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2023)_

-진영 논리에 감염된 언론을 어찌할 것인가

신종 감염증 시대의 정치 중독증
박영흠(협성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학과 초빙교수)
등록 2020.03.18 11:05
조회 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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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SBS드라마 '스토브리그'> 동영상 갈무리)

 

선을 넘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를 대하는 보수 언론의 행태 얘기다. 나라 전체가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는데 이들은 문재인 정권과 싸우고 있다. 정부 당국이 방역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 언론의 임무라지만,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독설과 저주를 퍼부어 시민들의 공포를 자극하고 방역 당국의 힘을 빼는 건 감시도 아니고 비판도 아니다. 보수 언론은 정녕 코로나19로 나라가 망하기를 바라는가. 

 

“이게 다 문재인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무섭게 ‘통제 불능’, ‘둑이 터졌다’, ‘방역 참사’ 등 과장된 언어로 두려움과 불안을 자극하는 ‘공포 마케팅’에 앞장선 보수 언론이었다. 물론 이건 보수 언론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주목을 끌기 위한 선정적 보도는 상업주의 언론에게 버리고 싶어도 버릴 수 없는 유혹이니까.

 

문제는 보수 언론이 과장된 보도를 통해 코로나 사태를 정치적 사안으로 탈바꿈시키고 정권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부추긴다는 데 있다. 보수 언론의 눈에는 모든 것이 실패이고 모든 문제는 정부의 잘못으로 환원된다. 이들에게 코로나 확산은 오로지 중국의 눈치를 보는 문재인 정권이 중국에서 오는 외국인의 입국을 금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재앙이다. 바이러스의 전파력이나 방역의 현실적 한계 따위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이내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 최고 숙주’이며 ‘수퍼 전파자’로 규정된다. 

 

신종 감염증 확산이라는 의료 문제가 별다른 의학적·논리적 근거도 없이 정권의 문제로 둔갑하는 놀라운 마법의 배경에는 보수 언론의 진영 논리가 있다. 한국 언론의 가장 심각하고 가장 고질적인 병폐는 다름 아닌 정파성이다. 언론은 특정 정치세력과 유착되어 이해득실을 함께 하는 공생관계를 맺고 있다.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파가 집권하면 정권에 협조하는 순한 양이 되지만, 반대하는 정파가 집권하면 하루아침에 정권을 물고 뜯는 하이에나가 되는 것이 한국의 주류 언론이다. 

 

보수 언론의 정파성은 이미 ‘선을 넘는’ 수준까지 와버렸다. 언론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금도는 무너졌다. 일본과의 외교 마찰이 있을 때도,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위한 회담이 진행될 때도 보수 언론은 공동체의 안위와 미래는 안중에도 없이 오로지 자신들의 정치적 득실에만 집착했다. 
 
코로나19 국면에서도 보수 언론의 관심사는 자신들의 세력이 총선에서 승리하고 문재인 정권이 붕괴되는 데 있을 뿐이다. 국민의 생명이나 사회 공동체의 안전에는 관심이 없다. 이 판국에 탄핵을 거론하고 ‘차이나 게이트’와 같은 황당한 음모론에 답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보수 언론을 보며, 세상 만물이 다 정치로 보이고 무슨 일이든 정치의 프리즘으로만 해석하는 ‘정치 중독증’의 무서움을 새삼 느낀다.

 

함께 진흙탕에 들어갈 것인가, 선을 지킬 것인가 
 
문제는 언론을 손가락질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수 언론이 정치 중독 바이러스에 감염된 원인은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독자들의 영향이 크다. 보수 언론의 타깃 수용자들이 진영 논리에 매몰되어 모든 사안을 문재인 정권의 잘못으로 덮어씌우기를 바라기 때문에 언론도 호응하는 것이다. 탈진실과 포퓰리즘의 시대에 정파적 언론을 만드는 주체는 정파적 시민들이다. 먼저 시민이 바뀌어야 한다. 시민들이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언론도 진영 논리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와 진보를 지향하는 세력이나 시민들은 과연 진영 논리로부터 자유로운가. 보수적 진영 논리의 공격에 진보적 진영 논리로 대항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중국인에 대한 혐오를 대구와 신천지에 대한 혐오로, 모든 면에서 정권이 실패했다는 논리를 정권이 아무 오류가 없다고 무조건 감싸는 논리로 되갚으려 한다. “코로나 사태는 대구 사태이자 신천지 사태”라 말하며 함께 진흙탕에 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진영 논리에 똑같은 진영 논리로 맞서는 전략은 바람직하지도, 현명하지도 않다. 그것은 거울에 반사된 것처럼 좌우만 다를 뿐 또 다른 정치 중독증에 불과하다. 민주주의 정치를 공적 가치와 객관적 사실을 다투는 공론장이 아니라 박제된 이념과 이분법적 혐오만 넘쳐나는 검투장으로 만드는 퇴행이다. ‘공략하지 말고 낙후시키라’고 했다. 먼저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정치 중독증에 걸린 상대를 낡고 뒤떨어진 세력으로 만들어야 한다. 
 
한 명이 선을 넘었다고 뒤이어 온 사람도 선을 지키지 않는다면 이내 선의 존재 의미는 사라져버린다. 너무 자주 넘나들다 보니 이제 선이 흐릿해져 어디가 선인지 알아보기조차 어려운 시절이다. 우리가 지켜야 했던 선이 어디에 있고 선을 지키는 의미가 무엇인지, 누군가는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다시 ‘선’으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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