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2023)_
또 다른 공범자들 KBS·MBC 노조의 총파업이 임박한 가운데 2일 ‘방송의 날’ 행사는 경영진 퇴진을 요구하는 방송 노동자들의 함성에 묻혔다. 그동안 기자, PD, 아나운서들의 제작거부 움직임과 그들을 통해 알려진 방송사 내부의 비상식적 부조리를 거의 보도하지 않던 보수신문들은 이날 행사를 ‘정부의 방송장악’이라는 프레임으로 크게 보도했다.
김장겸 영장 발부가 ‘언론 탄압’인가?
조중동을 위시한 보수신문은 대통령부터 주요 정부인사들이 방송의 날 행사에 불참한 건 방송사 사장들의 퇴진을 압박하려는 의도이며, MBC 김장겸 사장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된 것도 극히 이례적이라고 지적했다. “방송 생일 잔칫날 체포영장”(동아), “방송의 날 행사장에 날아든 영장”(조선)이라는 제목의 경우, 검찰이나 경찰이 행사장에 영장을 갖고 들어가 집행한 듯한 뉘앙스를 최대한 전달하려는 속내가 비친다. “꼭 영장까지 발부해야 했냐”(중앙)며 ‘방송장악’, ‘언론탄압’으로 몰고 가려고도 한다. 그러나 김장겸 사장은 행사 후 멀쩡히 귀가했고 4일 오전 MBC에 정상 출근했다.
생각해 보자. 식구끼리 싸우고 있는 집안 잔치에 어느 이웃이 맘 편히 덕담하러 가겠는가? 그래서 정부뿐만 아니라 자유한국당을 포함한 여야 정당 모두가 노사 갈등이 벌어진 방송의 날 행사에 불참한 것 아닌가. 그걸 놓고 ‘전방위적 압박’ 운운하는 것은 과장이다. 조선일보가 “정상이 아닌 법원과 검찰이 굉장히 이례적으로 발부했다”고 주장한 체포영장은 올해만 870건이 넘는다는 팩트 앞에 무지의 억측임이 드러났다. 언론사엔 처음이라고? 탈세, 횡령 등으로 구속된 적 있던 언론사주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2008년, “법절차에 따라 임기가 보장된” KBS 정연주 사장을 체포했던 보수정권과 언론의 전방위적 공세가 떠오른다.
조선일보 9월 4일자 사설
2008년 ‘잃어버린 10년’ 끝에 집권한 보수집단은 대통령의 멘토 최시중을 방송통신위원장에 앉히고 ‘방송장악’부터 착수했다. 조중동은 여기에 앞장섰다. 표적 감사 결과 배임 혐의를 받은 정 사장에게 “임기 내세울 자격이 없고”, “독립성 외칠 염치가 없으며”, “부끄러움을 모른다”며 “언론자유 욕보이지 말고 물러나라”는 등 사설을 통해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9월 2일자 조선일보에 따르면, (해임된 날 밤 발부되어 다음날 아침 영장 집행된 정 사장의 경우는 전직 신분이었으니까) 현직 사장으로는 이번 MBC 김장겸에게 발부된 게 최초 맞단다. 참으로 대단한 발견이다.
방송장악의 선수(先手)들
조중동은 이명박근혜 정권 내내 정권의 방송장악을 부추기고 공영방송의 독립을 위협했다. 검찰도 무리한 수사라며 머뭇거린 <PD 수첩> 제작진에 대한 사법처리를 주문하고 당시 엄기영 사장을 문책하라고 주문했다. 그후 <PD 수첩> 제작진과 정연주 전 사장 모두 무혐의 판결이 났지만 이 사실에는 침묵했다.
그뿐인가, 조중동은 겉으로는 언필칭 방송 독립성을 주워 섬기면서, 정권의 방송장악에 협조한 댓가로 특혜적 종합편성 채널을 얻었다. 이들은 정연주 사장 해임 전 관계기관 대책회의, 김우룡 전 방문진 이사장의 “죠인트” 발언, 대통령의 후보시절 특보 김인규 씨의 KBS 사장 선임 등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이 드러나는 계기마다 침묵과 왜곡으로 일관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이들의 ‘방송 독립성’이라는 수사가 거짓임을 알 수 있다. 그때마다 “국정원까지 참석한 건 이상하다”는 사족(蛇足)만 달고, “방문진 이사장의 입이 가벼워서야 쓰나”며 호도(糊塗)했고, 대통령 측근 사장의 “공영성 다짐을 주목한다”며 연목구어(緣木求魚) 했다.
그 후로 이들의 KBS·MBC에 대한 비난은 노조의 파업에 대한 것 빼놓고는 줄어들었다. 아마도 그들 입장에서는 공영방송이 잘 굴러갔다는 반증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은 세월호참사를 계기로 드러난 청와대의 일상적 보도 간섭에 의해서였고, 수많은 기자‧PD 등 언론인에 대한 해고, 징계 등 인사권 남용에 따른 결과였다. 그리하여 야당 도청 의혹까지 제기된 KBS는 공정성과 신뢰도가 추락했고, MBC는 극우 ‘태극기 부대’의 대변자가 되었다. 국민의 자산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동안 미증유의 국정농단 사태와 이를 척결하자는 시민의 촛불이 타올랐다.
9월 5일 고용노동부 서부지청에 자진 출석한 MBC 김장겸 사장
굽은 것을 펴는 ‘방송정상화’
이러한 적폐를 바로잡겠다는 방송정상화는 종사자 절대다수와 국민의 대다수가 바라는 과제가 되었다, 그럼에도 조중동 등은 이를 ‘방송장악’·‘내로남불’ 프레임으로 대치하려고 애를 쓴다. 스스로도 내로남불에 갇혀 KBS·MBC의 경영진을 호위하려는 이들은 지금이라도 알아야 한다. 법률이 보장한 방송의 자유는 방송사 사장의 자유가 아님을, 종사 언론인들의 내적 자유와 결합된 조직에 부여한 자유임을 명심해야 한다.
구집권세력과 보수언론은 공영방송이라는 근간을 어거지로 구부려 놓은 선수(先手)들이다. 지난날 방송장악을 부추겼던 조중동이 제대로 부각되지 않은 영화 ‘공범자’는 수정 보완되어야겠다. 굽은 것을 다시 펴려면 배전의 힘이 필요하다, 그래서 진정 국민의 공영방송을 바란다면 종사자들의 총파업에 힘을 보태야 한다.
엄주웅(민언련 정책위원,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전 상임위원)
*시시비비는? 시시비비는 고정 언론칼럼으로 매주 회원들을 찾아갑니다.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면서도 한국사회의 언론민주화를 위한 민언련 활동에 품을 내주신 분들이 '시시비비' 필진으로 나섰습니다. 앞으로 김성원(민언련 이사), 김수정(민언련 정책위원), 김언경(민언련 사무처장), 김영훈(전 민주노총 위원장), 김유진(민언련 정책위원), 서명준(언론학 박사), 엄주웅(전 방통심의위원), 이기범(민언련 편집위원), 이병남(언론학 박사), 이명재(자유언론실천재단 편집기획위원), 이용마(MBC 기자), 이호중(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장경호(녀름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부소장), 정민영(변호사), 장행훈(언론광장 공동대표)의 글로 여러분과 소통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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