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2023)_

한겨레 기자들의 성명사태를 보며

다극화된 권력상황에 대한 종합적 감시가 공정한 비판이다
박석운(민주언론시민연합 이사, 한국진보연대 대표)
등록 2021.02.03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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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미디어오늘)

 

최근 41명의 젊은 한겨레 기자들이 한겨레 국장단에 공식 사과와 재발방지책 마련을 요구하는 성명을 냈다. 성명을 읽던 중 다음 단락을 보고 깜짝 놀랐다.  

 

“최근 불거진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의혹’ 또한 공정한 잣대로 보도되고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심지어 지난 15일자 지면에 실린 ‘김학의 출국금지, 절차 흠결과 실체적 정의 함께 봐야’라는 제목의 사설은 ‘실체적 정의’를 위해 적법한 절차를 지키지 않았던 상황을 옹호하는 논리로 쓰였습니다. 절차적 정의는 결코 훼손될 수 없는 법치주의의 핵심 가치입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라는 인물을 떠나 기본권 침해는 최소한의 적법 절차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는 건 <한겨레>가 지난 30년간 지켜온 가치입니다.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수사로 김 전 차관이 저지른 죗값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점에 대한 분노와 제대로 된 절차에 따라 김 전 차관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전혀 상충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국 사태 때부터 지적된 편들기 식 보도가 이런 사설과 보도를 낳은 본질입니다. …(생략)… 국장단의 어설픈 정권 감싸기와 모호한 판단으로 ‘좋은 저널리즘’의 가치가 훼손되고 있습니다. …(생략)… 특정 정파·좌우 진영 가릴 것 없이 공정한 잣대로 보도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것인지 구체적인 대책 마련도 함께 요구합니다.”

 

문제의 사설을 읽었던 기억이 있었던지라, 뭐가 문제지? 하며 다시 찾아 읽었다. “정당한 필요성이 없는데도 절차를 어겨가며 김 전 차관을 출국금지 시켰다면 심각한 인권침해 문제가 된다. 하지만 당시 긴급히 출국을 막아야 할 정당한 사유가 있었고 그 과정에서 절차적 문제가 있었다면 이는 달리 볼 여지가 있다. …(생략)… 성접대 혐의는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받지 않았는데, 이는 앞서 검찰이 두차례나 무혐의 처분하면서 시간을 흘려보냈기 때문이었다. 당시 출국을 막지 못했다면 검찰은 세번이나 김 전 차관의 단죄를 방기한 꼴이 됐을 것이다. 그럼에도 절차 위반은 따져볼 문제다. …(생략)… 당시 김 전 차관은 탑승 게이트에서 대기 중이었다. 해외 도피 일보직전의 긴박한 상황에서 절차상 요건을 모두 갖춰 출국금지를 하는 게 어려웠다면 이는 제도나 관행에 허점이 있다는 뜻도 된다. …(생략)… 결국 김 전 차관 출국금지의 절차상 문제는 조처의 정당성, 긴급성, 흠결의 정도 등을 균형 있게 따져 판단해야 한다. 명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김 전 차관에게 두 차례나 면죄부를 줬던 검사들에게는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으면서, 적극적으로 정의를 실현하려 한 검사만 과도하게 비판하는 것은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한겨레 내부의 성찰과 토론

 

이런 정도의 사설 내용이 어떻게 “실체적 정의를 위해 적법한 절차를 지키지 않았던 상황을 옹호하는 논리로 쓰였다”며 집단적 반발의 대상이 되었을까? 심히 혼란스러웠다. 만일 한겨레 사설에서 이와 반대되는 논지로 주장했더라면, 바로 그런 주장이 자칫 진실과 정의에 물타기 하는 보도태도라고 심각한 비판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마침 이어서 ‘젊은 기자들의 성찰을 바랍니다’라는 글이 한겨레 내부 게시판에 올라왔다.  

 

“모든 사람과 모든 범죄에 대해 정당한 절차를 밟아서 수사해야 한다는 ‘절차적 정의’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는 실체적 정의’도 중요한 것입니다 …(생략)… 누가 김 전 차관에 대한 수사, 기소를 방해해서 술접대와 성폭력 혐의에 대한 공소시효가 만료되게 만들었을까요? 현장 기자들은 이런 점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취재하고 보고해 줘야 합니다 …(생략)… <한겨레>는 언제나 개별적인 작은 사실들보다는 더 큰 진실을 추구해왔습니다. 개별적으로는 사실이지만, 진실에 부합하지 않는 사실도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생략)… 오랫동안 검찰과 법원은 지배 세력의 도구로 일하며, 오히려 국민의 인권과 정의를 파괴해왔습니다. 최근 들어서는 스스로가 지배 세력이 돼서 노골적으로 자신들의 권력과 이익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젊은 기자들은 법조의 이런 역사와 위험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취재, 보도해야 합니다.”

 

다소 장황하게 인용한 셈인데 우여곡절 끝에 한겨레 내부에서 종합적인 성찰과 소통, 올바른 저널리즘 확립을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어 다행스러웠다. 더욱 내실 있게 시대에 걸맞은 저널리즘의 실현을 위한 성찰과 토론이 진행되기를 기대한다.

 

촛불항쟁 이후 권력구도 재구조화, 언론권력은?

 

성역 없는 비판, 진영논리를 넘어서는 공정한 비판, 개별적인 작은 사실보다는 더 큰 진실. 이런 저널리즘의 기본 가치에 모두 동의하지만, 정작 구체적 사안에 대해서는 견해가 다를 수 있다. 왜 그럴까? ‘촛불항쟁’의 승리 이후 ‘촛불정부’를 자처하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벌써 4년 가까이 되었지만, 많은 서민은 한국 사회가 ‘기회가 평등하고 절차는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그런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는 실감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막상 성역 없는 감시와 비판이 되는 권력도 다극화되고 있다. 이른바 권력지형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력, 재벌권력, 언론권력, 검찰·사법권력, 예산·모피아권력 등이 촛불항쟁 이후 권력주도권을 놓고 중층적으로 각축하는 과정에서 권력구도가 재구조화되고 있는 상황으로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아직도 막강한 권력자원을 유지하고 있는 재벌과 외세권력이 적폐권력 ‘조중동’ 및 야당권력과 야합하면서, 일부 잔존한 적폐 검찰·사법권력이 칼춤을 추고 있는 형국이 아닌가? 주류 정치권력이 된 청와대 및 집권여당이 관료권력과 야합하면서 기회주의적 태도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 사이 촛불 과제인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은 가물가물해지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권력집단끼리 주야장천 쌈박질하는 모습을 마치 중계방송하듯 확대재생산하고 있는 저열한 수준의 언론. 그 사이에 기득권 담론을 앞세운 기득권 구조는 더욱 공고해지는 반면, 민초들 삶의 구체적 고통과 이를 극복하는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가는 문제는 실종되어 버린 것 아닌가?

 

특히 바이러스는 평등하지만 코로나19 감염병 피해는 비정규직과 취약계층 등 주변부 사회계층에게 집중되고 있어도, 으레 그러느니 또는 누군가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 과정에서 국제적으로 최고 수준에 이르고 있는 자산불평등, 소득불평등, 교육불평등, 직업불평등 등 총체적 사회불평등 상황이 심화·확대되어 폭발 직전 상황에 달하고 있는 것 아닌가?  

 

언론은 권력이 아닌 민초 편에 서야 한다

 

권력에 대한 성역 없는 비판이 옳다. 다만 그 권력은 집권세력과 정치권력만이 아니라 다극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 구조적 권력상황과 기득권 집단의 동향에 대한 종합적 감시와 비판이 돼야 한다. 어느 진영에 서야 하는가? 집권여당 세력이나 야당 세력 등에 대한 유‧불리는 당연히 넘어서야 한다. 여러 기득권 집단 중 어느 한쪽 입장에 서는 대신 약자, 소수자, 그리고 성실하게 일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민초들의 편에 서야 한다. 이렇게 되어야 ‘진영논리를 넘어서는 공정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덧붙여 한겨레 법조기자들이 앞장서서 현존 법조기자실의 현저한 불공정과 과도한 기득권 구조를 혁파하는데 앞장서야 하지 않느냐는 당위적 요청을 하고자 한다. 적폐 수준의 기득권 구조를 방치하면서 공정성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기득권 구조의 기자실에 안주하고 있는 한 ‘자신들이 검찰·사법권력의 편에 서 있지 않다’, ‘선택적 수사와 선택적 수사기피를 암묵적으로 두호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민초들을 위한 공정한 담론 형성의 편에 서 있다’는 입증책임은 그런 기자실에 안주하고 있는 구성원들이 질 수밖에 없다는 구조적 상황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한겨레 법조기자팀의 분투를 기대한다.    

 

*언론포커스는?
<언론포커스>는 언론계 이슈에 대한 현실진단과 언론 정책의 방향성을 모색해보는 글입니다. 언론 관련 이슈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고 토론할 목적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기명 칼럼으로,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