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2023)_
철도의 날 꿈꿔보는 지하철역 이름, 전태일역과 촛불광장역김영훈(전 민주노총 위원장)
▵서울교통공사가 올 2분기부터 순차 확대를 예고했던 서울 지하철 1~8호선 내 50개 역의 역명병기 유상판매 사업을 본격적으로 실시한다. 역명병기는 개별 지하철 역사의 주역명에 더해, 주역명 옆 또는 밑 괄호안에 부역명을 추가로 기입하는 것을 뜻한다. 사진은 실제 부역명이 병기된 을지로3가 역사 안내판이다. Ⓒ서울교통공사
6월 5일 서울교통공사가 서울지하철 1~8호선 역이름에 함께 쓸 이름을 공개 입찰(역명병기 유상판매 사업)한다고 발표했다. 언론은 경영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과 함께 자칫 공공성 훼손 논란을 가져올 것이라고 보도했다.
가령 국민일보 <극심한 재정난에 서울교통공사 “강남역명 팔아요”>(6월 6일), 머니투데이 <시청역 파는 게 최선인가요? ‘1조 빚’ 서울지하철, 이름 장사 급급>(6월 9일)에서 보듯 기대와 우려를 함께 전하고 있다. 우리 사회 대표적 공공재인 철도역 이름이 자본의 홍보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는 있지만, 대안 제시를 못 하다 보니 반대만 하지도 못하는 형국이다.
철도는 도로교통과 달리 건설비 등 막대한 투자 비용과 일상적인 유지보수 비용으로 인해 운임수입만으로는 상업적 성공을 이루기 어렵다. 일각에서는 공공기관 방만 운영을 이유로 철도 시장화를 추진했지만, 비용절감은 대형사고로 이어졌고 요금 자율화는 운임 인상을 불러왔다. 또 다른 쪽에서는 일본 철도를 성공사례로 거론하지만 이 역시 민영화 효과로 보기는 어렵다.
일본 철도가 민영화 성공사례?
일본은 1987년 전국단일체계로 운영되던 국철(JNR)을 6개 여객회사와 1개 화물회사로 분할 민영화된 JR체제로 개편했다. 35년이 지난 오늘날 경영 상황은 어떨까. 도쿄를 거점으로 한 JR동일본과 오사카 JR서일본 그리고 ‘황금노선’ 도쿄-오사카 신칸센을 보유한 JR동해 등 본도 3사를 제외한 3도 3사, 즉 JR홋카이도, JR큐슈, JR시코쿠와 JR화물은 경영안정기금이라는 정부 지원 없이는 흑자경영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민영화 당시 국철 누적적자 대부분을 정부 일반회계로 승계하고 민영화 이후에도 정부 지원이 계속된다면 무엇 때문에 민영화를 했냐는 논쟁이 있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2013년 박근혜 정부에서 설립돼 수서역 출발 고속철도를 운영하는 ㈜SR사 역시 민영화 효과로 흑자경영이 가능한 게 아니다. 원래 ‘돈이 되는 노선만’을 운영하면 운영 주체가 공기업이냐 사기업이냐를 불문하고 흑자가 가능한 것이고, 만약 고속철도가 없는 장항선을 삼성이나 현대 등 재벌이 운영한다고 해도 적자운영은 불가피한 것이다.
한편 일본 철도는 운송 수입 외에 백화점, 유통사업, 부동산 임대사업 등 다양한 부대사업을 통해 경영개선을 달성했고 이를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곤 한다. 국철 자산을 승계한 JR 각사는 물론 JR과 경쟁하는 사철회사는 모두 자신들의 고유한 차량, 역과 선로를 소유한 상하통합형 산업구조를 갖고 있다.
특히 세이부(西武), 한큐(阪急) 등 굴지의 백화점과 인기 프로야구 구단을 소유한 일본사철회사는 철도 연변 개발을 통해 상당한 수익을 올리고 있으니, 선로 등 시설물은 국가철도공단이 소유하고 한국철도공사는 선로사용료를 공단에 지불하면서 운영하는 이른바 상하분리형과는 역사적으로나 산업적으로나 다른 구조인 것이다. 자신의 건물에서 영업하는 직영업체와 달리 매달 임대료 걱정을 해야 하는 자영업자와 같은 구조라고나 할까.
공공성 위한 ‘착한 적자’ 대안도 공공성에서 찾아야
▵서울교통공사는 2월 3일 <서울 지하철 코로나 전보다 승객 ¼수입 4,800억 감소…2년째 ‘눈물`>이란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공사는 작년 한 해 지하철 1~8호선 전체 무임수송 인원은 2억 574만 명(전년대비 +1,006만 명)으로 전체 승차인원 중 비율은 15.9%이며, 해당 수송을 운임으로 환산하면 약 2,784억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서울교통공사
일본과 한국 철도의 또 다른 근본적 차이는 요금정책이다. KTX와 신칸센, 도시철도와 지하철 요금 차이도 클 뿐 아니라 65세 이상 무임승차 제도는 일본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다. 개인 소득을 불문하고 누구나 해당 연령만 되면 100% 무임으로 이용 가능한 도시철도 체계는 세계적으로도 유사한 사례가 없는 완벽한 ‘보편 복지’이기 때문이다.
1조원에 육박한다는 서울교통공사 적자 원인을 분석해 보면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수송량 감소와 함께 무임수송 문제를 들 수 있다. 매일경제 <“공짜 지하철 작년 2억명”...서울교통공사, 무임승차 국비지원 요청>(2월 3일)에 따르면 지난해 무임수송 인원은 2억 574만 명, 운임으로 환산하면 2784억 원에 달한다. 서울교통공사가 역명병기 유상판매 사업을 통해 어느 정도 경영개선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노인 무임수송에 대한 근본 대책 없이 흑자경영은 무망하다.
공공성을 위해 발생한 ‘착한 적자’를 해결하는 대안 역시 공공성에서 찾아야 한다. 자가용 이용억제를 통한 탄소배출량과 도로 혼잡비용 감소, 노인복지와 서민들의 이동권 보장 등 철도를 통해 발생시키는 사회적 편익을 운영수익에 반영하는 공공회계원리를 통해 철도지하철 경영상황을 재평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6월 28일 제128주년 철도의 날을 맞아 이런 상상을 해본다. “이번 정차역은 종로3가, 전태일기기념관역입니다. 다음 내리실 역은 광화문, 촛불광장역입니다.” 민영화를 반대하며 촛불을 들었던 노동자와 시민들을 생각한다면 우리나라에 전태일역, 촛불광장역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시시비비는? <시시비비>는 신문, 방송, 포털, SNS 등 다양한 매체에 대한 각 분야 전문가의 글입니다. 언론 관련 이슈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고 토론할 목적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기명 칼럼으로,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편집자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