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2023)_

-방송 독립성과 미디어 공공성 구현을 저해하는 법제도적 모순과 정책적 불비의 해소  국회와 정부와 방송통신위원회와 시민사회, 모두의 의지와 실천이 필요하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정수영 (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
등록 2020.04.20 18:21
조회 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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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이 든다.”

 

작년 4월부터 약 1년여 동안 방송통신위원회 중장기방송제도개선추진반 간사로 참여했던 KISDI 방송미디어연구실장이 추진반 활동 종료 및 최종 보고서 발표 이후의 소회를 담아 집필한 전문가 칼럼의 마지막 문장이다. 변화와 혁신을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미의 절박함과 자괴감을 담고 있다.

 

방통위 추진반이 방송규제체계 개선 방안을 모색하고 미래지향적인 방송·통신제도를 설계할 목적으로 <중장기 방송제도개선을 위한 정책제안서>를 발표한 것은 지난 3월이었다. 최종 보고서 발표 이전에 두 차례의 공개·비공개 토론회를 거치면서 적지 않은 이론(異論)과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비판의 중심에 PSB라는 개념과 이를 분류하는 모호한 기준 및 범주의 영역이 있었다. 한국 방송이 걸어 온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맥락에 대한 분석과 이해가 결여된 것이며 시청자 시민의 인식과 태도와도 크게 상치된다는 것이 비판의 주된 이유였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추진반의 문제의식과 현실 진단은 주목할 만하다.  

 

20년 전 만들어진 현행 방송법은 이미 그 수명을 다했다는 것이다. 방송법을 비롯하여 방송과 미디어를 규율하고 있는 각종 제도와 정책들이 방송의 독립성과 공공성 확보를 추동하기는커녕, 공공성 복원과 이용자 권익 강화를 위해 요구되는 변화와 혁신의 걸림돌로 작동하고 있다는 현실 진단이다. 

 

 IPTV, 종편·보도PP 등 새로운 매체와 채널에 더해 유튜브와 넷플릭스 등 글로벌 플랫폼이 가세한 치열한 경쟁 구도 속에서 양대 공영방송 KBS와 MBC 마저 큰 폭의 적자에 허덕이며 비상경영에 돌입한 지 오래다. “돌아오라 마봉춘 고봉순”을 외치며 지지와 연대를 보내준 시청자와 시민사회로부터 “언제까지 더 기다려줘야 하는가?”라는 한탄과 질책의 목소리마저 들려온다. 

 

물론, 방송사 스스로의 자성과 쇄신을 위한 각고의 노력이 선행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각고의 노력’만으로 넘어서기에는 현행 법제도적 모순과 불비의 벽이 높고 단단하다는 것도 사실이다. 작금의 위기는 비효율과 무책임 등 방송사 내적 요인에서 기인하는 것을 넘어 (의도적) 무관심이나 무대책으로 일관해 온 정책적 제도적 불비 등 외적 요인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정치적 독립과 취재 보도 제작 현장의 자율성 침해라는 질곡을 겪으면서 미디어 환경 변화에 대응하고 혁신에 나서야 할 중차대한 시간과 기회마저 빼앗겨 버린 결과이기도 하다.

 

방송의 독립과 미디어 공공성을 저해하는 정책적 제도적 모순과 불비를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가? 공영방송의 법적 지위를 규정하고 이에 걸맞은 공적 책무를 명확히 부여해야 한다. 정치적 경제적 독립성을 확보하고 시민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이사회 구성 및 사장 선임 방식 등 거버넌스를 개선하고 확장해야 한다. 시청률 경쟁에 휘둘리지 않는 건전한 재원 구조를 마련하기 위해 수신료제도와 광고제도 등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개선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이 외에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개혁과제들은 우선순위를 정해야 할 만큼 산적해 있다. 그리고 총선에서 정부 여당이 180석이라는 의석을 획득하면서 그동안 미루어 왔던 개혁과제들이 국회 입법을 통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충만하다. 하지만 이들 과제는 전혀 새롭지 않다. 20대 총선 당시 더불어 민주당의 공약이기도 했다. 미디어오늘 보도(2020.3.29.)에 따르면, 당시 더불어 민주당이 제시한 22개 언론·미디어 관련 공약 중에 지금까지 완전히 이행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더불어 민주당은 2017년 제19대 대선에서도 언론 자유와 독립 회복을 약속한 바 있다. 공영방송 KBS와 MBC의 지배구조 개선 추진, 종편 특혜 회수 및 비대칭규제 해소, 시청자가 참여하는 ‘수신료위원회(가칭)’ 설치 등이 대표적이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과 100대 국정과제에 따르면,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방송편성 규제 관련 제도 개선, 지역방송 활성화, 방송광고판매 및 협찬제도의 합리화와 투명성 제고 등 언론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회복하고 미디어시장의 선순환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정책 목표는 2019년에 이미 달성되었어야 했다. 

 

다행히도 민주당에서 시민사회단체의 요구를 받아들여 미디어 정책을 논의하고 수립하기 위한 ‘미디어혁신기구’의 설치 운영을 검토 중이고, 21대 국회 상임위에서 전담부처와 법제 일원화를 위한 사회적 논의 기구 구성을 제안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하지만 180석의 의석과 몇 명의 ‘선한 의지’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자명하다. 기구 설치에서 개혁과제 해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녹록치 않을 것이다. 언론 개혁과 미디어 공공성 구현이라는 정책목표에 동의하더라도 각론으로 들어가면 매우 다양한 이해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국회와 정부와 방송통신위원회의 의지와 노력에 더해 시민사회가 더욱더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참여해야 하는 이유다. 선거 공약이나 정부 행정당국과 국회의 정책 의지 혹은 이행 능력에 대한 오래된 불신과 냉소, 학습된 무기력이 이번에야 말로 일소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이 머리와 가슴을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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