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2023)_
안보불안을 먹고 사는 수구보수언론에 맞설 힘은 시민에게 있다
‘한미동맹’ 빙자한 흔들기, 또 하나의 적폐한동안 잠잠한 듯했던 극우단체들이 성주 소성리에 나타났다. 사드 배치 찬성을 외치며 주민들에게 막말과 욕설을 퍼붓고 펼침막을 찢는 등 소동을 일으켰다고 한다. 이들의 집회에서는 ‘대한민국이 종북좌파에게 넘어갔다’는 울분이 터져 나오고 태극기와 성조기가 나부낀다. 지난 탄핵정국에서도 극우단체들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탄핵반대를 외쳤다. 시민들은 태극기가 극우세력의 전유물인 양 쓰이는 것을 안타까워했고, 성조기가 등장하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 6월 22일 성주 소성리 마을에 보수단체가 몰려들어 사드 배치 찬성 집회를 열었다. 이 집회 참가자들은 현수막을 훼손하고 ‘아작 각오해’, ‘빨갱이들을 죽이자’ 등의 거친 욕설을 쏟아냈다. (사진 : 소성리 종합상황실 유튜브 갈무리 )
박근혜 정권을 퇴장시키고 새 정부가 출범했지만 여전히 성조기 휘날리며 대한민국의 운명을 미국의 뜻에 맡기자는 사람들이 기세등등하다. 소성리에 몰려간 극우단체만이 아니다. 한미동맹을 내세워 새 정부를 향해 ‘찍소리하지 말라’고 압박하는 핵심세력이 있다. 바로 수구보수언론이다.
외교안보 현안을 대하는 수구보수언론의 기준은 ‘미국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다. 이들의 시각은 최근 국방부의 사드 추가반입 보고누락 진상조사, 북핵 해법에 대한 문정인 특보의 워싱턴 발언, 사드 환경영향평가 실시, 문 대통령의 대북 대화 의지표명 등을 다룬 보도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수구보수언론은 새 정부가 보인 일련의 태도가 미국을 불쾌하게 만들고 한미동맹을 흔드는 일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사드 배치 지연에 트럼프가 “격노”했다는 출처불명의 주장을 보도하고, 일본 언론을 인용해 우리 정부의 사드 배치일정 주장을 반박하는 수구보수언론의 행태에 “도대체 어느 나라 언론이냐”는 성토가 쏟아졌다. 그러나 미국의 심기만 살피는 이들의 태도는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더 심해졌다.
△ 6월 24일 오후 사드반대평화행동 집회 참가자들이 미국 대사관을 둘러싸고 거대한 인간띠를 형성하고 있다. (사진 : 오마이뉴스)
시민사회 “사드 반대”도 문재인 정부 탓
지난 24일 시민사회단체들은 주한미국대사관을 인간띠로 잇는 ‘사드 반대’ 행사를 열었다. 참가자들은 서울광장에서 집회를 연 뒤 대사관으로 행진, 법원이 허락한 20분 동안 인간띠를 이었다. 행사는 평화적으로 끝났고 경찰도 유연하게 대응했다.
그러나 수구보수언론들은 발끈하고 나섰다. 어떻게 동맹국의 대사관을 ‘포위’할 수 있느냐, 한미동맹을 흔드는 일이다 등의 주장을 펴며 행사를 주최한 시민사회단체를 비난했다. “우리 안보 보루인 한미동맹의 주축인 미국에 외교적 결례”(동아일보, 24일 사설), “아무리 극단적인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망동이라고 해도 미국 사람들이 이 행태를 어떻게 볼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조선일보, 26일 사설), “미국대사관을 ‘인간띠’로 둘러싼 것은 한·미 동맹에 대한 반대로 비칠 수 있다”(중앙일보, 26일 사설)며 미국의 반응에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 6월 24일 ‘사드 반대 인간 띠 잇기 행사’가 진행된 이후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일제히 행사를 주최한 시민사회단체를 비판했다.
나아가 이들은 시민사회의 사드반대를 정부 책임으로 돌렸다. 새 정부가 사드 배치 입장을 확실하게 정하지 않은 탓이라는 얘기다. 특히 조선일보는 “새 정부가 끊임없이 논란거리를 만들어내는 바람에 민노총 같은 극렬 세력들이 미대사관 포위까지 하고 있다”며, “한미 정상회담이 겉으로 어떤 발표가 나오든 속으로 동맹 관계는 많은 상처가 나고 있다”는 주장까지 폈다.
2003년과 닮은 2017년, ‘한미동맹’ 내세운 흔들기
시민사회의 반대운동을 두고 정부에 책임을 묻고 미국의 처지부터 챙기는 수구보수언론의 모습은 지난 참여정부 시절을 떠오르게 만든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지 반년이 되던 2003년 8월, 대학생 10여 명이 미군부대 사격장에 진입해 시위를 벌였다. 수구보수언론은 정부가 한총련에 대해 유화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질타하면서 대통령이 직접 나서 유감표명을 하라고 압박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경비소홀과 치안부재로 한미 간 우호관계를 악화시켰다”는 이유로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통과시켜 결국 물러나게 만들었다.
더 나아가 한나라당은 “모든 책임이 노무현대통령에게 있다”, “안보와 민주헌정질서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라며 대통령을 몰아붙였고, 조선일보는 한나라당이 대통령 탄핵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고 전했다. 대학생 시위를 빌미로 취임 1년도 안 된 대통령의 탄핵을 슬그머니 띄운 것이다. 돌이켜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 당시에는 실제로 벌어졌다.
다행히 지금은 참여정부 때와 많은 것이 다르다. 수구보수언론의 사회적 영향력은 추락했고 많은 시민들이 이들의 여론조작에 적극적으로 맞서고 있다. 무엇보다 촛불혁명으로 탄생시킨 정부를 수구보수세력의 흔들기로부터 지켜야 한다는 시민들의 공감대가 아직 단단해 보인다. 그러나 수구보수세력은 분단과 안보불안을 자양분으로 기득권을 누려온 집단이다. 한미동맹을 빙자해 대미종속 외교를 압박하는 이들의 시도는 계속될 것이다. 새 정부가 여기에 끌려가지도, 이들에게 무너지지도 않게 하는 힘은 여전히 시민들에게 있다. 2017년은 2003년과 달라야 한다.
김유진(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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