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2023)_

‘문재인 46.9%, 안철수 34.4%’가 뉴스 가치 없는가

‘무너진 양강 구도’ 외면한 매체들
등록 2017.04.17 19:21
조회 209

나는 일요일인 4월 16일 아침부터 하루 동안 ‘대선미디어감시연대’의 ‘1일 모니터 요원’으로 일했다. 지난 3월 20일 전국언론노조를 비롯해 89개 언론·시민단체가 출범시킨 그 모임의 공동대표로서 한 달 가까이 젊은 활동가들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만 지켜본 것이 너무 미안해서였다.

 

문-안 ‘무너진 양강 구도’ 기사가 실종됐다

 

이 날은 세월호 참사 3주년이라 그런지 언론의 초점도 그리 쏠렸다. 신문이 나오지 않는 일요일이기 때문에 나는 아침부터 컴퓨터 앞에 앉아 네이버 포털의 ‘뉴스스탠드’에 오른 여러 매체의 기사들을 모니터했다. 이렇다 할 소재가 없어서 습관적으로 화면을 보고 있는데, 오후 3시 반쯤 CBS 노컷뉴스 머리에 이런 제목이 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안철수, 문재인과의 양강 구도 ‘흔들’”. 그 기사의 부제목은 ‘리얼미터(문 45.4%, 안 30.7%) 이어 KSOI(한국사회여론조사연구소)의 문 46.9%, 안 34.4%도 비슷’이었다. 기사 입력 시간은 오후 3시 27분이었다. 한참 뒤인 오후 5시 51분, 중앙일보 인터넷판 머리에는 4월 13일 리얼미터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알리는 기사(‘TV 토론 후 첫 여론조사···문 45.4%-안 30.7%’)가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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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 격차가 벌어진 여론조사 내용을 기사화한 노컷뉴스 <노컷뉴스 기사 캡쳐>

 

KSOI의 여론조사는 14~15일 이틀에 걸쳐 전국 성인 1,01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것으로, 유무선RDD(무선 81.1%, 유선 18.9%) 전화면접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5자 가상대결 조사 결과 문재인은 46.9%, 안철수는 34.4%로 나타났다. 적극적 투표 참여 의향 층에서 문재인은 49.4%, 안철수는 34.4%를 얻었다. 

 

16일 노컷뉴스가 ‘양강 구도 흔들’이라는 기사를 올린 오후 3시 반 이후 밤 11시 30분까지 주요 신문사와 통신사 인터넷판 머리에 올라 있던 기사 제목들은 아래와 같다. 

 

· 조선일보: ‘이렇게 연설하면 대통령 못 된다’
· 동아일보: “한반도 위기 막으려면 중국의 ‘이것’ 차단이 유일한 해법”
· 한겨레: “‘차마 잊힐리야’ 독일 합창단의 세월호 추모곡”
· 경향신문: “미 ‘사드 배치 완료, 한국 새 대통령이 결정할 사안’” 
· 한국일보: “미 군사전문가, 북 열병식 미사일에 ‘충격’”
· 서울신문: ‘양강구도 무너지나···문재인 46.9%, 안철수 34.4%’
· 세계일보: “미 부통령, 북에 ‘최고의 압박카드’ 들고 왔다”
· 국민일보: ‘역대 최다 후보 출마···투표용지 길이 30cm 될 듯’
· 문화일보: “‘핵 폐기에 시간 달라’ 북·중 북핵 비밀담판”
· 매일경제: ‘미, 시리아처럼 북 선제공격 못하는 이유는···’
· 한국경제: “19살 여사장님 ‘중3 때 떡볶이집 물려받으려고···’”
· 서울경제: ‘후보등록 후 첫 여론조사···문·안 양강구도 흔들리나’
· 연합뉴스: “방한 미 부통령, 북에 ‘최고의 압박’ 카드 들고 왔나”
· 뉴스 1: ‘네거티브에 묻힌 공약전쟁···선명성이 승부 가른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주요 신문과 통신 가운데 중앙일보 말고 ‘무너진 양강구도’를 인터넷판 머리에 올린 매체는 서울신문과 서울경제뿐이었다. 위에 예를 든 다른 매체들은 인터넷판 머리기사로 다루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거의 모두가 아예 그런 내용을 단신으로 내보내지도 않았다. 일요일이라 신문이 없어서 인터넷판 집중도가 매우 높다는 것을 감안하면, 특근 데스크와 팀을 운영해야 마땅할 테니 ‘KSOI의 여론조사 결과를 몰랐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하루가 지난 17일 아침까지도 주요 매체들 인터넷판에서는 ‘무너진 양강 구도’에 관한 기사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대선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날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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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컷뉴스와는 정반대의 여론조사를 보도한 중앙일보. <중앙일보 인터넷 기사 캡쳐>

 

16일 오후 7시 39분에 중앙일보 인터넷판에서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오후 5시 51분에 머리기사로 입력되었던 기사(‘TV 토론 후 첫 여론조사···문 45.4%-안 30.7%’)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단독] 문재인 38.5%, 안철수 37.3%···지지층 결집하며 양강 구도 심화’라는 기사가 머리에 뜬 것이었다. 이 기사는 중앙일보 조사연구팀이 15~16일 전국의 유권자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한 것이었다. 자기 회사가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하면서 ‘단독’이라고 강조한 사실이 흥미롭다.

 

편향된 여론조사 보도, 언론은 유익한 정보 제공해야

 

19대 대통령선거를 22일 앞둔 지금 대다수 유권자들이 가장 관심을 쏟는 부분은 수시로 발표되는 여론조사 결과, 특히 그 중에서도 ‘양강’이라 불리는 더불어민주당 후보 문재인과 국민의당 후보 안철수의 지지율 추세가 어떻게 바뀌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그래서 모든 신문과 방송뿐 아니라 인터넷매체들도 경쟁적으로 여론조사 결과를 전달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일부 여론조사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것을 보면, 보수언론은 물론이고 ‘진보’를 자처하는 매체들조차 ‘안철수로의 편향’을 드러내고 있다고 한다. 미디어오늘 지난 10일 자에 나온 기사(“언론의 ‘문재인 죽이기’는 현실이었다”)에 그런 편향이 잘 드러나 있다. 데이터저널리즘 기관인 서울대 폴랩(Pollab)이 지난 1월 1일부터 4월 6일까지 ‘네이버 뉴스’에서 각 후보를 검색할 때 등장하는 93개 언론사의 20만3,750개 기사를 분석한 결과, 4월 6일 현재 지수는 안철수가 261인데 비해 문재인은 -195였다. 그야말로 ‘천지차이’라고 볼 수 있다. 4월 4일 현재 안철수에 대한 진보언론의 보도지수는 18.7이었으나 4월 6일 자 문재인의 그것은 2.0에 불과했다. 이런 통계를 보고 많은 언론소비자들이 ‘진보언론이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의아해하고 있다는 사실이 SNS에 확연히 나타나고 있다. 

 

오는 5월 9일에 치러질 대선은 ‘촛불혁명’의 주역인 주권자들이 열망하는 민주평화정부로 정권이 교체될지, 아니면 기회주의적 정치집단이 그 혁명을 없던 일로 만들어버리는 ‘역사적 반동’이 일어날 것인지를 판가름하는 중대한 계기가 될 것이다. 스스로 ‘보수’라고 주장하든, ‘진보’를 표방하든 간에 모든 언론매체들은 유권자들이 투표할 후보를 선택하는 데 유익한 정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제공해야 하는 책무를 지니고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김종철(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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