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언련 칼럼_
‘민생’도 ‘복지’도 없는 총선, 이만큼만 해라
이지현 (참여연대 사무처장·2024총선시민네트워크 공동운영위원장)
등록 2024.03.26 17:21
조회 1357

한국사회는 부자감세, 긴축재정, 물가폭등, 저임금과 내수경기 위축까지 극심한 민생 위기에 처해 있다. 저출생·고령화 심화, 기후위기, 디지털 전환에 따른 급격한 사회 변화 등 각종 위기요인에도 이미 빨간 불이 들어왔다. 그러나 총선을 앞두고도 한국사회가 맞닥뜨린 중차대한 과제들에 대한 주요 정당들의 대책과 공약은 매우 취약하다. 사회안전망이나 일자리 문제에 대한 정부의 역할 확대도, 불평등 완화, 저출생·기후위기 등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을 찾기 위한 진지한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

 

날로 심각해지는 불평등 문제와 구조적 위협을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2024총선넷’은 3월 19일,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10대 분야 46개 과제를 발표하고 각 정당에 제안해 총선 공약으로 포함할 것을 요구했다. 2024총선넷 정책과제는 기후위기 극복, 돌봄복지 확충, 불평등 해소, 한반도 평화, 민생주거, 여성·소수자 권리 확대 등 한국사회가 맞닥뜨린 복합 위기를 극복하고, 평화롭고 지속가능한 사회,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과제들로 구성되었다. 그중에서도 민생·복지 분야 정책 과제를 소개한다.

 

지속가능성을 위한 돌봄 복지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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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ECD 주요 회원국 합계출산율 갈무리 ©민주언론시민연합

 

한국은 수년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최저 합계출산율을 기록하면서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초저출생의 주요 원인을 청년층이 느끼는 경쟁, 고용, 주거, 양육 불안 등으로 꼽고 있지만, 정부는 출산·양육 중심의 정책, 비용 지원에 치중한 정책만 내놓으며 정부의 역할을 소극적으로 제한할 따름이다.

 

또 저출생·고령화로 인해 돌봄 수요가 증가하는데도, 그 책임이 온전히 개인과 가족에게 맡겨져, 돌봄 공백에 대한 우려 역시 크다. 돌봄 문제야말로 각자도생 방식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지만, 윤석열 정부는 집권 이래 이 분야에서도 시장화, 산업화 기조를 앞세워 그동안 미약하나마 진전시켜 온 돌봄의 공적인 역할을 후퇴시키고, 정책과 예산을 지우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동안 주요 사회서비스를 수익 창출을 추구하는 민간에 맡겨 오면서 여러 문제를 낳았다. 운영이 불투명하거나 비민주적인 문제가 지속해서 발생했고, 열악한 종사자의 처우로 인해 서비스 질이 떨어지는 문제도 고질적으로 지적되어 왔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보건, 요양, 복지와 일상생활 지원, 주거 등 필요와 욕구에 따라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역사회 통합돌봄’ 제도가 도입되었지만, 정부의 의지와 역량 부족으로 지금까지도 제대로 추진되지는 못하고 있다.

 

경제적 처지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존엄한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질 높은 사회서비스를 제공받을 권리가 보편적인 권리로서 보장되어야 하고, 이는 공공성의 대폭적인 강화가 필수적이다. 주민들이 살던 곳에서 사회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지역사회 중심의 통합돌봄 체계를 제대로 구축하고, 노인요양, 영유아, 초등 돌봄 등의 분야에 국공립 시설도 대폭 늘려야 한다. 이를 위한 각종 인프라에 투자할 수 있는 국민연금기금 공공투자 시행도 앞으로 국회가 요구하고 챙겨야 할 사항이다.

 

시민의 건강권, 치료받을 권리 보장을 위한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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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1일 윤석열 대통령이 분당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의료개혁’을 주제로 여덟 번째 민생토론회를 개최했다. ©대통령실

 

우리나라는 공적인 의료보험 제도를 시행하는 나라이다. 하지만 건강보험의 보장성이나 의료기관의 공공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2022년 기준 한국의 전체 의료기관 대비 공공의료기관 비중은 5.2%, 병상 수 기준은 8.8%, 의사인력 기준은 10.2%에 불과하다. 이는 2013년 전체 의료기관 대비 기관 수 기준 5.7%, 병상수 기준 9.5%, 의사인력 기준 11.4%에서 후퇴한 수치이자 OECD 국가 최하위 수준이다. 비급여 진료가 많고 건강보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진료가 많아 별도 실손보험에 가입하는 비율도 높다. 그러다보니 의료비 지출은 OECD 평균을 넘고, 지역 및 진료과의 불균형으로 인해 아파도 치료받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과 같은 웃지 못할 신조어까지 생긴 근본적 원인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윤석열 정부는 의대 정원 2천명 증원이 의료 개혁의 유일한 과제인 양 문제를 단순화했다. 물론 의료 인력 확대는 꼭 필요한 변화이다. 하지만 그냥 의대 정원 확대로는 부족하다. 공공의대를 권역별로 신설하고, 지역 공공의료기관의 의무복무제를 시행하는 등 공공성과 지역 불균형 해소를 위한 특별한 정책을 병행해야 문제가 해결된다. 중진료권마다 공공병원 1개 이상 신설 등 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목표를 분명히 하고, 사회적 합의와 지지를 바탕으로 5년 안에 공공병원을 2배 이상 확충할 것을 공약하길 제안한다.

 

국민건강보험의 보장률은 점점 떨어지고, 정부가 정책으로 실손보험과 같은 사보험을 강화하면서 시민들의 의료비 부담은 점점 높아진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높이고, 불필요한 비급여 수요를 부추기는 실손보험 연계 판매를 금지하는 등의 민간보험 통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주치의 제도 도입 등 일차 의료를 제대로 세우는 방향으로 의료전달체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노후와 질병에 대응한 소득보장 정책

 

우리의 핵심 소득 보장 제도인 국민연금의 급여 수준이 2028년에 40%까지 줄어들 예정이다. 한국은 세계 경제 대국 10위권에 오른 나라임에도 노인 빈곤율이 40%에 달해 OECD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66세 이상 노인의 절반 가까이가 빈곤에 처해있는 상황에서 적정 노후 소득 보장이라는 제도의 취지를 무시하고 국민연금의 보장성을 점점 낮춘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소득대체율은 50%로 올리고, 보험료율도 인상해야 한다. 또한 국고지원을 통해 국가, 사용자, 가입자 등 다양한 주체의 재정 책임을 확대해야 한다. 특수고용 노동자를 비롯한 불안정노동자의 국민연금 가입 확대를 위해 보험료 지원사업을 확대와 원청과 플랫폼에 사업주 책임을 부과하는 정책을 약속해야 한다. 출산크레딧, 군복무 크레딧의 기간과 대상을 확대해 사각지대를 줄이는 것도 반드시 논의해야 한다.

 

일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정책

 

사용자-근로자 관계에 속하지 못하는 특수고용 노동자가 꾸준히 증가하면서 기존 복지 제도로 포괄할 수 없는 사각지대도 점점 커지고 있다. 비정규 취약 노동자의 규모가 줄지 않는 상황에서, 고용보험이 실질적 소득보험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취약 노동자, 영세자영업자도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제도를 손보고, 국민취업지원제도가 실업으로 인한 위기에 실질적 안전망으로 작동하도록 수급액과 지급 기간을 늘려야 한다.

 

우리나라는 ‘업무 외 질병이나 부상에 대한 소득 보장제도’가 시행되지 않는 나라이다. OECD 국가 중에서는 미국과 한국, 단 둘뿐이다. 코로나19 시기에 상병수당과 유급병가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면서, 2022년 7월부터 정부가 상병수당 시범사업을 시작했지만, 지역과 대상의 제한도 크고, 수당이 최저임금에도 못미쳐 ‘아프면 쉴 권리’ 보장은 사실상 불가한 실정이다. 쉼이 곧 소득감소에 따른 생계 문제로 이어지지 않도록 OECD 수준의 상병수당과 유급병가 휴가 도입을 공약해야 한다.

 

급속한 인구 고령화와 불평등이 만연한 상황에서 닥쳐올 위기에 대비하기 위한 근본적인, 더 나은 소득 보장 제도,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정책 실종 선거라고 한탄만 하고 있기에는 우리 앞에 놓인 상황이 너무도 엄중하다. 유권자가 목소리 높여 외치지 않고 어떻게 우리의 미래를 바꿀 수 있겠는가.

 

민언련 총선 특별칼럼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은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맞아 선거 전후 언론보도와 사회 의제를 짚어보는 총선 특별칼럼을 마련했습니다. 시민이 정확하고 공정한 정보를 얻어 현명한 주권자로서 선거에 참여하길 바라며, 아홉 번째로 이지현 참여연대 사무처장・2024총선시민네트워크 공동운영위원장의 글을 싣습니다. 해당 칼럼은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