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2023)_

이진욱 씨 성폭행 관련 무고 판결로 보는 인권 보도 현실

‘이진욱 고소녀’ 보도에 ‘게임의 룰’은 없었다
등록 2017.06.19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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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언련 언론 모니터의 데스킹을 맡고 있는 저는 매일 이 기사는 문제가 있는가를 판단하고, 보고서를 써야 할 수준의 문제인가를 판단하고, 어느 수위로 지적할까를 고민합니다. 생각보다 이 일은 쉽지 않습니다. 해당 사안의 실체적 진실을 모르는 경우도 있고, 해당 보도가 그 사안을 공정하고 객관적이며 보도윤리에 맞게 제대로 전하지 않았다고 비판하기엔 조심스러운 경우도 많습니다. 그나마 우리에게는 일종의 ‘게임의 룰’ 또는 ‘족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언론은 이렇게 보도해야 한다는 언론관련 각종 심의규정과 가이드라인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가이드라인은 저널리즘 관점에서 보다 원칙을 지켜주길 요구하는데, 실제 언론인들이 보기에 불가능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것이 인권에 관련된 것일 때, 언론사들의 콧방귀 뀌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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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기자협회가 2011년 제정하고 2014년 개정한 인권보도준칙. 성폭력 범죄 보도와 관련해서는 ‘피해자가 2차 피해를 볼 수 있는 점’,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 등을 들어 ‘성폭력 범죄 보도 세부 권고 기준’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사진 : 인권보도준칙 )

 

무고죄 재판에 무죄 받은 여성, 종편의 반응은?

 

제가 어제 받은 종편 시사토크쇼 1차 모니터 자료가 바로 그런 아이템이었습니다. 비판 지점과 수위를 가늠하면서 보고서로 써야 하는지를 판단했지만, 이번 것은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니터원들의 메모 중 일부를 그대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아이템 주제는 이진욱 씨를 성폭행으로 고소했다가 무고죄로 재판을 받은 여성에게 무죄가 선고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함께 읽어보시면서 여러분이라면 이 보고서를 어떻게 할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① TV조선 <보도본부핫라인>(6/14)은 자막을 <이진욱 고소녀 무고죄 무죄판결>이라고 썼습니다. 이에 대해서 모니터원은 “꼭 아무 데나 ‘○○녀’라고 붙이는 것, 꼭 여성의 성별을 붙이는 것도, 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제목을 붙이려는 것, 모두 문제입니다”라는 의견을 남겼습니다. 또한 방송에서 진행자 김미선 씨는 “(피해 여성이) 알고 봤더니 뮤지컬 배우로 활동 중인 여성이었고요”라고 말했다면서, “도대체 성폭력 피해자의 신원정보를 왜 노출합니까”라고 메모했습니다. 

 

② 채널A <신문이야기 돌직구쇼+>(6/15)에서 정성희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법원 판결이 적절한 것 같다는 취지로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이진욱 씨가 유명한 탤런트 아니겠습니까? 탤런트를 처음 만난. 탤런트가 왔으니까 일반 사람들이 호기심이 있고 사귄다고 또 기대할 수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아마 방심하면서 좀 관계를 잘 맺어보려고 문을 열어줄 수도 있는데 바로 이제 그런 성관계가 있었으니까 자기도 스스로 굉장히 혼란스럽고 수치스러웠을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모니터원은 이에 대해서 “여성이 호기심에, 사귄다는 기대할 수도 있고 등의 추측은 부적절한 발언 같다”고 메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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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널A <신문이야기 돌직구쇼+>(6/15)에서 정성희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법원 판결이 적절하다는 취지로 이야기하면서도, ‘여성이 호기심에 사귄다는 기대할 수도 있다’는 추측성 발언을 했다.  (사진 : 채널A <신문이야기 돌직구쇼+> 화면 갈무리 )

 

③ 채널A <이슈투데이>(6/15)에서 박상희 샤론정신건강연구소장은 “이진욱 씨가 그 집에 무차별적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말하자면 둘이 합의된 상태에서 초대가 된 거였거든요. 그러니까 집의 주소도 받았고 어떻게 집에 들어가니까 화장을 지우고 싶다. 그래서 화장솜도 주었고 또 결정적으로 이진욱 씨가 샤워를 하는데 이 여성이 티셔츠를 갖다 준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모니터원은 “박상희 씨도 발언 말미에 티셔츠를 준 것이 성관계를 허락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말했음. 그러나 화장솜과 티셔츠를 줬다는 등 이런 내용을 주절주절 길게 말할 필요가 있는지”라고 메모했습니다. 

 

어떤가요? 조금 기분이 나쁘기는 하지만, 크게 문제 삼을 만한 것이 없다고 보시는 분부터 도대체 왜 이렇게 쓰레기 같은 발언을 하느냐고 분통을 터트리실 분도 있을 겁니다. 저는 일단이 사안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 6월 19일 새벽, 이진욱 씨 법원 판결 관련 뉴스를 찾아보았습니다.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고소녀’ 제목으로 도배된 언론 보도

 

일단 거의 모든 보도 제목에 ‘이진욱 고소녀’라는 별칭이 있었습니다. 그나마 <이진욱 고소 여성> 정도의 제목을 쓴 메이저 언론사들이 있었을 뿐이고요. 고소녀가 제목에 없는 보도는 기껏해야 <이진욱 1심서 무죄, 네티즌…“최종판결까지 기다리고 결과 받아들여야지”>(브릿지경제 6/15)입니다. 이진욱 씨가 무죄를 받은 것처럼 읽히는 오보에 가까운 제목뽑기이죠. 

 

<‘이진욱 고소녀’ 1심 무죄에 네티즌 갑론을박… “꽃뱀 활개칠 듯 vs 엄연한 성폭행 피해자”>(문화뉴스 6/14) <이진욱, 고소녀 A씨 무죄 선고…네티즌 “이미지 예전처럼 안보인다” “무섭다 무서워”>(미디어펜 6/14)처럼 기계적 균형이라는 외피를 쓰고 꽃뱀 타령을 하는 제목도 있었습니다. 이쯤 되면 ‘고소녀’라고 써주더라도 일단 사실관계만이라도 정확하게 다뤄주면 다행이다 싶을 지경이었습니다. 이런 보도 속에서 종편 시사토크쇼 발언은 무난한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답변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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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욱 씨 성폭행 관련 무고 판결 이후 언론 보도 제목에 대부분 ‘고소녀’라는 자극적 단어가 포함되어 있다. 심지어 한 언론사는 이진욱 씨가 무죄를 받은 것처럼 보이는 오보에 가까운 제목을 뽑기도 했다. 

 

“여성에게 시도때도 없이 ‘○○녀’라는 낙인찍기 식 호칭을 붙이는 것은 비판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거의 모든 언론과 대중들이 이런 행태를 보이고 있는데, 종편만 비판하는 것이 형평에 맞지 않아 보입니다. 뮤지컬 배우로 활동 중인 여성이었다는 것 등의 개인 신상을 공개하는 것도 부주의한 보도태도이며, 이진욱 씨 피해액을 강조하며 그가 매우 억울한 피해자인 양 강조하거나, 이 사안을 대하면서 키득거리거나, 문을 열어주고 화장솜과 티셔츠 준 것을 길게 설명하며 여성이 합의하에 성관계를 했을 것이라는 추측하는 것 모두 부적절합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많은 언론사들이 종편시사토크쇼의 문제로만 국한시키기보다는 언론사 전체의 행태를 짚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결론은 종편 시사토크쇼 보고서로 지적하기엔 문제발언의 수위가 조금 약하다고 생각됩니다.”

 

‘연예인 가십’에서 벗어나 ‘공론장 논의’돼야

 

여러분은 어떻게 보셨나요? 저의 결정에 불만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 활동가들은 종편 방송 만으로도 충분히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일단 이 문제를 보고서로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 문제를 조목조목 지적하는 과정에서 또 다시 인권침해적 표현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이번 판결은 단순 연예인 소식으로 소비되기보다는 국민의 공론장에서 생산적으로 논의될 필요가 있는 사안임이 분명합니다. 그나마 여러 언론이 이 판결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를 정리해봤는데요. 그중 TV조선 <10시 뉴스>(6/15)에 출연한 김성수 시사평론가의 발언 하나를 소개하면서 끝맺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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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조선 <10시 뉴스>에서 패널 김성수 시사평론가는 ‘성폭행에 대한 높은 기준이 필요하며,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러나 이어진 발언에서 앵커는 ‘피해자가 이진욱 씨 인 것 같다’는 쪽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사진 : TV조선 <10시 뉴스> 화면 갈무리)

 

“지금 우리 사회에서 성폭행에 대한 기준이 어떤 상태에 와 있는지 이런 부분들을 따져봐야 되는데, 지금 이진욱 씨는 자기 스스로가 정말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그런 지금 현재 언론에 보도돼 있는 것들만 근거로 놓고 특히나 여성들의 인권이 많이 높아져 있는 그런 선진국의 사례를 보면 성폭행으로 나올 가능성도 상당히 높습니다. (중략) 블라인드를 설치하라고 방에 들어오게끔 하고 호감을 표시한 건 사실이지만 그 이후에 너무 관계가 빨리 진행이 됐다, 이런 부분들. 이런 부분들은 남자들은 보면 굉장히 그게 매력적이고 멋있는 행동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여성들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두렵고 떨리는 그런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번 기회를 통해서 좀 많은 분들이 인정을 해 주셨으면 좋겠고. 특히 여성들에 대한 이러한 폭행의 정도, 이 부분은 앞으로 점점 더 사회적인 합의를 거쳐서 더 엄정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 부분은 논의를 해야 될 그런 상황인 것 같습니다” 

 

평소 TV조선에서 보기 힘든 발언이어서 당황하셨다면 다음 앵커질문까지 들으시면 됩니다. 이런 바람직한 담론을 펼친 출연자에게 TV조선 앵커는 다시 “전체적인 상황을 보면 물론 그 일반인 여성도 삶을 살아가면서 피해적인 심적인 고통은 있겠지만 이진욱 씨는 연예인이 얼굴을 내놓고 활동하는 사람이잖아요. 피해가 상당할 것 같습니다”라며 피해 예상 금액을 물었습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서 배워야 할 것은 피하고, 어쨌든 ‘피해자는 이진욱 씨인 것으로’ 결론 내려는 것은 아닌지 씁쓸해지는 마무리였습니다. 

 

김언경(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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