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2023)_
‘프로그램인 척’하는 광고를 어떻게 막을까정연우(세명대학교 교수, 민주언론시민연합 이사·정책위원)
미디어 영역으로의 자본 침투가 날로 빨라지고 있다. 시장을 키우고 공룡 같은 글로벌 미디어와 경쟁하려면 핵심 돈줄인 광고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목청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그래야 수준 높은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고 시청자들의 시청 권리도 증진된다는 인식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내놓은 방송시장 활성화 기조 핵심도 방송광고에 대한 규제 완화에 있다. 광고허용시간 확대, 지상파 중간광고 허용에 이어 방송광고 규제 패러다임을 전면적으로 바꾸겠다고 한다. 지금 제도는 방송광고가 가능한 유형을 명시하고 그 외 방송광고는 아예 못하게 막는 방식이다. 방송광고는 방송의 중요한 재원 조달 수단이지만, 방송 공공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으므로 미리 엄격히 규제한다는 발상이었다. 그것은 방송광고 시간을 구매하려는 광고주가 줄을 서 있는 공급자 우위시장에서나 유효했다.
광고규제 완화, 시청자 권리는 살폈을까
△ 방송통신위원회는 2월 16일(수) 제6차 전체회의에서 ‘방송광고 네거티브 규제 체계 전환 등 방송광고 제도개선 추진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논의했다고 발표했다. 방통위는 방송광고 규제가 금지하는 것 이외에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하는 입법안을 연말까지 마련하기로 했다. 온라인 광고는 급격히 성장하고 있는 반면, 방송광고 매출은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방송산업의 지속적 성장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는 등의 이유 때문이다. Ⓒ방송통신위원회
하지만 거의 규제가 없는 새로운 미디어가 속속 등장하면서 방송광고 시장경쟁력은 현저히 떨어졌다. 온라인·모바일 미디어에 비해 방송광고는 규제 내용이 복잡하고 형식적인 규제가 많아 광고주가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결과 방송광고 매출은 지속적으로 감소해 방송미디어는 재정적인 어려움이 늘고 있다. 다른 미디어에 비해 방송광고만 엄격히 규제하는 것은 공정한 경쟁에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공공적 책무가 더 높은 방송의 재원 제도는 오히려 더 불리하게 되어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그래서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광고도 원칙적으로 모두 허용하고 문제가 될 만한 광고만 예외적으로 금지하면서 사후규제 체계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미디어 산업에 아무런 대가 없이 단순히 돈만 흘러들어온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 돈은 정작 시청자의 권리에 독배가 될 수도 있다. 미디어가 광고주 이익을 위해 콘텐츠 내용을 변질하거나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치와 의식, 문화의 영역이며 가장 자유롭고도 독립적이어야 할 미디어가 광고주의 식민상태가 될 염려가 커지는 이유다.
방송 시청자 권리를 지켜주는 마지막 보루는 프로그램과 광고의 엄격한 분리다. 광고시간은 돈을 받고 광고주에게 내어주지만, 프로그램은 광고주가 침범하지 못하고 온전히 시청자 권리가 지켜져야 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며칠 전 제시한 방송광고 기본 원칙에도 방송광고는 방송프로그램과 혼동되지 않도록 명확하게 구분하고 광고주가 방송프로그램의 기획·편성·제작 등에 부당한 영향을 금지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방송법 제73조(방송광고등)에도 "방송사업자는 방송광고와 방송프로그램이 혼동되지 아니하도록 명확하게 구분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불법·편법 점철된 방송광고, 사후규제 효과 의문
△ 방송통신위원회가 2021년 10월 7일(목) 전체회의에서 지상파 및 종합편성채널의 건강정보프로그램과 홈쇼핑 간 연계편성 점검결과를 발표했다. 자료화면은 방통위가 홈쇼핑 연계편성 예시로 든 것으로, 2021년 3월 12일자 건강정보프로그램(왼쪽)과 홈쇼핑 판매프로그램(오른쪽)이다. Ⓒ방송통신위원회 21년도 연계편성 점검결과 보도자료
하지만 네거티브 규제가 되면 이미 명맥만 겨우 남은 그 원칙조차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프로그램광고, 토막광고 등으로 나누어져 있는 프로그램 외 광고형식은 굳이 세분화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시청자들이 광고임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어 형식 규제를 하지 않더라도 시청자 오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정작 문제는 프로그램 속에 들어온 광고다. 현재도 가상광고, 간접광고 등이 시청자들에게는 광고로 의식되지 않은 채 무의식중에 전달된다. 지금도 교묘하게 프로그램 일부로 위장한 협찬이 버젓이 있는데 그나마 형식적 규제도 없어진다면 훨씬 노골적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 간접광고가 포함되어 있다는 자막을 내보내지만, 눈가림에 지나지 않는다.
더구나 협찬은 그러한 고지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단순한 제품 노출에 그치지 않고 광고주 요구에 맞춰 스토리를 바꾸는 일은 일상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특정 방송프로그램의 주요 고정 출연자가 방송광고에 등장하여 해당 방송 프로그램과 유사한 상황을 연출”하거나 “방송프로그램 광고시간에 해당 방송프로그램에 나오는 주요 소품, 장소 등을 광고하는 것”을 금지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방송광고심의 규정과도 상충한다. 프로그램 안의 광고나 협찬은 그 정도를 넘어 아예 출연자가 대놓고 광고를 하는 것이다.
사후에 규제를 강화한다고는 하나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현재도 “광고효과를 줄 수 없도록” 되어 있는 심의규정을 어기며 불법과 편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음성적 협찬이 기승을 부리는데도 사후규제망은 허술하기 그지없다. 그 정황은 분명하지만, 위반을 했는지 규제기관이 입증하기는 쉽지 않다. 광고의 사후규제는 과연 얼마나 다를까?
이런 마당에 방송통신위원회는 프로그램 내 상업적 광고물에 대한 규제를 푸는 것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삐를 어떻게 다잡을 것인가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최소한 방송프로그램과 광고를 구분한다는 원칙을 지키려고 한다면 프로그램 내에서 광고적 내용이 나올 때마다 눈에 띌 정도로 크고 명확하게 광고임을 알리게 하는 정도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특히 실효성 있는 사후규제의 구체적 방안을 내놓지 못한다면 미디어 기업의 극진한 모심을 받으며, 광고주가 프로그램 속으로 들어오도록 길을 닦아주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언론포커스는? <언론포커스>는 언론계 이슈에 대한 현실진단과 언론 정책의 방향성을 모색해보는 글입니다. 언론 관련 이슈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고 토론할 목적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기명 칼럼으로,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편집자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