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2023)_
강릉 ‘빽도’ 미사일 사고, 심각한 저널리즘 실종 사태박석운(전국민중행동 공동대표, 민주언론시민연합 이사)
△ 10월 4일 저녁 우리 군이 발사한 현무-2 탄도미사일이 비정상 비행 후 강릉 공군기지 내 떨어졌다. 불길과 함께 큰 폭발음이 여러 차례 들려 강릉 주민들이 불안에 떨었지만 당일 군의 입장표명은 없었으며, 대다수 언론도 이를 보도하지 않았다. ⓒ 독자 제공 연합뉴스
“‘빽도’ 미사일, 이게 웬 난리입니까?”
10월 4일 밤 11시경 바다 쪽으로 발사된 현무-2 미사일이 바다 쪽으로 가지 않고 거꾸로 육지 방향으로 날아서 강릉 소재 공군기지에 떨어지면서 심야에 큰 폭발음과 함께 화염이 치솟았던 상황을, 윷놀이 판에서 말이 거꾸로 후진하는 ‘빽도’로 비유한 표현이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정작 주류언론에서는 당시 기본적인 상황 보도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던 탓에 수많은 강릉 인근 지역 주민들이 불안에 떨었다. 당시 화염에 휩싸인 영상이 SNS를 통해 공개되면서 시청이나 소방서 등에 신고와 문의가 빗발쳤고, 언론사에도 제보가 잇달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예기치 않은 재난 상황에서 주류언론의 관련 보도는 사실상 실종 상태나 다름없었다.
△ 현무-2 미사일 낙탄 화재 사건을 최초 보도한 곳은 인터넷 언론사 <커머스갤러리>다. ⓒ 커머스갤러리 뉴스페이지 갈무리
최초 보도는 1인 미디어로 보이는 커머스갤러리(www.cmcglr.com, 2022년 7월 구글뉴스 검색제휴 통과, 네이버·다음에선 뉴스 검색 되지 않음)에서 사고 후 2시간쯤 지난 10월 5일 새벽 1시 24분에 보도되었다. 최초 보도 내용은 <[단독] 강릉 18전투비행단 인근 폭발사고…공군 “사고 맞지만 보안사항”>이라는 제목 아래 “공군본부 관계자는 커머스갤러리와 통화에서 제18전투비행단 인근 폭발사고 관련 질문에 .... "사고인 것은 맞지만, 정확한 건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도 파악 중에 있다"고만 말했다” , 또 “현재 SNS상에서는 강릉 제18전투비행단 쪽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났다며 영상이 확산하고 있다. 또 우리 군에서 미사일을 발사하는 듯한 영상이 찍혀 의문을 낳고 있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훈련 중 미사일 오폭 사고가 일어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한 것이다.
그 기사에는 화염이 선명한 SNS상 사진과 영상, 미사일로 추정되는 비행물체가 날아가는 상황을 아파트 난간에서 촬영한 듯한 SNS상 동영상까지 게재됐다. 바로 이어 같은 날 새벽 1시 45분부터 3시 29분까지 ‘톱스타뉴스’, ‘대경일보’, ‘그린데일리’, ‘글로벌E’ 등에서 커머스갤러리 보도와 누리꾼 반응 등을 묶어 비슷한 취지의 보도를 했다.
‘재난보도’조차 하지 않은 주류언론
△ 현무-2 미사일 낙탄 화재 사건에 대한 정부 대응 등에 문제를 제기한 트위터리안의 글. 3천 7백여 명이 리트윗하고 980명이 공감을 표시했다. ⓒ 트위터 캡쳐
반면 이른바 주류언론에서는 합참에서 공식 발표한 아침 7시까지 이런 상황을 일체 보도하지 않았다. 심지어 뉴스전문채널 등 24시간 방송하고 있는 언론에서조차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 당시 SNS상에서 누리꾼들이 “강릉에 폭발난 거 폭발 사고든 단순한 일이든 큰일이든 간에 원래라면 ‘[속보] 강릉에 의문의 폭발 발생’ 같은 짧은 줄과 함께 SNS발 사진 하나가 기사로 올라오는데 왜 지금은 잠잠하냐”는 등 의문을 제기했을 정도였다.
몇 가지 문제점이 제기된다. 우선, 재난보도에 큰 구멍이 뚫린 셈이다. 지역 주민 상당수가 직접 목격할 수 있던 상태였고, SNS상으로도 이미 수많은 사진과 동영상이 유포되던 ‘재난’ 상황에서, 뉴스전문채널과 공영방송은 마냥 손 놓고 있었다. 그런데도 언론사 차원은 물론이고 관련 전문가 그룹에서조차 구멍 뚫린 재난보도 상황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목소리나 개선책 모색 등의 움직임이 제대로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라고 본다.
또한 주류언론은 이른바 ‘엠바고’(보도유예) 핑계만 대면서, 이번에 또 다시 나타난 엠바고 운영상의 고질적인 문제점도 거의 성찰하지 않고, 차후 개선책 모색도 하지 않으면서 두루뭉수리 넘어가고 있는 한심한 실정이다. 최소한 그날 새벽 군 당국에서 초기엔 “군부대 내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하였으니, 인근 주민들께서는 신속하게 대피하시기 바랍니다”라고 안내하고, 폭발사고가 안정된 이후엔 “강릉 군부대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하였는데, 현재 더 이상 번지지 않고 수습상태에 있으므로 주민들께서는 너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는 수준의 발표를 했어야 했다. 그런 발표를 할 수밖에 없도록 주류언론에서 질문하고 답변을 추동하였어야 하는 게 저널리즘의 기본 아닌가? 그러나 주류언론은 사후적으로도 엄중한 지적과 개선방안 모색도 없이 대충 넘어가고 있다.
“큰일 날 뻔” 주택가에 떨어졌다면? 북한 땅에 떨어졌다면?
천만다행으로 군부대 내 낙탄하였고, 미사일이 폭발하지도 않았기 망정이지 혹시라도 700미터 인근 주택가에 떨어져서 운동장 2~3개 이상을 쓸어버릴 수 있다는 현무-2 미사일이 폭발하였다면, 그 끔찍한 참사가 어떠했을지 짐작조차 어려울 지경이다.
만에 하나라도 ‘빽도’ 미사일이 북한 땅에 떨어졌더라면, 만일 거기에 한미군사훈련에 잔뜩 긴장된 상태인 북한군에서 대응 사격을 했다면, 그 경우에는 남북한 간에 실로 예기치 않은 국지전 또는 전면전으로 비화될 수 있던 것 아닌가? 그럴 때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안전한 삶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인가?
응답하라, 언론인들이여!
*언론포커스는? <언론포커스>는 언론계 이슈에 대한 현실진단과 언론 정책의 방향성을 모색해보는 글입니다. 언론 관련 이슈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고 토론할 목적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기명 칼럼으로,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편집자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