를 방기한 주장이다. 유권자에게 검증을 떠넘길 게 아니라 언론이 후보를 검증해야 할 더 큰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작정하고 속이려는 후보를 유권자가 검증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번 선거에서 언론은 팩트체크에 큰 공을 들이지 않고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팩트체크계에 대한 집요한 공격이 쏟아졌고, 기성 언론사들은 팩트체크에서 한 발 빼는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SNU팩트체크센터도 본격적 선거 정보 사실 검증에 나서지 않고 있다. 팩트체크가 선거판의 마타도어를 가려내는 일에서 출발했다는 점에 비춰보면 참 개탄스러운 일이다.

 

중립적이고 한시적인 기구를 구성해 각 언론사의 취재력 강한 선수급 기자를 차출해, 중립적인 기구에서 인건비를 지원하는 선거 대응 팩트체크 기구를 출범하면 어떨까 싶은 생각도 든다. 진보, 보수, 중도 성향의 언론사들이 선수를 파견하고 검증 과정과 결과는 크로스체크되는 형태로 선거 정보, 일단 흑색선전에 대해서라도 검증해 보면 어떨까 하는 바람이다.

 

민언련 총선 특별칼럼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은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맞아 선거 전후 언론보도와 사회 의제를 짚어보는 총선 특별칼럼을 마련했습니다. 시민이 정확하고 공정한 정보를 얻어 현명한 주권자로서 선거에 참여하길 바라며, 열 번째로 선정수 독립팩트체커(전 뉴스톱 팩트체커)의 글을 싣습니다. 해당 칼럼은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