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2023)_
2022년 미디어 사업장에 있는 당신에게
이기범(전국언론노동조합 전략조직실장)
등록 2022.12.01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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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친구들 출범 기자회견.png

△ 미디어친구들은 지난 6월 15일 서울 마포구 상암문화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단체 출범을 발표했다. ⓒ미디어친구들

 

미디어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직간접으로 만나고 있습니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직접 만나기도 하고, 언론 보도 또는 여러 재판 기록이나 각종 보고서 속에서 당신들을 만납니다.

 

어느덧 2022년이 한 달 남았습니다. 올해 어떻게 지내셨나요? 잘 계시나요? 안녕하신가요? 혹시 일하는 사업장에서 임금 및 단체교섭을 마무리하지 못한 건 아닌지요? 교섭 과정 중에 힘든 점은 없으셨는지요? 아니면 매각 또는 분사 등으로 고용안정이 흔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못된 상사가 있어 내일이라도 당장 그만두고 싶은 상황은 아니신지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우리나라 노동조합 조직율은 약 14%로 상당수 노동자가 아직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밖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립니다.

 

통계로 본 방송노동자의 현실, ‘불안정의 늪’

 

통계 속에 당신을 봅니다. 2021년 방송산업 취업자 수는 2008년 5만 3천여 명에서 약 8천 명이 늘어 6만 1천여 명으로 집계됐습니다. 2008년과 2021년을 비교해보면 정규직은 63.8%(3만 3천900명)에서 62.3%(3만 8천200명)로 줄었습니다. 무기계약직은 9.9%(5천 2백 명)에서 7.9%(4천 9백 명)로, 계약직은 17.2%(9천 1백 명)에서 13.4%(8천 2백 명)로 단시간 노동자가 4.0%(2천 1백 명)에서 2.3%(1천 4백 명)로 줄었습니다. 이에 반해 프리랜서 구성 비율은 3.3%(1천 8백 명)에서 13.4%(8천 2백 명)로 늘어났습니다.

 

당신이 보시다시피 방송계의 경우 정규직은 줄고 비정규직은 늘어나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중 프리랜서 증가가 압도적입니다. 불안정노동 규모는 늘고 있지만, 대책은 더디기만 합니다. 사실상 정책 또는 대책이 없다고 보실 수도 있습니다.

 

그는 정규직 아나운서와 ‘동일업무 동일노동’을 했다

 

경남CBS_부당해고 기자회견.png

△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돌꽃노동법률사무소, 경남민주언론시민연합, 부산민주언론시민연합 등 10개 노동·언론·시민사회단체는 11월 10일 오전 10시, CBS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경남CBS의 아나운서 꼼수 원직복직을 규탄하였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최근 한 노동자를 판정서로 보았습니다. 당신이 속한 사업장은 2021년 기준 비정규직이 57명(10.2%)으로 전년 대비 2.3%가 증가했다고 합니다. 물론 이 숫자 안에 당신이 포함되어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방송사에서 아나운서로 일하다가 지난해 12월 31일 계약기간 만료로 계약해지가 되었습니다. 2019년 4월부터 2021년 12월 31일까지 구두 계약 한 번, 프리랜서 계약 3번을 했습니다. 근무기간은 2년이 넘어선 상태였습니다. 계약해지에 맞서 스스로 기간이 정함이 없는 노동자임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당신은 스스로 어떻게 일해 왔는지 업무 중에 주고받은 문서와 문자, 카카오톡 메시지 등을 ○○지방노동위원회에 제출해야 했습니다.

 

제출내용 중 노동위원회 심판위원들이 인정한 사실을 꼽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월별 정해진 근무표에 따라 정규직 아나운서와 함께 담당 시간대 뉴스 진행(매일 3회 편성) △그와 정규직 아나운서 사이에는 휴가 등 사정이 발생할 경우 서로 뉴스시간대 교체 협의 △2019년 6월 퇴사한 정규직 아나운서가 맡은 프로그램 제작 및 진행 업무 수행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협조 공문 발송을 하거나 사업계획서 수정 업무 진행 △방송 재허가를 위한 서류 작성 △재난방송 교육 참여 등입니다.

 

○○지방노동위는 ‘정규직 아나운서가 수행하였던 업무 내용과 동일할 뿐만 아니라, 정규직 아나운서와 같이 이 사건 방송사가 정한 시간에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수행하여야 하며, 진행 순서와 방송 내용 등에 대하여 지시를 받는 등 이 사건 근로자가 임의로 업무 내용을 정하고 수행할 수 있었던 특별한 사정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습니다.

 

‘비정규직 백화점’ 방송사, 당신은 잘 지내십니까?

 

결국 ○○지방노동위는 당신에게 지난 5월 근로관계 종료가 부당하다고 판정했습니다. 판정문에서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이며, 기간제 근로자 사용기간 제한을 넘어섰기에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로 보아야 함이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결국 계약기간 만료를 이유로 한 일방적인 계약종료는 해고에 해당하며 원직 복직시키고, 해고 기간 동안 받을 수 있었던 임금을 지급하라고 했습니다. 이후 복직해 잘 지내십니까? 차마 묻지 못하겠습니다. 사업장은 계속해 당신의 노동자성을 지우기에 급급하다는 나쁜 소식이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최근 다른 지역방송사의 당신을 만났습니다. 프로그램이 하나 둘 사라져 ‘프리랜서’로 일할 기회도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당신께서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방송에 대한 꿈이 있어 10여 년 동안 옮겨 다니며 기회를 보았습니다. 지금도 이 끈을 놓치고 싶지 않아 주 1회 프로그램이라도 하고 있지만 이제는 이마저 못할 것 같아요.”

 

미디어 사업장이란 공동체에서 함께 성장하고 꿈을 키우고 싶은 당신. 지금 어떻게 지내십니까? 당신과 함께 일하는 노동자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으신가요?

 

*언론포커스는?
<언론포커스>는 언론계 이슈에 대한 현실진단과 언론 정책의 방향성을 모색해보는 글입니다. 언론 관련 이슈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고 토론할 목적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기명 칼럼으로,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