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2023)_
‘방송작가도 노동자’ 판정이 내려졌다이기범(전국언론노동조합 전략조직국장)
©방송작가유니온
머릿속으로 떠올려 보자. 당신이 텔레비전으로 보고 있는 방송프로그램을. 아! 아닐 수도 있다. 스마트폰으로 보고 있을 그 프로그램을. 뉴스 브리핑 등 정치, 경제, 시사 프로그램이 나오는 프로그램이라면 좋겠다.
생방송 아침프로그램을 하는 스튜디오에 와 있다. 프로그램 제목이 벽에 걸려 있다. 벽 뒤편은 텅 비어 있다. 미리 조정을 맞춰놓은 조명 아래 무대는 대낮같이 밝다. 분장을 마친 아나운서 또는 프리랜서 연예인들이 출연자석에 있다. 기술 보조가 와서 무선 마이크 성량 등을 체크한다. 진행 소품이 챙겨진다. 무대를 중심으로 3대 이상의 카메라가 촬영을 시작한다.
부조정실 안에서 PD가 신호를 보낸다. 생방송이 시작된다. 준비해 둔 타이틀이 웅장한 음악과 함께 등장한다. 거리를 두고 앉은 패널들이 말하기 시작한다. 출연자 자막 및 주요 내용을 요약한 발언이 자막으로 나간다. 무대 위 출연진들은 각종 차트를 위에 올려놓고 말하기 시작한다. 오디오 효과음과 함께 ‘자 이제 현장으로 가겠습니다’라고 말하면 준비해둔 영상으로 넘어간다. 코너를 담당한 PD들과 작가들이 순서를 기다린다.
카메라 뒤엔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이 있다. 코너를 담당하는 작가다. “새벽 근무 가능한 자. 새벽 3시 50분 출근, 8시 퇴근. 주 5일 근무. 일과 뉴스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사람 우대”라는 공지를 보고 왔다. ‘2011년 프로그램 종료까지’라는 계약을 했다. 보수는 회당 12만 원. 2017년 7월부터 반년 단위 계약을 했다. 보수 15만 원으로 올랐다. 이후 1년 업무위임 계약서를 갱신했지만, 보수는 그대로다.
컴퓨터를 배정받고, 고정된 자리에 앉았다. 업무 내용은 코너 아이템 구성과 제작 관련 섭외, 그리고 상기 업무와 관련 필요한 업무. 적합한 아이템을 찾기 위해 다양한 정보를 검색하고 담당 PD에게 전달한다. 정해진 아이템에 대한 원고를 작성하고 방송사 내부 시스템에 등록하고 승인을 받는다. A작가는 영상편집 담당자, 스튜디오 담당자와 소통을 하며 원고가 제대로 반영되는지 확인하고, 다른 방송사 유사 프로그램을 모니터한다.
전날 타사, 자사 뉴스 아이템을 확인하고, 오전 3시 30분 출근해 아이템을 확인하고 선정한다. 오전 4시 10분~30분 1차 컨펌을 받으면 제목과 내용을 정리한다. 2차 컨펌을 받으면 목록을 수정하고 PD와 편집자에게 알린다. 오전 4시 45분에서 5시 50분에 선정된 아이템 원고를 쓴다. 강조할 부분이나 그래픽, 사진 등이 있으면 영상 편집자에게 전한다. 이후 앵커 보조FD에게 최종 출고시간을 알리고, 최종 원고를 인쇄해 넘긴다. 다른 방송사 프로그램 모니터링을 하고 내용을 정리해 송고한다. PD에게 식권을 받아 구내식당에서 아침을 먹는다. 프로그램 개편을 이유로 2020년 6월 계약 해지를 구두로 통보받았다.
△ 방송작가유니온(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가 지난달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1인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 미디어오늘
‘무늬만 프리랜서’ 관행이 깨졌다
지난 3월 13일 중앙노동위원회는 한 방송사에서 일하다 계약이 해지돼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한 방송작가 2명에게 초심 취소 판정을 내렸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가 지난해 이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볼 수 없어 부당해고 여부를 검토할 필요가 없다는 취재로 각하한 사건이다.
중앙노동위원회는 “부당해고임을 인정한다. 이 사건 사용자는 이 사건 근로자들을 원직에 복직시키고, 이 사건 근로자들은 이 방송사라는 조직에 실질적으로 편입되어 근로를 제공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단된다”고 했다. 또 PD로부터 상당한 지휘 감독을 받았으며, 총괄 PD, 담당 PD, 영상편집자, 스튜디오 담당자 등과 유기적으로 결합해 업무를 수행한 것을 확인했다.
“이 사건 근로자들이 수행한 업무는 생방송 코너 제작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하여 다른 근로자들과 유기적으로 함께 결합하여 수행할 필요성이 큰 업무이기 때문에 이 사건 근로자들의 업무만을 따로 떼어 독립된 사업자에게 위탁할 만한 성격의 업무로 보이지 않는다.”
아울러 이들이 원고뿐 아니라 방송 모니터와 모니터링 보고서 등을 작성해 제출했고, 경위서 제출과 특정한 교육 이수와 업무 인수인계까지 하도록 한 점 등을 짚으며 9년간 ‘계속 근로’ 사실임을 인정했다. 그동안 방송계에서 아이템을 고르는 것이 재량이라는 주장에 “단순한 업무를 처리하는 사무보조원이 아니고서는 이러한 재량도 없이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방송은 수많은 사람의 노동이 뭉쳐 만들어진다. 그들은 어떻게 일하고 있을까? 프로그램이 끝날 때 스크롤로 올라오는 수많은 이름을 읽어보자. 이름이 없을 수도 있다. 그중 마음에 드는 이의 이름을 기억해 보자.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떠올려 보자. 그리고 그 노동자의 얼굴을 그려보자.
*시시비비는? <시시비비>는 신문, 방송, 포털, SNS 등 다양한 매체에 대한 각 분야 전문가의 글입니다. 언론 관련 이슈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고 토론할 목적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기명 칼럼으로,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편집자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