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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제작 현장의 안전, 노동인권을 보장해야 한다

방송의 정상화, ‘방송계 갑질’부터 손봐야
김수정(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
등록 2018.01.09 14:44
조회 553

‘갑질’이라고 하면 흔히 계약상 착취를 떠올린다. 권력이 많은 지위의 갑이 을의 처지에 있는 누군가에게 봉건적 굴종을 요구하는 것인데 한마디로 ‘의도적 부당행위 강요’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부당한 노동 처우, 위험한 노동의 현실이 사회의 정의를 감시하고 바람직함을 논평하는 방송에서도 예외라고 할 수는 없다.

 

‘직장 갑질 논의’를 공론화한 ‘성심병원 갑질 사태’

 

간호사들에게 선정적인 의상과 선정적인 춤을 강요했던 ‘성심병원 갑질 사태’는 직장 갑질 논의를 도마에 올리는 계기가 됐다. 사태의 이면을 보니 병원은 간호사들에게 새벽 출근 강요는 물론 시간외수당을 미지급하기 일쑤였고 이렇다 보니 편의점 알바보다 못한 최저임금을 위반한 경우도 다반사였다. 고용노동부가 조사를 나온다고 해도 서류를 위변조했고 회식자리에서 성희롱, 비번인 날이어도 출근 강요, 캠페인 참여라지만 실제적으론 병원 영업까지 간호사에게 강요했다는 진술이 봇물 터지듯 줄줄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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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심병원이 자체적으로 개최하는 체육대회 중 간호사들의 장기자랑 모습 (사진 : 관련 유튜브 영상 갈무리)

 

온라인에는 ‘직장 갑질 119’라는 모임이 활성화됐다. 본격적으로 구체적인 사례 수집이 이뤄졌다. 병원 내 임금체불, 폭언 등을 경험한 간호사들이 하소연을 시작했다. 병원 측의 갑질 행태에 대한 여러 증거자료가 담긴 제보가 모였다. 이를 토대로 국정감사, 근로감독 등의 처방이 나왔다. 한림대의료원 노조가 설립될 수 있었다.

 

보건의료 노동자의 건강과 행복은 환자의 안전과 의료서비스의 질로 직결되는 문제이다. 병원 내 갑질 사례가 알려지자 의료 시설에서 벌어지는 갑질 문화에 대한 접근의 필요성과 개선을 위한 노력 강도가 달라졌다. 어떤 영역보다도 인권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져야 할 곳이 병원인데 현실은 그러한 기대에 훨씬 못 미쳤다는 사실이 더욱 놀라웠다.

 

‘직장 갑질’, 방송계도 예외는 아니다

 

직장 갑질 고발 온라인 모임은 점차 확대됐다. 2호 모임으로 ‘병원간호사직원모임’이 만들어졌고, 3호 모임으로 ‘어린이집 갑질 근절! 보육교사 모임’이 생겨났다. 그리고 최근에는 ‘방송계갑질119’도 단톡방 문을 열었다.

 

계약서를 쓰지 않고 구두계약으로 얘기해 놓고는 실제 촬영이 언제 시작될지, 스케줄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전혀 상의하는 태도가 없다가 갑자기 내일 촬영에 들어간다거나 일이 없어졌다는 식의 통보를 받는 경우는 다반사였다. 방송사들 일정은 중요하고 독립제작사를 포함해 비정규직 작가나 하도급 제작자의 사정은 안중에 없는 ‘경우 없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방송사가 파업 중인 상황이어도 곧 복귀할 것을 대비한 예비형 갑질 행태를 당하고 있다는 토로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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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심병원 갑질 사태’ 이후 직장 갑질 고발 온라인 모임은 점차 확대됐다. 2호 모임으로 ‘병원간호사직원모임’이 만들어졌고, 3호 모임으로 ‘어린이집 갑질 근절! 보육교사 모임’이 생겨났다. 그리고 최근에는 ‘방송계갑질119’도 단톡방 문을 열었다. (사진 : 방송계갑질119 오픈 익명 채팅방 갈무리)

 

방송을 위해,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어려움이 많다는 방송사 직원이 많다. 그러나 비정규직 촬영팀, 미술팀, 작가들에겐 당연한 듯 저자세를 요구하거나 고압적인 대우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겨레21>이 만난 10여 명의 방송계 종사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상품권으로 임금을 받아본 경험이 있고, 심지어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막내작가 등을 구인할 때 ‘고료: 상품권지급’이라고 명시하는 경우도 있었다.(관련보도: <한겨레21> 20년차 촬영감독 월급통장에 상품권이 찍혔다)

 

카메라 뒤에 사람이 있다. 
방송계 ‘을’의 처우를 개선하라.

 

tvN의 <화유기>의 첫 방송이 있던 날 해당 드라마 세트장에서 조명을 달던 스태프가 추락해 큰 부상을 입는 사고가 있었다. 애초에 천장이 없던 세트였는데 급히 변경이 필요해지면서 작업을 지시했다고 한다. 문제는 당사자가 야간작업으로 피로가 누적되어 있어 다음날 설치하겠다고 부탁했음에도 설치를 강요했다는 증언이 나온다. 방송제작 현장에서는 안전관리보다는 일정이나 제작 관행 등을 내세우는 탓에 부당한 노동이 이어질 수밖에 없고 이를 정당하게 거부할 수 있는 분위기도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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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N의 <화유기>의 첫 방송이 있던 날 해당 드라마 세트장에서 조명을 달던 스태프가 추락해 큰 부상을 입는 사고가 있었다. (사진 : 한국일보 보도 화면 갈무리)

 

위험한 환경 속에 스태프들이 노출될 경우는 많지만 억울한 쪽은 을일 뿐이다. 화유기 추락 사건 조사를 위해 고용노동부가 현장 감식을 나간 당일에도 오디오팀의 한 스태프가 세트장 계단에서 다리를 다쳤지만 제작사의 적극적인 대처가 보이지 않는다. 방송 제작을 도맡는 현장 스태프들은 다단계 하도급인 경우가 많아서 언제든 교체될 수 있다는 불안을 느끼며 일할 수밖에 없다(관련보도: 반성 없는 ‘화유기’…‘을병정’들이 또 울기를 바라나).

 

방송업계의 고질적인 노동착취와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움직임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고 이한빛 PD의 추모사업 및 방송업계종사자들을 위한 사단법인 ‘한빛’도 한빛방송노동인권센터를 설립하고 방송스태프 노동인권 침해 상담 등 방송제작자들의 방송인권 개선 사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방송제작 현장의 안전, 노동인권을 보장하려는 노력이 촉구되어야 한다. ‘방송계 갑질’에 대한 자성과 반성이 필요하다. 카메라 뒤에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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