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2023)_

‘브랜드 뉴스’ 컴백과 ‘진짜 뉴스’에 대한 갈망

저널리즘의 미래, 고양이와 경쟁해선 답이 없다
이정환 (미디어오늘 대표)
등록 2020.09.04 12:39
조회 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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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게티이미지)

버즈피드 편집장 벤 스미스가 뉴욕시에서 버즈피드 뉴스 신문의 무료 사본을 배포하고 있다.

 

“우리는 위대한 고양이 사이트입니다.” 버즈피드(BuzzFeed) 편집장 벤 스미스가 실제로 한 말이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저널리즘에 대한 투자와 고양이 주도(cat driven)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는 충돌하지 않습니다.” 버즈피드는 한때 세계 최대 규모 트래픽을 기록한 인터넷신문이다. 고양이 콘텐츠로 트래픽을 쓸어 담아 돈을 벌더니 실력 있는 기자들을 스카우트해서 심층취재와 탐사보도를 선보이기도 했다.

 

6년 전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에는 “우리가 버즈피드를 우습게 취급해도 되는가”라는 대목이 등장한다. 천하의 뉴욕타임스가 경쟁자로 생각한 매체가 바로 버즈피드였다. “우리는 여전히 최고의 저널리즘 상품을 만들고 있지만, 우리 경쟁자들이 잘하는 것은 공유와 확산이다. 독자들의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디지털카메라와 경쟁하다 사라진 코닥과 같은 꼴이 될 것이다.”

 

‘위대한 고양이 사이트’의 몰락 

 

버즈피드가 한창 잘 나가던 시절, 2012년부터 2014년까지 2년 동안 버즈피드가 만든 고양이 콘텐츠는 1만 2,200건에 이르렀다. 같은 기간 정치 기사는 1만 1,700건이었다.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역시 벤 스미스의 이야기다. 버즈피드는 단순히 고양이 장사만 한 게 아니라 독자 데이터 분석과 쉐어러블(sharable) 디지털 스토리텔링 전략으로 한때 페이스북 세상의 타임라인을 지배했다.

 

모든 언론사가 버즈피드를 부러워하고 버즈피드를 닮으려 했다. 버즈피드 전성기에 방문자 수는 월 2억 명, 페이지뷰는 70억 건에 육박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피키캐스트가 뜨고 위키트리와 인사이트 같은 유사 뉴스 사이트가 범람했던 것도 이때와 맞물린다. 뉴스와 뉴스가 아닌 것의 경계가 무너지고, 카드뉴스와 짤방과 움짤로 범벅된 스내커블(snackable) 콘텐츠가 저널리즘의 미래인 것처럼 이야기되던 시대도 있다.

 

이 이야기에는 반전이 있다. 벤 스미스는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을 단독 인터뷰할 정도로 잘 나가던 기자였지만 버즈피드 와서는 사고도 많이 쳤다. 2017년 1월, 이른바 트럼프 X파일 문건을 보도했으나 사실 확인이 부족했다는 반격에 부딪혔다. 버즈피드와 함께 문건을 보도한 CNN에서는 3명의 기자가 회사를 떠나야 했다. 벤 스미스는 2017년 7월 글로벌에디터스네트워크 서밋에서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우리가 증명되지 않은 모호한 사건을 다룰 능력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트럼프-러시아 커넥션과 같은 트럼프에 대한 거의 모든 부정적인 뉴스들, 음모

론에 대한 수요와 호기심은 상당히 높습니다. 증거가 불충분한 이야기에 큰 수요가 있는 만큼, 기자들은 트래픽의 유혹에서 자유롭기 힘듭니다. 트래픽은 저널리스트에게 큰 유혹입니다. 여태까지 버즈피드는 그 유혹에 저항하기 위해 열심히 싸웠다고 생각합니다.”

 

트래픽의 유혹 때문에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기사로 내보냈다는 사실을 시인한 것이다. 저널리즘 싱크탱크 포인터연구소의 켈리 맥브라이드는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전문기자들은 그들의 책임을 지고 정보를 검증하고, 맥락을 더하고, 청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청중들에게 그것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그 책임을 상당히 심각하게 받아들이죠. 그런데 버즈피드는 그런 시도를 전혀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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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게티이미지

 

뉴욕타임스 독점 논란과 브랜드 뉴스의 컴백 

 

그랬던 벤 스미스가 올해 1월 버즈피드를 떠나 뉴욕타임스로 옮겨간 것은 의미심장한 사건이다. 뉴욕타임스가 한때 그렇게 부러워한 버즈피드, 트래픽을 쓸어 담는다던 벤 스미스가 뉴욕타임스의 품에 안긴 것이다. 벤 스미스가 뉴욕타임스에 옮겨가 쓴 첫 칼럼 제목이 “뉴욕타임스의 성공이 저널리즘에는 안 좋은 소식일 수도 있다(Why the Success of The New York Times May Be Bad News for Journalism)”였다.

 

공교롭게도 고커(Gawker), 리코드(Recode), 쿼츠(Quartz), 그리고 버즈피드까지 한때 잘 나간 미디어 스타트업 편집장들이 지금은 모두 뉴욕타임즈에 와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미 2012년부터 구독 매출이 광고 매출을 뛰어넘었고 올 상반기 디지털 매출이 오프라인 매출을 따라잡았다. 구독자 수가 651만 명, 이런 추세라면 1,000만 명 목표도 달성 가능할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주가는 2014년 이후 세 배나 뛰었고 편집국 인원만 1,700명이 넘는다.

 

벤 스미스가 지적한 것처럼 이젠 오히려 뉴욕타임스의 독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다. 악시오스 창업자 짐 반데하이는 이렇게 경고했다. “뉴욕타임스는 독점기업이 될 것이다. 틈새시장까지 장악해서 결국 아무도 살아남지 못하게 될 것이다.” 바이스 전 부사장인 조시 타이런기엘은 “뉴욕타임스가 파놓은 해자가 너무 넓어서 아무도 건너갈 수 없다”고 탄식하기도 했다. 단 하나의 신문을 선택하라면 누구나 뉴욕타임스를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고양이와의 전쟁에서 저널리즘이 승리한 것일까? 그보다는 손재권 더밀크 대표가 지적한 것처럼‘브랜드 뉴스의 컴백’이라고 해석하는 게 맞을 듯하다. 여전히 누구나 고양이를 좋아하지만 진짜 뉴스에 대한 갈망이 살아 있다는 이야기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이 강타하고 인포데믹(허위정보의 범람)이 확산하면서 믿을 만한 정보소스로써 전통 언론에 대한 소비와 공유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올해 초 출간된 국제뉴스미디어총회(INMA)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의 중견(mid-sized) 언론사 뉴스 트래픽을 분석했더니 방문자가 1월 233만 명에서 3월 들어 509만 명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이른바 ‘코로나 범프(bump)’라는 현상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4월 이후 다시 방문자가 줄어드는 추세지만 상당수가 충성 독자로 남고 일부는 유료 구독을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혁신의 주문, 빠른 실패를 반복하라 

 

미디어오늘은 <저널리즘의 미래> 컨퍼런스를 6년째 진행하고 있다. 2015년 첫 컨퍼런스 때만 해도 대부분 발표가 ‘기승전 버즈피드’로 이어졌지만, 올해 8월 27일부터 28일까지 열린 올해 컨퍼런스에서는 ‘기승전 뉴욕타임스’로 이어졌다. 스타일의 혁신이 아니라 질적 혁신, 저널리즘의 본질에 집중하되 관계와 연결을 강화하는 것이 진짜 혁신이라는 문제의식이 확산된 결과다.

 

한국의 많은 언론인이 “한국에서 유료화는 안 돼”라고 말한다. “우린 안 될 거야.” 한국의 신문사들은 여전히 광고와 광고연계 매출이 80%를 웃돈다. 독자 없는 언론의 시대, “누가 뉴스에 돈을 내겠어?”라고 묻는 기자들도 많이 만나봤다. 혁신 담론이 늘어날수록 무력감과 패배감이 한국 언론을 짓누르고 있다. 버즈피드고 뉴욕타임스고 모두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 관성과 관행을 넘어설 동력과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브랜드 뉴스의 컴백이 가능할 거라고 믿는다. 우리는 스내커블 콘텐츠의 퇴조와 브랜드 뉴스의 컴백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도달률과 공유가 최고의 가치였던 시대에서 소셜 임팩트가 경쟁력이 되는 시대로 진화했다. 디지털 퍼스트를 넘어 서브스크립션(subscription 구독) 퍼스트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독자들에게 영합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속 가능한 저널리즘을 지원하는 독자들과 강한 연대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돌아보면 6년 전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에 이미 답이 있었다. 뉴욕타임스는 ‘반짝거리는 새로운 것들(shiny new things)’을 쫓지 않았다. 조직문화와 우선순위를 바꾸고 철저하게 퀄리티에 투자했다. 뉴욕타임스는 버즈피드를 벤치마킹하면서도 퀄리티 저널리즘을 목표로 설정했다. 도전과 실험을 주저하지 말 것, 빠른 실패를 반복하면서 시행착오의 경험을 축적할 것을 주문했고 혁신의 동력을 불어넣었다.

 

당시 보고서의 결론은 놀랍게도 “비즈니스와 뉴스룸은 함께 가야 한다(Business and the newsroom need to work together)”는 것이었다. 나는 언론사들이 먹고 사는 문제에 좀 더 솔직하고 투명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기적으로 저널리즘 비즈니스는 광고와 독립하고 구독경제 모델로 가야 한다고 믿는다.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습관과 문화를 바꿔야 하는 문제지만 건강한 비즈니스 모델 없이는 건강한 저널리즘도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2014년 한국을 방문한 텍사스트리뷴 발행인 팀 그릭스가 했던 말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앞으로 저널리즘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비즈니스와 공생관계를 이뤄야 한다. 언론의 가치사슬에서 보면 항상 독자와 스폰서는 서로 다른 끝 쪽에 서 있고 미디어는 그 중간 지점에 있다. 탄탄한 수익구조가 뒷받침돼야 기업이나 다른 외부의 압력에 의해서 저널리즘의 가치가 훼손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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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미디어오늘

 

위기의 저널리즘, 본질적 혁신을 위한 제안

 

나는 8월 28일 <저널리즘의 미래> 컨퍼런스 클로징 키노트에서 정신과 의사이자 작가인 프란츠 파농의 말을 소개했다. “다리의 건설이 그 다리를 만드는 사람들의 의식을 풍부하게 해주지 못한다면 그 다리는 건설되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헤엄쳐서 건너거나 보트로 건너는 게 낫다.” 기자들의 자부심과 자긍심이 필요할 때다. 세상을 바꾸려고 한다면 먼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익숙하지만 낡은 관행에 선을 긋고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야 한다.

 

이번 컨퍼런스에서 최형욱 라이프스퀘어 대표는 “실패를 안전하게 경험하고 공유하게 해야 한다”면서 “조직내부 10%의 변화지향 계층에게 내적 동기를 지원하라”고 조언했다.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 출신의 정혜승 작가는 “좋은 언론은 시민들을 교육한다”고 강조했다. “언론의 기능은 싸움이 아니라 토론”이고 “여전히 우리에게는 더 많은 토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여전히 저널리즘이 세상을 바꾸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정현선 경인교육대학교 교수는 “맥락을 파고드는 기자의 글은 신뢰를 준다”며 “저널리스트들의 성찰과 토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KBS 저널리즘토크쇼J 김양순 기자는 “욕하는 것 말고 일단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당연히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무엇을, 왜 틀려서 수정하는지 알려주자”고 제안했다. “기사생산 과정을 파헤쳐 사실 너머의 진실을 드러내야 한다”는 이야기다.

 

마지막으로 워싱턴포스트 퍼블릭 에디터 마가렛 설리번의 강연 가운데 일부를 소개하고자 한다. 저널리즘 혁신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일을 제대로 한다면 독자들이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최소한 세 가지를 다르게, 그리고 더 잘 해야 한다. 첫째 우리는 더 회의적이어야 하고, 둘째 우리의 실수를 포함한 우리의 일에 더 투명성을 부여해야 하고, 셋째 감시견으로서 더 많은 맥락과 신뢰성을 부여해야 한다.”


1  손재권. 팬데믹, 미디어의 본질을 묻고 근간을 흔들다. 한국언론진흥재단 2020 해외미디어동향 여름호.

https://www.deep.bi/blog/industry-report-6-steps-publishers-should-take-during-the-covid-19-pandemic-to-drive-long-term-revenue-growth

3  https://plus.hankyung.com/apps/newsinside.view?aid=201410016709A&category=AA006&sn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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