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2023)_
미디어 체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급하다
정연우(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
등록 2019.02.28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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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방송법 논의의 핵심 쟁점은 정치적 독립이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에 맞서 언론노조를 중심으로 방송인들이 치열하게 싸우면서 사회적 관심이 커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났지만 2012년 국회에서 방송 공정성 특별위원회가 구성되고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어떻게 법제화할 것인가를 놓고 여야가 논쟁을 벌였다. 현재에도 박홍근 의원 등 이 발의한 법안을 비롯하여 여러 개의 방송법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되어있다. 또 방송통신위원회도 방송의 미래에 대한 큰 구상을 하겠다며 방송미래발전위원회를 출범하여 운영하고 정책 제안서를 국회에 제출하였다. 이러한 논의들은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내적인 자율성을 높여서 정치적 독립을 보장하는데 초점이 있다. 그리고 핵심은 공영방송 이사회의 구성 방법과 사장 선임이다. 

 

미디어환경은 급변하고 있는데 공영방송은?

그러는 사이 방송을 둘러싼 환경은 천지개벽이라 할 만큼 달라졌다.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은 방송공정성을 실현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건이지만 오히려 한가하게 느껴질 정도다. 글로벌 미디어자본인 넷플릭스는 엄청난 속도로 시장을 잠식해오고 있으며 단순한 플랫폼이 아니라 양질의 콘텐츠 제작으로 방송생태계를 흔들어놓는다. 젊은 시청자들은 전통적인 TV를 떠나 모바일로 속속 옮겨가고 시청 행태와 취향도 완전히 달라졌다. 방송인지조차 모호한 미디어들이 속속 방송을 대체해나가고 있으며 공영방송 등 지상파는 생존마저 위태로울 지경이다. 거대 통신자본은 케이블 TV와 합병을 추진하며 몸집을 더욱 불려나가고 지상파 3사의 OTT도 SK브로드밴드에 통합된다. 지상파 방송은 플랫폼 경쟁력을 잃고 대자본 플랫폼의 콘텐츠 제공업자로 전락할 위기다. 시장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면서 그나마 온전히 지켜내기 버겁다. 넷플릭스 등 글로벌 미디어자본 뿐만 아니라 막대한 제작비를 쏟아 부으며 지상파 콘텐츠를 위협하는 제작자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재원마련은 절실하나 지상파방송의 오랜 숙원인 중간광고허용도 여전히 잘 풀리지 않고 있다. 수신료인상은 아예 꺼내기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지상파와 종편은 이미 플랫폼의 차별성은 사라졌는데도 비대칭적 규제는 그대로 남아있다. 이러한 자본들의 공습으로 지상파방송은 날로 상업화의 회오리에 내몰린다. 조직개편과 프로그램 개편은 수익성을 높이기 위한 방향을 향한다. 제작부서와 사업부서, 광고국이 유기적으로 협력하고 제작 아이템 기획과 편성에서도 수익성이 더욱 중요하게 고려된다. 시장의 압력으로 공공성은 점점 설자리가 좁아지는 조짐이 뚜렷하다. 

 

현재의 법체계와 제도로는 이런 미디어 세상의 근본적인 변화를 담아내지 못한다. 일부 개정을 통해 땜질을 해봐야 문제해결은커녕 누그러뜨리기도 어렵다. 이제 본질적인 접근하여 방송의 철학과 가치부터 재정립해야 한다. 그에 따라 미디어 개념과 범주를 새롭게  분류하고 영역별 역할과 책무를 규정하여  그에 상응하는  규제체계와 방식을 정비해야 할 것이다. 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공적 책무를  부여하면서 지역성과 다양성을 구현하는 동시에 글로벌 자본에 대한 규제를 통해 문화와 가치의 정체성과 주권을 지켜낼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의식과 삶의 의식을 담아내고 만들어가는 그릇인 미디어 사업자에게 어떻게 사회적 책임을 부과할 것인가도 논의해야 할 것이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공영방송이 추구하고 수행하는 공적 책무와 역할도 미디어환경에 맞게 진화할 필요가 있다. 시장에서 공급되지 않지만 사회적으로 필요한 콘텐츠를 제공하고  시대와 사회가 부여한 가치를  구현할 수 있도록 제도와 체제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공적 책무를 이행하는데 필요한 지상파방송의 재원을 조달하는 방식도 새롭게 마련되어야 한다. 광고주들이 광고를 떠나고 있으므로 방송의 중요한 재원인 기존 광고시장은  한계에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기술의 변화는 빠르고 자본의 회오리가 거세므로 법체계의 가닥을 잡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엄두를 내기조차 막연하고 버거울 정도로  복잡하다. 사업자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논의해야 할 쟁점들도 실타래처럼 복잡하다. 미디어관련 쟁점 하나라도 합의를 이끌어내서 법제화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미디어환경은 무너지고 회복할 수 없는 상태로 진전될 수도 있다. 

 

20여 년 전  방송개혁위원회를 만들어 사회적 논의를 한 성과가 현 방송법 체제의 골간이다.  당시와는 미디어 세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조금씩 보완하는 것으로는 도저히 현실을 담아낼 수도 규율할 수도 없다. 공영방송의 지배구조개선에만 매달리고 있을 것이 아니라 담대한 접근이 필요한 때다. 새로운 틀을 만들어 창의적이고 공공성이 높으면서 다양성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민주적 공론장을 형성하는 미디어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사회가 함께 참여하여 논의하고 숙의하면 큰 틀의 합의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국민적 논의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충분히 이루어졌다. 구체적인 제안과 실행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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