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2023)_

KBS·MBC 정상화 이후 언론은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가

정권보다 무서운 자본 권력
김서중(민언련 정책위원장,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등록 2018.01.1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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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가 권력에 부역했던 김장겸 체제를 종식하고, 최승호 사장 체제를 출범시켰다. 최승호 사장 체제는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위해 투쟁했던 MBC 구성원들의 승리라는 의미가 있다. 공개적인 절차를 통해 외부의 압력 없이 사장을 선출했다는 기념비적인 선례도 남겼다. 비록 구체제가 아직 불식되지 않은 터라 몇 건의 보도 오류가 있었지만, 공영방송 정상화 투쟁과정에서 공영방송에 애증을 갖고 있는 시민들의 마음을 확인했던 구성원들의 노력으로 곧 회복되리라 믿는다. 그리고 KBS도 곧 정상화가 될 것이다.

 

‘자본’의 압력은 ‘은밀’하다

 

그럼 이제 더 이상 언론의 독립성과 자율성의 문제는 없을까? 당연히 아니다. 정치권력보다 무서운 자본이 있기 때문이다. 자본의 부당한 압력이 사라져야 공영방송이나 언론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 언론인들이 정치권력의 탄압에는 저항할 가능성이 높다. 정치권력의 탄압은 일부 부역자들에게는 이득이 될지 모르지만, 다수의 구성원들에게는 주는 것 없이 개입과 간섭만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본의 간섭은 저항하기 어렵다. 자본에 저항하면 전체 구성원의 생존이 위협받을 수 있고, 역으로 자본에 순응하면 실제 물질적인 이득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광고 재원의 비중이 높은 공영방송 역시 자본의 간섭이 영향을 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일반인들이 눈치챌 정도로 가시적인 정권의 탄압과 달리 자본의 압력은 은밀하다. 자본의 압력에 언론사주와 구성원들이 부응하기 때문이다. 삼성의 비자금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 건을 압력에 굴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기사화했던 한겨레나 경향 같은 언론사도 있지만, 대부분의 언론사들은 자본에 취약하다. 물론 자본의 압력에 굴복하는 건 옳지 않다. 하지만 당시 한겨레나 경향이 삼성 광고 부재로 겪었던 고난의 시기를 간접 경험한 다른 언론사가 자본의 압력을 무시하기는 쉽지는 않을 것이다. 자본의 부당한 압력이 행사되는 과정에는 내부 공조나 순응이 있고, 그래서 은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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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인들이 눈치챌 정도로 가시적인 정권의 탄압과 달리 자본의 압력은 은밀하다. 자본의 압력에 언론사주와 구성원들이 부응하기 때문이다. 삼성의 비자금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 건을 압력에 굴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기사화했던 한겨레나 경향 같은 언론사도 있지만, 대부분의 언론사들은 자본에 취약하다. 사진은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을 처음 보도한 <한겨레> 2007년 10월 30일 자 1면.

 

‘채찍’과 ‘당근’으로 언론 길들이는 자본 권력

 

2014년 모 인터넷 경제신문사 대표는 삼성그룹의 한 간부에게 기사 삭제조치를 시켰다는 문자를 보냈다. 당시 삼성의 백혈병 문제를 다룬 영화 <또 하나의 약속> 관련 기사가 나와 서운했다는 삼성 측 직원의 불만 표현에 즉각 반응한 것이다. 연예인들이 사비를 털어 영화 공동 관람을 준비한다는 미담 기사가 삼성의 심기를 건드려 대표가 나서서 삭제 조치를 취한 것이다.

 

2015년 3월에는 <선데이 저널>이 MBN 광고국의 업무일지를 폭로했다. 협찬이나 돈을 받고 제품을 홍보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이 프로그램을 다시 돈을 받고 재방송했다. 심지어는 뉴스에서 관련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언론사가 일반적으로 자본 요구를 들어주고 있지만 이런 특별한 계기가 아니면 알려지기 어렵다.

 

비판 기사가 뜨면 자본이 가만히 있지 않기 때문이다. 2014년 3월에 전자신문은 ‘삼성 출시 일자 혼란’, ‘렌즈 생산 수율 저하’ 등 삼성전자 비판 기사를 썼다. 사실을 다룬 기사였기에 삼성전자의 정정보도 요청을 수용하지 않자 삼성은 3억 원의 민사 소송을 냈다. 삼성에게는 3억이 별거 아닐지 모르지만 전문신문사에게 3억 원은 커다란 압박일 수밖에 없다. 이러니 사실에 근거한 정당한 비판 기사를 냈더라도 대부분의 언론은 소송당하기 전에 정정보도 요구에 응하지 않을까?

 

채찍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당근도 있다. 미디어오늘 2018년 1월 11일 자 보도에 따르면 하나금융지주가 비판적인 기사를 쓴 언론사와 기자를 명예훼손과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고발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 하나금융지주는 고발하기 전에 회유를 시도했다고 한다. 이 매체는 하나금융지주의 중국 특혜투자, 하나금융지주 사외이사와 김정태 회장 아들의 거래관계, 하나금융지주 투자사가 김정태 회장의 아들을 지원한 정황 등 김 회장과 관련한 비위 내용을 보도했다. 그러자 하나은행 간부가 이 매체의 간부를 만나 2억을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는 것이다. 모멸감을 느낀 이 간부의 용기로 사건이 폭로된 것이다. 이런 폭로가 쉽지 않음을 고려하면 지금도 이쪽저쪽에서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으리라 추론하기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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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 권력은 이른바 ‘채찍’과 ‘당근’으로 언론을 길들여왔다. 2014년 삼성 백혈병 문제를 다룬 영화 <또 하나의 약속> 관련 기사 삭제 사건, 같은해 전자신문의 삼성전자 비판 기사에 대한 삼성의 소송, 2015년 선데이저널이 폭로한 MBN 광고국의 업무일지. 그리고 최근 일어난 하나금융지주 비판 기사에 대한 억대 협찬 회유 사건까지 그 사례는 이미 충분하다. 

 

자본에 저항하지 않는 언론은 위기를 맞을 것

 

매체 경쟁이 심화되면서 언론들의 경영은 더욱 어려워지고 자본의 압력에 더욱 취약해지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매체가 경쟁력을 가지는 원천은 정확하고 진실에 근거한 정보를 제공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신뢰에 기반을 둔 수용자의 소비가 있기 때문에 광고도 가능한 것이다. 단기간은 버틸 수 있겠지만 자본의 압력에 굴복한 언론이 수용자의 신뢰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그것은 곧 언론의 위기로 직결할 것이다. 

 

내부 구성원들이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는 명확하다. 내부의 자성과 저항 없이 언론이 존립하기 점점 더 힘들어질 것임을 자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수용자도 옥석을 가리려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민주주의가 올바로 서려면 정확한 진실을 전달하는 언론의 존재는 필수요건이기 때문이다. 이제 언론은 자본 권력과 전쟁해야만 한다. 그리고 수용자는 자본으로부터 언론을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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