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2023)_
TV조선 공정성 점수 낮게 줬다는 검찰 주장 면구, 본질은 정부의 방송통제
‘방송통신위원회’의 눈물,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이정환(슬로우뉴스 대표)
우리는 ‘MBC 사장이 큰집(청와대)에 불려 가 쪼인트 까이고(실제로 한 말) 매도 맞고 한 뒤 좌파 70~80%를 정리했다’고 떠들던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말을 기억한다. 이명박 정부 초기 2008년 일이다.
대통령이 방송통신위원장을 임명하고, 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을 선임하고, 방송문화진흥회가 MBC 사장을 선임하는 구조에서 MBC 사장이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기는 어렵다. 가뜩이나 대통령의 멘토라던 최시중이 방송통신위원장이 당시 정연주 KBS 사장을 강제로 끌어내린 뒤였다(정 전 사장은 대법원까지 가서 해임무효 선고를 받았지만 돌아갈 수는 없었다).
반복되는 쪼인트, 공영방송의 비극
▲ 2017년 MBC 정상화 이후 언론노조 MBC본부가 그해 11월 21일 상암동 본사 1층에 걸려 있던 음수사원 휘호(박정희 전 대통령이 정수장학회에 내린 휘호)를 세월호 추모 현수막으로 덮는 모습. ⓒ언론노조 MBC본부
최시중이 비판을 의식하지 않고 공영언론을 찍어 눌렀던 건 이런 힘의 과시가 위축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자발적인 충성을 끌어낸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박근혜 정부 시절 안광한 MBC 사장은 1층 로비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정수장학회에 내려줬다는 “음수사원 굴정지인(飮水思源 掘井之人, 물을 마실 때 물의 근원을 생각하고, 우물을 판 사람을 생각하며 마셔야 한다)”이란 휘호를 내걸었을까. 물을 마실 때는 그 근원을 생각하라는 말이지만, 그 현판 밑을 지나던 MBC 구성원들은 “너를 뽑아준 사람이 누구인지 기억하라”는 사장의 다짐으로 읽고 치욕감에 몸을 떨었을 것이다.
최근 방송통신위원회를 겨냥한 전방위 공격을 지켜보면서 15년 전 쪼인트 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방송통신위원회 직원 두 명과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현직 교수가 구속된 데 이어 급기야 검찰은 한상혁 위원장까지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되기도 했다. 여러 의혹이 흘러나왔지만, 이 사건의 본질은 정권이 바뀌었는데 방송통신위원회가 맘대로 움직이지 않으니 검찰을 내세워 실력 행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임명된 한 위원장의 임기는 올해 7월까지다.
▲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이 TV조선 재승인 심사 관련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기 위해 3월 22일 서울북부지검에 출석한 모습
ⓒ오마이뉴스
감사원이 들쑤시고 난 뒤 검찰이 넘겨받은 한 위원장의 혐의는 다음과 같다. TV조선이 2020년 재승인 심사에서 공정성 점수가 과락 기준에 미치지 못해 조건부 재승인을 받았는데 일부 심사위원들이 점수를 고친 흔적이 발견됐다. 검찰은 점수가 조작됐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당시 심사위원들은 최종 제출 직전에 수정한 것일 뿐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재승인 거부가 아니라 조건부 재승인을 받은 걸 두고 심사 기준이 너무 느슨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을 정도였다.
만약 심사위원들이 부당한 청탁이나 압력을 받고 점수를 수정했다거나 누군가가 그걸 지시했다거나 심사위원들의 채점 결과와 다르게 점수가 조작됐다거나 하는 상황이라면 무거운 처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검찰은 방송통신위원회 사무실은 물론이고 심사위원들의 사무실과 자택까지 압수수색을 벌였지만 언론 플레이 이상의 혐의를 밝혀내지 못했다.
검찰은 한 위원장이 이런 사실을 전해 듣고 다른 상임위원들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무집행 방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한 위원장은 심사위원이 점수표를 밀봉하기 전에 직접 수정한 것이라면 문제 될 게 없다고 봤다는 입장이다.
정권이 방송을 내려놓아야 한다
이 글은 재승인 심사와 관련해 방송통신위원회를 두둔하려는 목적에서 쓴 게 아니다. 점수를 단순히 수정한 것이 아니라 의도를 갖고 변경을 공모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책임을 질 사람들은 져야 한다. 다만, 누가 왜 이 사건을 정치적 사건으로 만들고 있는지 잘 살펴야 한다. 털고 털어서 나온 게 겨우 이 정도라면 한 위원장을 끌어내리기에는 부족하다. 무엇보다도 검찰이 나서서 TV조선이 공정성 점수를 부당하게 낮게 받았다고 주장하는 건 면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재판으로 가게 되겠지만 일련의 사건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방송통신위원회 중심의 미디어 지배구조가 바뀌지 않는 이상 이런 비극은 계속될 거라는 데 있다. 애초 대통령이 공영방송 사장을 임명하기 때문에 방송통신위원회가 힘을 갖는 것이고, 정권의 눈치를 보는 낙하산 사장을 내려보낼 수 있기 때문에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방송통신위원회를 손에 넣으려고 하는 것이다. 종편 재승인 심사는 언제나 논란이 됐지만, 방송통신위원회가 케이블채널의 공정성을 까다롭게 심사하는 것은 그만큼 진입 장벽이 높았고 정부가 아낌없이 특혜를 베풀었기 때문이다.
좀 더 나가면 정부가 보도 기능을 승인하고 진입을 제한하는 제도를 근본적으로 검토할 필요도 있다. 퇴출을 시키지 못하는 심사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진입과 퇴출을 정부가 결정한다는 낡은 발상에서 벗어날 필요도 있다. 재승인 심사 문제가 이렇게 뜨거운 것은 종편이 넷 뿐인 시장에서는 재승인 자체가 엄청난 특혜가 되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정부가 떡고물을 쥐고 방송을 컨트롤할 것인가. 말 안 들으면 깐다는 노골적인 협박, 방송통신위원회의 반복되는 비극의 원인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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